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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노 Oct 26. 2024

EP 12. 호주는 인종차별이 심하다던데?

인종차별? 영어차별? 

내가 호주에 가기 전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한 말이 있다. 호주는 '백호주의 (White Australia Policy)'라는 정책이 한동안 있어서 인종차별이 심할 것이라는 것이다. 백호주의는 1900년 초부터 한 70년간 백인이 아닌 인종의 이민을 제한했던 정책이었다. 1850년대에 호주에서 대량의 금괴가 발견되면서 기존 대다수의 호주 이민자였던 백인들이 중국이나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이민자가 자신들의 이익에 해가 되는 것을 우려해서 만든 정책이라고 한다. 


1910년 발표된 백호주의 노래인 White Australia의 악보집 (출처: 나무위키)


그 당시 호주는 사실 나에게 조금 미지의 세계였다. 영어권 국가이긴 하지만 미국과는 다른 나라, 오히려 영국 쪽 계열의 국가라 왠지 북미보다는 유럽 쪽의 성향이나 문화가 많이 녹아있을 거라 생각됐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리고 호주 하면 여러 인종들이 사는 나라지만 유난히 피부가 하얀 금발의 백인들이 많은 곳이라는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나조차도 인종차별이 은근히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실제로 호주는 인종차별이 많이 있을까? 나는 시드니를 떠나서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호주에서 14년 살면서 호주의 다른 주나 도시들에 여러 번 여행을 가봤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봤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나의 모든 경험을 돌이켜 봤을 때 인종차별이라고 얘기할 만한 일은 지난 14년 동안 2번밖에 없었다. 그것도 호주에 처음 살던 초창기에 있었던 일이라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그 일들이 확연하게 인종차별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가끔 외국에서 안 좋은 일을 당했을 때 그게 인종차별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어디 가나 이상한 사람은 있듯이 외국의 현지인이 이상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그 현지인의 일진이 안 좋아서 짜증 내면서 우리를 대할 수도 있다. 


첫 번째 내가 인종차별이라고 할만한 일은 내가 일본인 대학원 친구와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차도 옆의 인도길을 걷고 있을 때 생겼다. 나랑 나의 친구는 그냥 차옆의 도보를 걷고 있었는데, 차에 타고 있던 호주 백인 청소년들이 날계란 하나를 우리를 향해서 던진 것이다. 우리는 계속 걷고 있었기 뒤에서 어떤 차가 오는지도 보지 못했고 때문에 다행히 날계란을 맞지는 않았다. 그 청소년들은 그냥 웃으면서 지나갔고 또 다른 날계란을 던지지는 않았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들의 얼굴을 보고 던진 게 아니기 때문에 뒷모습만 보고 우리가 동양인 줄 알고 날계란을 던진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지금도 난 이게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번째 있었던 일은 내가 Queensland라는 호주의 다른 주에 방문했을 때 일어났다. 나는 가족이랑 여행을 하고 있었고 호주의 대형마트에 들어가는 길이였는데, 입구 근처에서 어떤 큰 백인 남자가 나를 보더니 갑자기 'Fuck'이라고 소리를 질렀다. 'Fuck'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말로 치면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데 '엿같다'라는 뉘앙스의 뜻이 된다. 그래서 사람한테 그런 말을 쓴다는 것은 모욕적일 수 있다. 이 사례는 첫 번째 사례와 다르게 먼 거리에 있었지만 나를 쳐다보고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정신이 이상해보이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그냥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 그런 말을 해서 적잖게 당황을 했고 따로 대응을 하지는 않았다. 사실 나도 그 사람이 한마디만 더 했으면 어떻게 했을지 모른다. 지금이었으면 당장 물어보고 나한테 한 말이 맞는지 따지겠지만 그때는 너무 당황했고 이민 초창기라 호주에서 내가 폭행과 같은 일에 연류가 되면 내 영주권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일단 상대하기보다는 피했다. 


만약에 호주에서 나의 경험이 위에서 언급만 경험으로 끝났다면 아마 나는 한국에 돌아가서 호주는 정말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했을 수 있다. 하지만 호주에서 대학원을 나오고 여기에서 10년 이상 회사생활을 하다 보니 그냥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질이 낮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느 나라 어떤 곳을 가더라도 이상하고 무례한 사람들이 항상 있는 것처럼 말이다. 




누가 나한테 호주에 인종차별이 있나고 물어본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호주의 인종차별이라고 여겨지는 많은 부분들은 사실 인종적인 차별이라기보다 영어를 못해서 생기는 차별, 또는 질 낮은 호주 현지인을 만난 경우, 아니면 호주 문화적 에티켓을 지키지 못했을 때 부정적으로 대우받아서 생기는 상황들이 많다."라고 말이다. 정말 인종차별이 심한 곳이었다면 한국에서 온 이민자인 내가 회사 입사한 지 2년 6개월 만에 10명의 디지털 미디어 전문가들을 데리고 있는 팀장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실력이 있고 능력이 되면 인종과 관계없이 승진을 하고 인정을 받는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호주에서 만나게 되겠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런 나의 생각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다음 이야기..."원만한 호주 회사생활의 필수요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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