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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야자 Feb 16. 2024

오히려 좋아, 가보자고, 중꺾마 그리고

우울증 극복

'오히려 좋아', '가보자고', '중꺾마: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여기서 더 나아가 '중꺾그마: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이다'까지 유행을 탔죠), 모두 몇 년 전부터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다 못해 사형선고까지 내려진 밈(Meme)들입니다.


이 밈은 놀랍게도 모두 우울증 혹은 또 다른 정신질환 극복과 관련 있습니다. 어째서냐구요? 심리치료 중 한 분야인 인지행동치료(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 Verhaltenstherapie)에서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인지적 재평가‘입니다. 인지적 재평가는 감정조절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 한 가지 전략인데요, 다시 한번 풀어서 설명해 보자면 말 그대로 '인지적인 노력‘을 통해서 어떠한 사건에 대하여 '다시 평가‘하는 것입니다.


말로만 쓰니까 어렵네요.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독일에서는 지하철, 버스, 기차, 심지어는 비교적 덜 흔하긴 하지만 비행기까지... 모든 교통수단이 아무런 예고 없이 십 분이고 한 시간이고 연착되는 일이 아주 흔합니다. 처음 독일에서 이러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는 정말 참아주기가 힘들었습니다. 사실 아직도 힘들긴 합니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일에 매번 화를 내면 여기서 살아갈 수가 없죠. 언젠가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떠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쉽지 않죠. 받아들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 또한 인지적 재평가와 별개로 감정조절 방법 중 하나입니다.) 받아들이는 건 받아들이는 거고, 그와 별개로 이 상황을 인지적으로 재평가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기차가 예고 없이 1시간 연착되는 상황에서 '아 또 시작이네, 도대체 독일기차는 왜 이모양이야',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고자 독일에서 살까, 한국이면 이런 일은 상상도 못 할 텐데', '아휴, 언제쯤 나아질 거야! 한 시간 후엔 오려나? 또 늦어지는 거 아니야?', '짜증 나 죽겠네, 미친 거 아니야?' 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아, 기차가 한 시간 늦게 오네, 정말 짜증이 난다' + '짜증이 나긴 하지만 그래도 한 시간 동안 역 주위에 공원에서 산책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겠다.'라고 생각해보자 라는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쉽지 않은 것 압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감정조절을 할지는 본인의 선택이고, 그 선택에 따른 결과도 본인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라는 것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세상의 이치입니다. 혼자서 불평불만하며 부정적인 감정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전혀 효과적인 정서조절방법이 아닙니다. 조금은 어색하고, 조금은 익숙하지 않고, 조금은 오글거리더라도 효과적인 정서조절법을 한 번 시도해 보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좋아'는 모든 상황에서 '인지적 재평가' 방식을 사용하기에 딱 들어맞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차가 한 시간 연착되었네? 오히려 좋아~ 오늘 일찍 나오느라고 서둘렀는데 커피 한 잔 하고 와야겠다!' 라고 해보는 거에요.


핵심은 문제가 되는 상황 자체 (예: 기차가 한 시간 연착한 상황)는 다르게 평가하되, 본인이 느끼는 감정 (예:짜증)은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있습니다. 부정적인 상황은 재평가되어야 하지만, 내 감정은 받아들여주어야 합니다. 기차의 연착으로 느끼는 '짜증' 혹은 '불만족'이라는 감정은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이 감정과 연결되어 따라온 다른 감정들이 있는지 살펴봐주면 더욱 좋습니다. 예를 들어 언급된 상황에서는 연착으로 인해 다음기차를 놓치는 상황이 올까 봐 '불안함'이라는 감정이 수반될 수 있겠지요. 이러한 감정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줍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런 감정들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나쁜 것이 아니니까요. 모든 감정들은 제 각각 생존에 필수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1. 내 감정 받아들이기 2. 인지적 재평가 까지 마치셨다면, 마지막으로는 3. 행동 실천입니다. 긍정적이고 도움이 되는 작은 활동들을 통해 감정조절에 마침표를 찍어주는 것입니다. 위의 예에서는 예를 들어 한 시간 기다리는 동안 향긋한 차, 음료를 마시러 간다거나 혹은 잠깐 산책을 다녀오는 것이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다른 대안적인 활동을 찾아야겠죠. 당장 수중에 커피 한잔 사 마실 돈이 없거나 가지고 있는 짐이 너무 많아서 크게 이동이 어렵다면, 앉은자리, 서있는 자리에서 가능한 숨쉬기 연습을 한다거나, 오랫동안 연락을 해본 적 없는 친구나 지인에게 연락을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이 글의 도입부에 언급된 밈들을 통해서 표현해 보자면 '한 시간 연착? 오히려 좋아, 아아메 한잔 가보자고~' 로 이어지는 겁니다. 물론 이미 무의식적으로 이런 방법을 시행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포인트는 그러나, 일단은 내 안에서 발생하는 부정적 감정을 인식하고, 인정해 주며, 이것을 '의식적'으로 반복해서 시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괜찮아요. 갑자기 이런 방법으로 감정을 조절하려고 하면 처음 몇 번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혹은 '꺾였어도 그냥 하는 마음가짐' 입니다. 그러니 지치고 힘들 때마다 이제는 저 세 가지 밈을 주문처럼 외우자고요!


누군가 그랬죠, 어떤 밈이 방송이나 매체를 타기 시작하면 그 밈은 사형선고가 내려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이 대목에서 저는 또 하나의 사형선고가 내려진 밈을 말해보고 싶습니다.


어쩔 티비-


'그래서 어쩌라고요, 사형선고가 내려진 밈이든 싱싱한 밈이든 내가 쓰고 싶어서 쓰는데 어쩔 거냐고요'

라고 생각하는 자세, 다 같이 연습해 봅시다!


2022년 1월 북부 독일 마을 Glücksburg (직역하자면 마을의 이름이 '행복마을' 인 셈이다) 의 해변을 산책하다가 마주한 풍경입니다. 누군가가 해변가에 장미 한송이를 꽂아 놓았어요. 그날도 역시 평소의 북부 독일 날씨처럼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고 파도가 센데도 장미가 굳건히 버티고 있더라구요.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장미~가 아니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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