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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온 May 08. 2024

스마트폰

#5/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새벽 5시, 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일하는 사람이다.

아 아니 스마트폰이다. 사람들 틈에서 오래 붙어 있더니 이제는 내가 사람 같다.




 내 하루는 동거인을 잠에서 깨우면서 시작한다. 일어나자마자 밤 사이 온 특별한 연락이나 SNS 알림을 확인하는 동거인은 특유의 변함없는 표정으로 대충 훑어본다. 예전에는 연락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요즘엔 없나 보다. 자연스레 카톡부터 키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하긴, 미라클 모닝을 한다고 나를 꼭두새벽인 5시부터 일하게 만든 날부터 뭔가 결의에 가득 찬 표정이긴 했다. SNS에 짧은 동영상을 업로드한다고 동영상과 사진이 최근에 급격하게 늘어났다. 

그걸 유튜브에서는 숏츠, 인스타그램에서는 릴스로 부른다지. 내가 아무리 스마트하다 해도 한계는 분명히 있다. 사람들이 말을 더듬듯이 나도 내 동거인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해 줄 때 버벅 거린다. 동거인이 게을러서 날 제대로 관리 안 해준다. 그래서 제대로 관리해 줄 때까지 버벅거리려고 한다. 심하다 싶으면 알아서 정리해 주겠지. 껐다 켜기만 해도 되는데 그의 머릿속에 릴스랑 독서, 글쓰기, 창업. 뭐 이런 거만 들어있는 것 같다.

나한테도 용량이 있다 사람들이 한 번에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한 번에 기억할 수 있는 양도 정해져 있다. 조만간 꽉 찬다. 


"동거인님 이거 보고 계시죠? 내 메모리 정리를 해주셔야 내가 도움을 드릴 수 있습니다." 


 동거인이 SNS뿐만 아니라 회사에서도 나를 이용해서 일하는 빈도가 22년 10월 이후로 많아졌다. 회사에서 생산팀으로 근무를 했었지만 22년 10월부터 총무팀으로 직군전환을 했는데 무슨 통화를 그렇게나 많이 하고 사진을 그렇게나 많이 찍는지 쉬는 날이 없다. 그의 표정이 일하면서 점점 어두워지는 데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어서 그런지 옆에서 아무 말도 못 하겠다. 날 신경 써주지 못하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바로 옆에서 그가 일하는 모습도 보고 퇴근 후에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며 꾸준히 글을 쓰고 콘텐츠를 만드는 모습을 보니 진심이 느껴졌다. 총무팀으로 들어온 지 어언 1년 8개월째가 되어 간다. 벌써 퇴사 생각을 하고 있는데 어쩌면, 이 정도 열정이면 계획보다 빨리 퇴사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를 아무리 스마트폰이라고 막 굴리면 스마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모르는 듯싶다. 

 본인은 주말에 잘 쉬면서 나는 왜 못 쉬게 하는지... 말하다 보니 어느새 불평만 늘어놓게 된다. 나도 오래 일하다 보니 이름답지 못하며 살고 있는 것 같다. 벌써 2년이 넘어간다. 들어보면 2년이 지나면 스마트폰을 칼같이 바꾼다던데 이제는 그의 패턴이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업무 영향도 있고 퇴근 후에 하는 일도 마찬가지여서 그런 것 같다. 한동안 나를 떠나보내지 않을 걸 알기에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나 같은 기계도 부정보다는 긍정이 좋다. 부정적인 생각을 했으니 공평하게 긍정적인 생각도 해봐야겠다. 


 내가 백번 양보해서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다른 애들보다 내가 내 동거인한테 제일 도움 많이 된다고 자부한다. 며칠 전에 샤프랑 스마트워치가 부러운 눈으로 나를 본 느낌이 살짝 들었다. 아직 말은 안 해봤는데 그 놈들 표정이 귀여웠다. 특히 스마트워치는 나랑 함께 하는 시간이 많은데 괜히 흘깃 쳐다보고 한마디도 안 한다. 질투하는 듯한 시선이 괜한 승리감을 안겨준다. 

 동거인이 퇴근하면 나와 제일 많이 하는 게 유튜브를 보거나 인스타그램을 보는 것이다. 물론, 짧은 쾌락의 도파민을 위해서만 보는 건 아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릴스를 올리기 위해 참고하는 자료로서 북스타그램을 운영하는 인플루언서나 비슷한 계열의 계정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릴스를 본다. 그가 운동할 때는 유튜브에 '웅장한 음악 모음'을 검색해서 음악을 틀어놓고 운동을 한다. 충분히 잘 사용하고 있어서 칭찬의 의미로 박수를 쳐주고 싶지만 손이 없어서 못 치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나는 틈틈이 다른 용도로도 쓰인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던가 결혼식 때 신랑 신부를 더 빛내기 위해 라이트를 켜 아름다운 별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요즘 정신이 오락가락 하지만 그래도 제법 이름 값 한다. 그와 같이 산지 2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는데 약정 끝났다고 망치로 쓰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어휴 말한 대로 될까 봐 무섭네. 요즘 말하는 대로 다 되고 있다고 기분 좋아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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