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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Feb 28. 2024

내가 운이 좋다고 말하는 이유

다부치 나오야, [확률적 사고의 힘]

나는 운이 좋다. 운이 좋다고 생각해서 운이 좋은 건지, 정말로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운이 좋다. 그냥 좋은 것도 아니다. 인생에 큰 굴곡이라고 할만한 실패와 좌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좋은 일만 있었고, 앞으로도 좋은 일만 생길 것이라 믿는다. 


솔직히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인생에 좌절과 실패가 없었던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간절히 합격을 바라던 시험에 떨어져서 인생의 허무함을 맛봤고, 게으름과 나태함에 절여져 인생의 황금기를 낭비했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 가스라이팅도 당해봤고, 욕심이 그득한 잘못된 투자로 가정경제를 휘청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도 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그렇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근면성실한 부모님 덕분에 배곯아하며 살지 않았고, 좋은 친구들 덕분에 즐거운 학창 시절을 보냈다. 공부도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엄마에게 구박받는 수준은 아니었고 그냥저냥 대학교도 잘 다녔다. 대학교 때 만난 아내와 순탄하게 결혼해서 귀여운 자식들을 낳아 잘살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지는 않아도, 삼겹살에 소주 한잔 사 먹을 형편은 되니 남 부럽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다. 


세상에 얼마나 아프고,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이 많은가? 각자의 기구한 사연들은 '인간극장'이 따로 없고, 한 사람의 인생을 놓고 보자면 '사는 것이 고통'이었다고 고백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남과 나를 비교하며 나의 운이 좋다고 말하는 것은 천박한 일이라 비난받아 마땅할지 모르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인간은 인간을 보며 시기, 질투, 비교, 안심하며 살아간다는 점이다. 인간은 어떻게 보면 정말 차가운 존재다.


내가 운이 좋다고 계속 말하는 것은 일종의 미신을 믿는 것일 수 있다. 


주문을 외우면 마법이 일어난다. 상상하는 무엇이든 마법으로 이룰 수 있다. 나는 운이 좋다고 주문을 외워보자. 마법이 펼쳐질 것이다.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비합리적인 믿음을 미신이라 말한다면, 나의 '운이 좋다.'는 주문은 미신임에 틀림없다. 다만 신실한 종교인이 아닌 나로서는 무엇이든 믿음을 바칠 대상이 필요한데, 나는 나 스스로를 종교로 설정하고 기도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 미신은 특별하다. 나는 나를 믿는다. 그래서 운이 좋다는 주문은 내가 무엇이든 해냈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나 자신의 신념체계를 공고히 한다. 종교적 광신은 정말 세상에 무엇이든 가능하게 한다. 테레사 수녀같이 신에 절대적으로 귀의하여 한평생을 신의 사랑을 현현하는데 살아갈 수도 있고, 이슬람의 테러단체 같이 신에게 불경한 이단들을 척결하기 위해 자기 몸에 폭탄을 두르기도 한다. '내 인생을 신에게 바친다.'는 말의 의미는 이토록 극단적인 차이를 가지는 무서운 말이다. 


내가 운이 좋다고 말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 세상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이 세상은 알다시피 운에 의해 좌우된다. 인생이 잘 풀리는 사람은 본인이 대단해서 그런 줄 착각하고 살 수 있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다 운빨이다. 예를 들어 수많은 재능 있는 사람들이 노력하는 엘리트 스포츠를 보자. 어려서 빛나는 재능을 인정받아 청소년기까지 무사히 자라왔고, 청소년 국가대표까지 선발되어 자랑스러운 금메달을 땄지만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선수생명이 끝나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단 그들만의 불운은 아니다. 딱 한 문제만 더 맞았어도 합격이었는데 결국 불합격의 고배를 마시고, 딱 번호 하나만 더 맞았어도 인생역전 로또당첨인데 불운하게 떨어지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운에 좌우되는 인생이기 때문에 영화가 인생이고 인생이 영화다.


운이 좋다고 계속말한다고 운에 의해 결정된 인생을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떨어지는 불운의 운석 덩어리들 속에서 계속 정신의 끈을 부여잡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마약 같은 진통제가 필요한 법이다. 현실의 불운을 잊고 다시 시작할 용기는 영웅적인 의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홀로 기울이는 한잔의 술에서 나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닥쳐올 불운이라는 질병에 대항해 '운이 좋다.'는 주문을 외우며 예방접종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늘 읽은 '확률적 사고의 힘'은 확률에 근거한 사고야말로 우리가 운에 대항해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사고체계라 말한다.


 1) 다양한 대안을 찾아볼 것
 2) 실패를 용인할 것
 3) 장기적 관점을 가질 것


위 세 가지로 요약되는 확률적 사고체계의 핵심은 운에 저항하지 말고, 계속 행동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고 있는지 숙고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오늘 읽은 문장 중 가장 가슴에 와닿았던 한 문장을 소개하며 마치겠다.   


움직이지 않으면 우연에 부딪히는 일이 없고, 우연 속에서 진실을 발견하려는 마음가짐이 없으면 우연을 활용할 수 없다. 무수한 시행착오 끝에 행운을 만나는 것은 우연이라기보다 오히려 필연인 것이다. 
 -다부치 나오야, [확률적 사고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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