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해보자. 신기하게도 기분이 썩 나쁘진 않다.
지금 쓰고 있는 에세이는 `나`에 대해서 탐구해보고 들여다 보는 에세이다. 여기서 나는 지금 이 글을 쓰고는 필자가 될 수 있고 혹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도 될 수 있다. 내가 왜 이글을 쓰냐하면`나`에 대해서 깊숙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의 자존감 측면에서 말이다.
자존감이 가장 낮을 때 우리는 누구를 가장 돌보지 않는 줄 아는가? 바로 나 자신이다.
유튜브 쇼츠에서 한 신부님이 말씀하신게 기억난다. 말기 암 환자가 가장 후회되는 것에 대해서 말했다. 자기는 남편, 부모님, 자식들에게 할 수 있을 만큼 많이 돌보고 잘해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딱 한 명 잘해주지 못했는데 그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나는 학창시절이 그렇게 행복하지 못했다. 아니 행복한 것이 아니라 불행했다. 여러 일이 있었고 내 자아가 형성될 시기에 나는 자아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 즉 자존감이 생기지 않았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내가 어떤점이 부족하고 어떤 점이 좋고 또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그렇게 못받아들이면 사람들은 두 가지 선택을 한다.
무시 그리고 회피. 나는 둘다 해봤다. 결과는 엉망이었다. 인간 관계에서도 해봤고 나의 학업에서도 해보고 여러가지에서 해봤다. 상대방이 나를 공격하고 나를 상처주어도 나는 애써 무시하고 회피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어도 나는 애써 모르는 척 했다. 결국에 가장 힘든 사람은 바로 내가 되었다. 이러한 무시와 회피는 곧 자기 자신을 더욱 깊숙한 곳으로 가도록 만드는 촉진제가 되었다.
그래서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빨리 받아들이고 다음을 생각해야 한다. 거기에서 머물러 있으면 밑도 끝도 없어진다. 힘들더라도 `나`를 위해서 빨리 받아들여야 한다. 받아들이면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지 않다. 오히려 그 전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그 다음 이런 생각이 든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지?
문제에 있어 그 문제에 빠져 있을 때보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다음을 기약하고 다음을 생각할 때 나는 나 스스로 성장함을 느꼈다. 이때 깨달았다. 힘들다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힘든 것을 인정하고`나`를 위해서 덜 힘들게 만들어야 내가 더 좋아진다.
나는 이 부분을 내가 신규교사로 27명의 학생의 담임을 맡게 되었을 때 이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