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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29. 2024

면도날보다 돌칼 같은 사람이 위대한 이유

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일 잘하는 사람과 일 못하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당연히 전자를 택한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함께 일하는 동료가 평가하는 것이기에, 일을 잘한다는 말을 듣는 것은 원초적으로 기분 좋은 일 아니던가? 그뿐이던가, 성공가도의 척도를 높은 직위로의 승진으로 잡는다면 일을 잘하는 사람이 대게 승진의 기쁨을 누리게 된다. 회사 차원에서도 소위 ‘A급인재’는 귀한 대접을 해준다. 높은 연봉은 물론 다양한 복지혜택으로 인재를 회사에 붙들어 두려 애를 쓴다. 오직 일을 잘하는 사람만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아니, 일을 잘하는 사람처럼 보이려 무진장 애를 쓰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직장 동료들을 속이는 데 성공했고, 팀 내 에이스, 회사에서의 모범사원으로서의 권위를 누렸다. 나의 사기 행각은 퇴사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직장생활에 나름의 신조가 있다.

어떤 직장이나 조직일지라도 새로 들어가면 3개월 안에 적응해서 3년 경력직처럼 능숙하게 일한다.

이 신조는 내가 사람들과 빠르게 친해질 수 있고 눈치가 빠른 기질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신조이다. 나의 최대 장점은 카멜레온 같은 적응력이다. 나는 이 장점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나름의 프라이드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일을 잘한다는 평가는 내가 프라이드를 지키기 위해 꼭 받아내야 하는 평가였다.


직장에는 일을 잘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을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일처리가 느리고, 배우는 시간이 오래 걸리며, 눈치가 없어 상사의 지시를 오해하곤 하는 사람을 일을 잘 못한다고 평가한다. 이런 사람들은 회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기 힘들고, 본인도 회사 다니기가 힘들다고 토로하는 일이 많다.


일본에서 존경받는 경영자인 이나모리 가즈오는 ‘왜 일하는가’라는 책에서 일을 잘하는 사람을 ‘면도날 같은 사람’이라 말하며, 경영자 입장에서 회사 입사면접 시 면도날 같은 사람을 많이 뽑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고 말한다. 경영자가 자신만만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일을 척척 해내는 면도날 같은 사람을 안 좋아할 수 없다. 최고의 인재들로 회사를 꾸려가고 싶은 건 경영자의 당연한 욕망이다.


일이 삶에주는 의미, 인간의 성장과 성취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는 책


그런데 이나모리 가즈오는 10년, 20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면도날 같은 사람들은 회사에 남지 않았다고 말한다. 회사 사정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회사에서 성취할게 없다고 조금이라도 느끼는 순간이 와도 면도날 같은 사람들은 금방 회사를 떠났다고 한다. 반면 일을 잘 못하는 굼벵이 같은 사람들은 어느 순간 승진을 거듭해 든든한 회사의 중추를 이루었다고 회고한다. 느리지만 끈질기게 버틴사람이 빠르지만 조급한 사람을 이긴 것이다.


나는 면도날 같은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어 발전을 거듭하는 성장형 인간이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성장은 속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성장은 속도보단 방향이 중요했고, 방향보단 끈질긴 태도가 더 중요했다. 


면도날 같은 사람이 끈질기다면 최고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에 면도날 같은 사람은 적다. 오히려 뗀석기 시대 돌칼 같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내가 돌칼이라도 희망은 있다. 칼은 갈면 날카로워진다. 칼은 쓰다 뭉툭해져도 다시 갈면 베일 듯 다시 날카로워진다. 칼을 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만으로도 면도날 같은 날카로움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면도날 같은 사람이 되어 일회용 면도기 같은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요리 장인의 칼이 되어 평생 날카로움을 유지하는 삶을 살 것인가? 성장이 속도라는 잘못된 개념을 가졌던 나는 이제 성장은 끈질긴 태도임을 믿는다. 성취가 언제 이루어질지는 조급해하는 성장형 삶은 가짜다. 성장하는 매 순간을 음미하는 삶이 진정한 성장형 삶이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일이 인생에 필요한 이유는 진정한 성장을 이루는데 일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장인이 칼을 갈듯 인생의 날카로움을 항상 유지하는 것, 이것이 성장하는 삶의 진정한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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