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시온 May 07. 2024

스마트 워치

#4/28 짧은 글 에세이_사물의 입장에서 글쓰기

고요한 고전의 우아함보다는 현대적인 세련미를 바라며, 나는 시선을 사로잡는 독특함을 향해 단숨에 발걸음을 옮겼다. 그 결과,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모든 것은 다 그로인해 시작됐다.




 매일 그의 손목에 붙어 있다가 떨어져 충전하는 시간을 반복한다. 그만큼 나는 쓰임이 많은 존재.

그러나 점점 나도 쇠약해진다. 예전에는 48시간까지도 힘내서 그의 도움이 됐었는데 요즘에는 36시간 정도

힘써볼 수 있다. 나이가 들었나 보다. 스마트한 시계니까 그만큼 다른 시계들보다 힘을 더 많이 쓴다. 

'천재들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이겠지'하며 받아들이련다.


 그가 회사에서나 집 밖에서 무언가 집중하고 있을 때 폰으로 연락온 걸 까맣게 모르고 있는 순간들이 있다.

그때마다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면서 그에게 알려준다. 뿐만 아니라 그의 운동량도 측정해 준다. 그가 걷거나

뛰거나 하는 그 순간에 나는 그의 맥박 소리에 귀 기울이고 최대한 그를 온몸으로 느끼려고 노력한다. 운동이 끝나고 나와 눈이 마주치면 항상 그는 뿌듯한 미소를 보이곤 하는데 그때 참 뿌듯했다.


 벌써 같이 지낸 지 3년째. 그전에 같이 붙어있던 시계들은 가끔씩 주말에 그가 연락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을 때만 데리고 나간다. 처음엔 질투가 나긴 했는데 괜찮다. 3년 동안 붙어있으니까 왜 나를 데리고 나가지 않는지 안다. 오래된 연인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아마 그도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진짜 가끔 그런 느낌을 받는지 물어보고 싶다. 생각해 보면 그가 제대로 된 연애를 못한 지 꽤 됐지 아마?

이제는 감조차 잃어버린 그에게 물어본다 한들 그가 오래된 연인의 느낌을 알고 하는 말인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다만, 그의 행동에서 나타날 테다. 나를 얼마나 배려해 주는지, 내가 방전되기 전에 나를 신경 쓰며 제때 충전해 주는지, 행여나 긁혀서 내 피부가 벗겨질까 걱정하는 등 여전히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과 같지 않겠지만 말이다. 벌써 내 다음의 다음 모델까지 나왔다. 주변에서 신제품에 대한 칭찬을 할 때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 그래? 그래도 아직 괜찮아 고장도 안 났고 문제도 없어. 충분히 예뻐"


 사실 같이 붙어 있다 보면 그 뒤에 귀찮아서 바꾸지 않았다는 말이 생략 됐다는 걸 안다. 가끔 스마트폰에 삼성 팝업광고 중 워치6 관련 광고가 나오면 습관처럼 광고를 클릭하는 그를 본다. 그래도 충분히 예쁘다고 말해줘서 고마웠다. 늘 같이 있어서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이 사람은 그렇지 않다. 표현이 서툴지만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잘 배운 다정함이 보인달까? 예전에 비하면 많이 발전했다. 예전에는 사람은커녕 사물에게도 다정함이 없었다. 

 걸핏하면 자기 물건을 잃어버리고 구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계에도 술 취해 넘어져서 아스팔트 바닥에 찍히고 긁힌 자국을 남겼다. 아직까지도 그날의 일이 생생할 정도라며 내 옆에 있는 시계는 종종 말하곤 한다. 자기 물건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 우산을 택시에 두고 내리기도 하며 심지어 블루투스 이어폰이나 지갑, 스마트폰까지 택시에 두고 내린 적도 있었다. 


 사람은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 이제는 이 사람이 그러지 않을 만큼 성장했고 자기 물건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따지고 보면 스마트폰보다 내가 더 그와 오래 붙어 있는다. 옆에서 본인이 더 친하다고 하는데 가소롭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가 자기 물건에 대해 다정 해진 건 시간이 흘러 어른이 돼서도 맞지만 그간 그와 관계 맺었던 인연들과 읽었던 책들에서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제일 오래 붙어있던 내 영향이 제일 크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모두 풀어내기엔 글이 다소 길어질 것 같아 간략하게만 말하겠다.

 연애를 하며 그동안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해 이기적 또는 개인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봤다면 연인으로써 주고받는 감정들에 의해 많이 성숙해진 듯하다. 그가 화를 낼 때 올라가는 심박수는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 됐고 그가 웃을 때 스트레스 지수가 많이 낮아지는 것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감정의 희로애락이 상대방을 어떻게 하면 잘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들었다. 이 성찰에 힘을 실어준 게 책이었다. 감정을 다스리고 행동을 다스리게 되니 말을 조심하게 되고 아름다운 향기를 내는 언어를 찾게 됐다. 많이 개선 됐지만 아직 멀었다. 요즘은 소설 속 아름다운 문장을 수집한다지? 성찰 이후 사유하게 되는 과정까지 알게 된 그에게서 제법 어른스러워진 말투와 생각들이 이전보다 재미는 떨어졌지만 더 진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뭐... 어찌 됐든 잘하는지 못하는지는 내가 계속 옆에 붙어서 실시간으로 감시할 것이다. 내가 항상 눈 똑바로 떠서 쳐다보면 알아서 조심하겠지.  

 


이전 04화 머그컵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