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풀이불 Apr 20. 2024

캐리어에 사계절을 담는 삶

세계여행자의 미니멀 라이프

"도대체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확 다 버릴까보다!"

"이 표는 위탁수화물 10kg이야. 추가하면 9만원이래."


물건이 적은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동하는 날이 되면 왜 이렇게 캐리어가 무거운지 모르겠다. 전날 짐을 싸면서 캐리어에 쌓여가는 물건들을 한껏 째려보지만 아무래도 버릴 물건을 찾지 못하겠다. 당연히 집에서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극강의 미니멀리스트겠지만 여행가가 된 우리에게 과연 이 물건들이 필요한가 언제나 점검한다. 여기서 짐을 더 줄이고 싶은데 그게 우리에게 맞는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고,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다 버리자니 용기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속옷 하나로 살 용기 같은 거 말이다.


세계여행을 고백했을 때 짐은 어떻게 하냐는 질문이 두 번째로 많았다.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봐도 집에 있는 물건을 어떻게 캐리어 2개에 담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창고를 대여해서 물건을 보관해 놓을 거라고 추측하던 친구도 있었다.


3년 전쯤인가. 미니멀리즘에 관한 에세이를 읽다가 깨달았다. 아, 우리가 추구하는 모습이 미니멀리즘이었구나. 미니멀리즘을 상정하고 산 적은 한 번도 없는데 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간결한 소비를 통해 단정한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 다행히 버리는 것에는 미련이 없는지라 대대적으로 버린 자리를 그대로 두는 연습을 했다. 그 자리를 다른 것으로 채우지 않는 것. 대화할 때 아무 말하지 않는 순간을 견디는 것처럼 어색하고 약간은 불안한 그 기분. 하지만 그걸 '견디던' 시간이 해방감으로 바뀌는 짜릿한 순간이 온다. 가장 좋은 건 안정이 생긴다는 것이다. 옷장에 사계절 옷이 다 들어가는 걸로도 모자라 옷들이 숨을 쉬는 것 같은 느낌. 거실과 부엌 테이블에 아무것도 올라와 있지 않은 모습. 집안 어느 서랍, 찬장을 열어도 물건끼리 매너 거리가 충분한 그 상태. 내가 가진 물건이 모두 머릿속에 있으니 버겁지 않고, 사용하는 물품들이 몇 개 없기 때문에 깨끗하고 아껴 사용하는 태도가 생긴다. 단출하고 단정한 생활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덕분에 한국에 집을 두지 않고 세계여행을 하려면 짐을 대폭 줄여야 한다는 사실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제 한층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삶을 살기 위해 한국에 있는 모든 자산을 처분했다. 본가에는 여름과 겨울 정장 각 한 벌, 구두 한 켤레를 맡겼다. 물론 가족들은 얼마가 됐든 맡길 것이 있으면 두고 가라고 했다. 집 창고 한켠을 사용한들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건 우리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삶의 형태인데 거기에 따라오는 물건 뒤치다꺼리를 가족에게 맡기고 싶지 않았다. 그건 조금 비겁하다고나 할까. 무기한 세계여행이다, 우린 다 처분하고 다닌다고 멋들어진 단어를 쓰면서 사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한 수많은 물건들을 맡기거나 물욕을 이기지 못하고 산 물건을 야금야금 한국으로 보내고 싶지는 않다.


그러니 우리의 사계절을 28인치 캐리어 2개, 노트북용 백팩 2개, 작은 크로스백 2개에 다 담아야 한다. 덕분에 지금은 물건과 내외하는 사이가 됐다. 물건 하나를 들이려면 가진 것 하나를 처분해야 한다. 낭비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물건의 수명이 다 해야 하나를 살 수 있다는 말이다. 혹시 꼭 필요해서 사는 거면 생각할 게 많아진다. 예전에는 내 돈 주고 내가 사는데! 라든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야, 같은 변명을 주로 사용했다면 지금은 다르다. 정말 필요한가, 무게는 어떤가, 부피는 어떻지, 합리적인 가격인가, 그리고 다시 ‘정말 필요한가’.

이고지고 다닐 수 있을 만큼만 소유할 것

어느 정도라도 물건 욕심이 있으면 이런 삶의 형태가 맞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생일을 맞이해서 멋진 장소에 놀러 가는 날, 예쁜 원피스가 입고 싶을 수 있다. 그곳이 여름일 수도, 겨울일 수도, 일교차가 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맞는 원피스는 캐리어에 없다. 원피스 하나 산다고 크게 달라지냐는 마인드는 위험하다. 한 계절 원피스를 샀다가 다른 계절인 국가를 가면 결국 짐이 되기 때문이다. 작고 얇은 물건을 경각심 없이 사다 보면 그들의 무게가 어느새 불어나 있다. 그리고 낯선 국가에서 맘에 드는 원피스를 단번에 고르기도 어렵다. 결국 늘 입던 흰색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고 크로스백을 맨다. 매일 입는 스타일이어도 깔끔하게만 입는다면 그걸로 좋다. 남의 시선도 필요 없고 내가 나에게 엄격히 들이대는 미의 잣대도 내려놓는다. 하지만 여기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느 나라를 가든 한국보다 싸게 살 수 있는 브랜드가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야시장, 쇼핑몰, 백화점, 아울렛을 다닐텐데 사는 걸 ‘참아야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우울하거나 아쉬움이 쌓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참 다행이지 싶다. 우린 참는 게 아니라 이렇게 비워진 상태로 사는 게 좋은 거니까. 가볍게 나갔다가 가볍게 돌아오는 외출이 만족스럽다. 이러한 성향이 우리를 무기한 세계여행으로 이끈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항상 이렇게 꼬질꼬질한 건 아니구요...

얼마 전, K가 대대적인 쇼핑을 했다. 달랑 하나 있는 신발이 너무 해져서 걸음걸이까지 영향을 주길래 고르고 골라 아디다스에서 운동화 한 켤레를 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쨍한 햇볕 때문에 얇은 긴바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가져온 반바지도 오래 입어서 변색이 심해졌더라. 그래서 무려 긴바지인데 중간 지퍼를 열어서 떼면 반바지가 되는 힙쟁이 바지를 역시 아디다스에서 샀다. 오래 신은 운동화와 변색 반바지는 미련 없이 버렸다. 이렇게 소비를 하면 내가 가진 물건을 모두 나열할 수 있고 요상하게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제 다시 한번 나아가고 싶은데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서부터 어떻게 더 줄여 나갈지 대화한다. 사실 답은 정해져 있다. 옷을 줄여야 한다. 우리는 옷의 종류가 많은 것이 아니라 반팔티 3장처럼 기본 의류의 개수가 2-3개씩 있다. 아마 세탁 시 여분이나 간절기 때 받쳐 입을 티셔츠처럼 걱정이 앞서 과감해지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계절 옷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해당 도시의 계절에 맞는 옷을 사서 입고 버리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모든 품목을 하나씩만 두는 것이다. 반팔 하나, 긴팔 하나, 반바지 하나, 긴바지 하나, 겉옷 하나, 속옷 하나, 양말 하나, 이런 식으로. 여기에 대한 반박도 언제나 같다. 집착적으로 비슷한 계절만 찾아다닐 수도 없고, 아무리 적게 사더라도 옷을 자주 샀다 버리는 건 낭비여서 싫다. 하나씩만 가지는 방법은 아직 용기가 부족하다. 이런 내가 못마땅 하지만 너무 빠른 진도는 적응이 되질 않으니 천천히 가야지 뭐 어떡하겠는가. 심지어 나는 속옷을 매일 손빨래하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속옷이 하나만 있는 건 이유를 알 수 없는 불안(?)을 초래한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 멀쩡해서 버릴 수 없는 28인치 캐리어 2개를 확장하지 않은 채 다니는 걸로 임시 타협을 봤다. 과연 우린 점차 용기가 생길 것인가, 그냥 큰 캐리어 2개에 적응을 해버릴 것인가.

이사하는 날

사실 뭐가 됐든 적게 소유하는 삶이 잘 맞는다는 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오히려 선물을 받은 기분이다. 우리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게 된 거니까. 집이 없다고, 차가 없다고, 매달 면세점에서 보는 저 가방이 없다고, 한국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그것이 없다고, 멋진 시계가 없다고, 에스프레소 머신과 스타일러가 없다고 속상하거나 조급해하지 않는다. 옷장을 열면, 서랍을 열면 물건이 나를 조여 오는 그 기분이 싫었다. 착착 정리를 해서 깨끗해 보여도 우리 집 곳곳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캐리어 2개의 문을 열면 한눈에 딱 보이는 우리의 사계절, 그게 나를 자유롭게 한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사실 거기서부터 자유로운 삶이 시작됐다. 꼭 나비효과처럼.


이 삶을 잃고 싶지 않다. 가볍고 심플한 생활에 숨통이 트이는 이 기분을 잊어버리지 말아야지. 옛날의 습관이 다시 찾아와서 어렵게 비워둔 캐리어의 한 모퉁이를 차지하게 두지 말아야지. 생각해서 소비하는 척 나를 속이지 말아야지. 물건은 물건일 뿐이지 나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녀석이 아니라는 걸 기억해야지. 속이 뻥 뚫리는 이 행복을 유지하기 위한 나만의 다짐이자 주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버리자?ㅋㅋ


매거진의 이전글 곱게 자란 한국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