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의 화영 Dec 22. 2024

남겨진 사람들 2

남은 사람은, 아프다.



나이트 근무 퇴근을 앞둔 아침이었다. 밤새 환자들이 무난히 잘 버텨주어 안심하고 퇴근하려던 찰나, 전화기가 울렸다. (병원의 모든 병동 환자를 모니터링하고, 응급상황 시 출동해서 돕고 해결하는 신속대응부라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환자가 의식이 쳐져서요! 빨리 와주세요!"

'누구지?! 내가 모니터링으로 발견하지 못한 환자가 있었나?' 복잡한 마음으로 후다닥 여러 장비를 챙겨 달려갔다. 


"여기에요 여기!" 

병실 앞에는 이미 당직 교수님과 보호자분이 계셨다. 교수님께서 환자 상태를 설명하고 있었다. 서둘러 동맥혈검사를 시행해 보니 이산화탄소수치가 170mmHg이었다. 이산화탄소의 정상수치는 보통 37~43mmHg. 이산화탄소가 몸속에 정상수치를 넘어 쌓이게 되면 의식을 잃는 증상이 나타난다. 환자는 이미 의식이 전혀 없고 스스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상태였다. 인공호흡기를 적용할지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응급한 상황이었다.


환자는 이미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을 암 말기 환자였다. 이미 암이 치료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번져있는 상태였다. 인공호흡기의 적용이 환자를 살리는 치료가 아닌 연명치료가 되는 상황에서 보호자는 환자를 편히 보내드리는 것을 선택하셨다.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서류를 작성하고, 보호자가 다시 병실로 들어왔다.

"어떡해... 어떡해....."

"계속 아프다고 했는데.. 내가 조금만 참으라고 했어요.. 진통제 맞았으니까.. 내가.. 참으라고 했어요.."

"미안해.. 미안해.. 나 깨우지.. 힘들다고 깨우지.."


사소한 행동들이 죄책감이 되어 보호자분의 마음에 박힌 듯했다. 막을 수 없이 찾아오는 죽음 앞에서 결코 누군가의 잘못이 아님에도 그들의 마음에는 생채기가 생긴다. 특히 환자 곁에서 오래 함께 하고 정성을 다했던 이들일수록 그렇다. 불행히도 마음의 상처는 함께했던 기억 사이사이 스스로가 만들고, 그만큼 고생과 희생에 비례하는 것 같았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OO내과 OO병동"

CPR(심폐소생술)을 알리는 방송이 송출되었다.


해당부서로 달려가 확인해 보니 며칠 전, 의식이 없는 환자를 대신해 가족들이 상의 끝에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고 의사를 밝혀 중환자실로 가지 않고 병동에서 치료받고 있던 환자였다. 연명치료의 항목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심폐소생술을 비롯해 인공호흡기 적용, 투석 등 모두 시행하지 않기로 '연명치료 중단을 이행' 한 분이었다.


이미 CPR은 시행되고 있었다.

"이 분 연명 이행 하신 분 아닌가요?" 담당간호사에게 물었다.

"아, 갑자기 보호자 한분이 이행을 철회하겠다고 하셔서요!" 다급한 대답이 돌아왔다.


불가피하게 환자 본인이 아닌 보호자들이 연명치료 여부에 대해 결정해야 할 때에는 가족 전원의 의견이 일치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의견이 다르다면 서류를 작성할 수 없으며 작성이 완료된 이후에도 언제든지 마음이 바뀌면 철회할 수 있다. 이 경우는 후자에 해당하는 상황이었다. 곁을 지키던 보호자가 의식을 잃고 창백해져 버린 환자를 보고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해 뭐라도 해달라고 소리친 것이었다.


계속되는 심장마사지. 분주한 의료진들의 대화소리, 끊이지 않는 알람 소리들, 그 사이로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입으로는 피가 뿜어져 나온다. 돌아오지 않는 심장과 이어지는 충격적인 광경들에 결국 보호자가 울며 소리쳤다.

"그만... 그만해 주세요... 그만해 주세요...."


CPR이 중단되었다. 의사가 모니터를 확인했다.

"asystole(심장이 멈춘 상태)입니다.."

"O월 O일, O시 O분, OOO님 사망하셨습니다.. "


살리기 위한 일들을 분주히 하던 의사와 간호사들이 이제는 죽음에 대한 절차들은 진행하기 위해 분주히 병실에서 나갔다. 병실에는 나와 환자 그리고 보호자 남았다.


"저.. 엄마 만져도 되나요..?"

그래도 된다는 나의 말에 보호자가 환자에게 다가갔다. CPR을 위해 풀어헤쳐진 환자복 단추를 여미며 보호자가 말했다.


"미안해.. 미안해 엄마.. 내가 더 괴롭게 한 것 같아.. 미안해.."

"사랑해.. 잘 가.. 미안해.."


하염없이 울며 환자의 머리를, 뺨을 쓰다듬으셨다. 나는 조용히 환자 얼굴의 피를 닦아냈다. 수많은 죽음을 접하며 무뎌진 나도 눈물이 났다. 애써 참아보며 환자를 정리했다. 

의학적 판단으로는 가망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불필요한 과정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 앞에서 담담하게 안녕의 인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겠는가. 






나는 떠나간 환자들의 곁에 남은 마지막 사람들 즉 보호자분들께 미처 전하지 못한 말이 많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말을 조금 전해보고자 한다.


"보호자분 탓이 아니에요." 

"고생하셨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