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토 다카시, [독서력]
고등학교 때 부럽다고 느낀 여자 사람 친구가 있었다. 학생회 활동을 하다 알게 된 친구였는데, 내가 다닌 학교는 남자반, 여자반으로 분리돼 있어서 여자 사람 친구를 사귄다는 건 꽤 드문 일이었다. 학생회는 학생들의 자치권을 행사하기 위해 ‘매주 2-3일 야간 학습시간에 회의를 했는데, 거의 학생회 임원들이 수다를 떠는 회의였다. 학생회 회의라는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를 활용해 여자 사람 친구를 사귄다는 건 나름의 특권이었으므로, 나는 그 특권을 최대한 활용해 그 친구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 친구는 키가 작고 몸집은 왜소했지만 눈동자가 크고 얼굴이 고양이처럼 생겨서 아주 똑 부러지게 말하는 친구였다.(소위 말해 남자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그런 고양이 상의 여자 친구였다.) 성격이 온순하고 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의가 없다거나 잘난 척을 심하게 한다거나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수준이 떨어지는 영화라면 낮은 별점을 부여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그런 영화평론가 같은 부류의 사람이었다.
이 친구는 말도 잘하고 글도 잘 썼는데, 이런 측면에서 정신적으로 평균적인 고등학교 남학생들과 차이가 많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학생회에서 그 친구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남학생은 많지 않았다. 나도 평균적인 정신 수준의 남학생인지라 그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게 자연스럽진 않았지만, 그 친구와 나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고등학교 도서관을 찾는다는 공통점 말이다.
내가 도서관을 이용한 이유는 남들에게 허세를 부리고 싶어서였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읽은 적도 없으면서 칸트 사상 요약집(200p)을 읽고 칸트를 다 아는 것처럼 허세를 부렸고, 이상의 시를 읽은 적도 없으면서 이상의 일대기를 대충 읽고 이상의 시에 대단히 감동한 것처럼 행동했다.
나와는 달리 그 친구는 도서관에 진심이었다. 정말 책이 좋아서 도서관에 살다시피 했고, 수업시간 외에는 자원봉사로 도서관 사서 맡아 책을 읽었다. 나와 그 친구의 대부분의 대화는 도서관에 무슨 좋은 책이 들어왔냐는 것이었는데, 그 친구는 ‘이번달에 무슨무슨 책이 들어왔는데, 어떤 건 좋고, 어떤 건 별로더라’라고 평가를 하는 수준이었다. 그 친구는 정말 대단한 다독가였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비결이 궁금했던 나는 그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은 책을 빨리 읽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실망스러운 진리였다.
“응 그건,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다 읽으면 돼.”
정말이냐고 되물었지만, 똘망똘망한 눈동자로 ‘응 정말로.’라고 시크하게 말하는 그녀는 진심인 듯했다.
내 주변에는 책 잘 읽는 친구가 한 명 더 있다. 나이가 들어서 서로 인생이 바빠졌음에도 매년 술 한잔씩은 꼭 하는 친한 친구인데, 이 친구도 대단한 다독가이다.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나이 들어 사회 생활할 때도 이 친구는 변함없이 책을 들고 다녔다. 술자리를 하면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항상 손 한편에 꼭 책 한 권씩 가지고 다녔다. 손때가 뭍은 그 친구의 책을 보면서 '이 친구가 패션 독서가는 아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 친구는 글도 잘 쓴다. 블로그에 글 쓴 지가 꽤 되는데, 내가 볼 땐 출간작가 중에서도 이 친구 정도 글을 쓰는 사람이 몇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짧은 문장을 연속적으로 사용해 자연스럽게 긴 흐름을 만드는 것이 글을 잘 쓰는 요령이라 한다면, 이 친구는 이런 글쓰기에 특화되어 있다. 그래서 이 친구의 글은 힘이 있고, 명확하고, 술술 재밌게 읽힌다.
어느 날 ‘책을 읽었다.’는 것의 기준을 이 친구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이 친구에게 있어 '책을 읽었다.'의 기준은 '핵심주장을 요약할 수 있는가?, 더 나아가 책에서 언급한 주요 사례를 설명할 수 있는가?'였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역시 실망스러운 진실을 듣고 말았다. 나는 좀 더 쉬운 길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권을 읽으면 책 읽는 것이 쉬워질까?’
이런 나태한 나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책 읽는 건 좋지만 좀 쉽게 읽고 싶다. 많이 읽고 싶지만 좀 빠르게 읽고 싶다. 이런 나태한 생각들은 마치 태권도를 처음 배우면서 검은띠를 매면 태권도를 금방 잘하게 될 것 같다는 한심한 생각이다. 나도 안다. 하지만 어쩌랴, 인간은 편안함을 추구하는 동물인 것을…
독서와 관련된 많은 책들을 보다 보면, 왕도는 없다. 고등학교 때 여자 사람 친구가 말한 ‘많이 읽기’가 정답이다. ‘많이 읽기’를 하면 다독가 친구가 말한 ‘핵심주장 파악’이라는 진정한 읽기를 할 수 있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많이 읽어야 할까? 어느 정도 기준이 있어야 목표도 생기고 동기부여도 될 것 아닌가?
일본 최고 다독가 사이토 다카시교수는 ‘독서력’이라는 책에서 책을 잘 읽으려면 ‘문학책 100권, 교양서 50권’을 4년 안에 읽으면 된다고 말한다.
100권+50권을 독서력의 기준으로 정한 이유는 독서습관이라는 측면에서 150권 정도를 4년간 읽는 것은 한 달에 2권 정도의 책을 읽는다는 말과 같으니 이 정도의 책을 읽으면 충분히 독서 습관이 길러졌다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살짝 꼰대스러운 말씀도 덧붙이는데, 과거 일본의 대학생들은 다 이 정도의 책은 읽었다고 한다.)
150권이란 정량적인 기준의 타당성을 따지기보다, 사이토 다카시교수가 말한 독서습관이는 측면에 주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이토 다카시교수도 언급했듯, 스포츠를 배우는 것과 같다. 독서는 일종의 기술이므로 연습하면 실력이 는다.
조기축구회를 술 먹는 자리로 활용하기보다 매주 축구연습을 하는 기회로 삼으면 중년의 메시도 꿈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독서를 폼생폼사의 패션으로 생각하지 않고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배우는 기회로 삼는다면 중년의 괴테도 꿈이 아니다.
습관이란 것은 무서운 것이다. 독서가 습관이 되면 화장실에서도 흡연장에서도 술자리에서도 전자책을 꺼내는 당신을 보게 될 수 있다. 거기다 글 쓰는 것까지 취미를 붙이게 되면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 좋은 글감 찾기라는 목적으로 독서의 대항해시대를 열게 된다.
독서는 습관이 되면 쉬워진다. 이 습관을 내 몸에 장착하기 위해서 사이토 다카시교수는 4년 동안 문학책 100권, 교양서 50권을 읽으면 된다고 했다. 현실적이고 좋은 제안이지만 나는 좀 더 기간을 줄이고 루틴을 힘들게 해서 빠르게 다독가가 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주 5일 매일 1권, 4개월에 100권을 목표로 하고 싶다. 300p정도의 책을 기준으로 1시간에 60p정도를 읽는 것이 나의 독서 상태이므로 아침 2시간, 점심시간 등 자투리 시간 1시간, 퇴근길 1시간, 잠들기 전 1시간을 합치면 얼추 책 한 권 읽기가 가능하다.
본인이 한 시간에 몇 페이지를 읽는지를 먼저 계산해 보자. 그리고 하루에 최대한 독서로 뺄 수 있는 시간이 몇 시간인지 계산해 보면 며칠 동안 한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지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계산을 바탕으로 일단 100권을 목표로 해보자.
나는 사이토 다카시교수처럼 책의 질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짬밥은 아니므로 무슨 책이든 100권이면 된다고 본다.(양심상 읽기 쉬운 자기 계발서, 웹소설은 빼자.) 무슨 책을 고를지, 종이책인지 전자책인지, 눈으로 볼건지 오디오북으로 들을 건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100권을 내가 돌파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된다. 소달구지를 끌고 천천히 유랑하듯 갈 건지, 람보르기니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갈 건지는 본인 재량의 문제다.
독서습관이 몸에 배면 책과 내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에 올랐다고 스스로 탄복하는 순간이 찾아온다.(자뻑은 유용한 동기부여 수단이다.) 이런 탄복의 순간이 찾아오면 본인 스스로에게 독서력 1등급의 상장을 건네주자.
다만 주의할 것이 있다. 독서력 1등급인 당신은 용변을 보는 짧은 순간에도 책에 몰두되어 어느 순간 화장실 지박령이 될 수 있다. 이러면 치질에 걸릴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항문외과를 방문했었다. 경고한다. 책은 책상에서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