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훈련병의 시간은 초반에는 정말 별 게 없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무슨 훈련이라고 말을 하더라도 해당 교육장으로 이동해서 뭔가를 배우는 정도고, 그게 우리가 처음 배워서 힘들고 어렵게 느낄 뿐 실제로 자대에 와보고 며칠 전 복무일수 50%를 찍은 지금으로서는 정말 훈련이라 할만한 것도 별로 없는 편이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자대에 와서까지 자주 언급되고 수료식 언저리에 모두가 언급하는 추억이 되는 임팩트 있는 것은 아무래도 각개전투와 행군(야간숙영행군)이다. 이번 글은, 이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먼저 할 얘기는 각개전투. 왜 '각개전투'인가 하면, 각개전투는 병사 개개인이 차례대로 혹은 분대 혹은 소대 단위로 약진과 포복을 병행해 적진까지 접근해 적(적군 그림이나 타이어, 대항군 등)을 가격 혹은 찌르거나 목표(고지)를 점령하는 것이 목표인데, 이를 달성하기 위해 '개개인에게 부여된 임무를 해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생존이지만, 2번째로 중요한 것이 목표 점령이다.
각개전투가 강조되는 이유는 명시적으로그동안 훈련소에서 배워오고, 숙련해 왔던 전투기술들을 다시 재정리해서 활용하는 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개전투교장은 특히나 시설이 험악하다.다치는 사람도 비일비재하고 해야 할 것도 많다. 이때 배우는 것들도 있어서 가관이 따로 없는데, 이 시기에 포복을 배우게 된다. 포복이라고 하면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다. 하지만 포복에도 종류가 있다. 낮은 포복/높은 포복/응용 포복 정도가 주로 요구하는 정도인데 무릎보호대와 팔꿈치보호대를 챙겨 온 사람이 그나마 웃을 수 있다. 나 역시도 챙겨간 덕분에 덜 다치고 훈련을 받을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으면 각개전투 교장에서 이를 진행할 때 전투복에 흙이 쓸리고 모래 알갱이와 돌부리에 무릎이 찍힐 수도 있다.
포복뿐만 아니라 실제 전투상황에 종합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목적인 훈련이기에 '약진, 약진 앞으로!'라는 구호에 맞춰서 분대 단위로 뛰어나가며 잘못 돌부리에 걸리거나 헛디뎌 다치는 일도 부지기수다. 도중에 어떤 상황이 부여되어 각자의 임무를 완수하는 것도 있기 때문에 자신이 부분대장이거나 분대장인 것, 몇 번 역할의 분대원인지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필자는 특히 부분대장이었어서 나름 이것저것 할 게 많았다. 무엇보다 아무리 신병교육대대 및 훈련소마다 다르다고는 해도 일반적으로 오르막길(언덕)에 교장을 편성한다. 도대체 몇 번째 코스인지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데, 언덕을 오르기도 힘들고, 힘은 쭉쭉 빠지는데 옆에서는 제대로 하라고 소리치고...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제약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여기서도 중요한 점은, 결국 실제 전투상황을 가정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분/소대의 단결력 또한 중요하다. 필자의 경우만 해도 개개인이 조금씩 실수는 했어도 모두의 호흡을 잘 맞추고 마음이 잘 맞는 훈련병 동기들과 진행해서 좋은 평을 받은 반면, 바로 다음 조가 개개인의 역량은 좋지만 전체의 단합이 되지 않아 욕을 많이 먹기도 했다. 그 어떤 부대가 아무리 개인의 역량이 중요해도 혼자 싸우러 전장에 내보내겠는가? 결국 전투는 팀 단위로 단합해 목적을 위해.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분대, 소대, 중대 등의 세분화된 분류가 군대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여담으로 이 주간에 중간중간 정비를 하면서 가장 보급품이 많이 없어진다... 작은 것으로는 이어 플러그나 손수건과 같은 큰 영향이 가지 않는 것. 근데 더 심각해지면, 가스조절기(가스조절나사)라던가 탄알집, 심지어는 교육용 수류탄을 잃어버리는 경우도 봤다. 훈련소에서는 특히 개인의 보급품을 잃어버리는 것을 중대한 과실로 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실제로 훈련소에서 교보재로 사용하는 양이 정해져 있어서인 이유도 있지만 이 시절에 많이 물건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자대에서도 자주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군의 보급품은 잃어버리면 언제든지 다시 쓰라고 줄 수 있는 양이 충분히 되지 않고 위험한 것들도 있기 때문에 각자 책임감을 가지고 잘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래도 훈련병들이 드디어 뭔가 군대다운 것을 해봤다고 느끼는 경우가 각개전투/화생방/수류탄교육 중 하나기 때문에 그만큼 하고 와서 서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나름 끝내고 나면 부족함에 대한 아쉬움도 느끼고 성취감에 뿌듯해하기도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저런 걸로 일희일비했구나 싶기도 하지만 그 당시에는 마지막 주에 가까워지면서 큰 일과 중 하나를 마쳤기 때문에 더 기뻐했던 것 같다. 특히 우리 생활관은 하루를 마치면 달력에 개인이 가져온 네임펜으로 가위표(X)를 치며 체크했기 때문에 각개전투 기간에는 더 분위기가 달아올라 있었던 것 같다.
다음으로 얘기할 것은 행군이다. 행군은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인 만큼 알려진 게 많다. 훈련소의 행군은 거의 다르지 않은데, 위치에 따라 코스와 거리 규모가 조금 다를 뿐 행군을 실행하는 데 있어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행군을 하기 며칠 전에 미리 제한이 되는 인원을 선별한다. 그 와중에서도 특히 훈련병들 사이에 서로 가지는 마음가짐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대다수는 완전군장(물론 훈련소와 자대에서 군장품목 차이는 있지만)이다. 이제 앓고 있는 질환이 있는 사람은 물론 '난 이 질환으로 인해 할 수가 없다'라면 안 하는 게 맞다. 근데 여기서 '난 이게 큰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하는 경우가 갈린다. 자신의 상황을 어필해서 흔히 아는 뒤로 메는 군장만 빼고 모두 착용하는 단독군장으로 바꿀지, 훈련소에서 처음 해보는 건데 동기들과 같이 한번 경험 삼아 완전군장으로 버틸지에 대한 마인드가 다르다. 대부분 후자를 선택하는 이유는 정말 '처음 해보는 행군인데 제대로 해봐야 하지 않겠냐'하는 생각이다.
그 이후 단독군장으로 바꾸는 인원에 대한 명단을 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 적혀 있는 사유로는 족저근막염에 발목통증, 평발 등 다양한 증세가 적혀 있었다.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훈련소에서 굳이 다쳐서 자대에 갈 필요는 없지 않냐'는 이야기도 많이들 한다. 어차피 자대에 가서도 행군을 할 텐데 굳이 왜 여기서 무리를 하냐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의 경우는 야간행군 이후에 숙영을 진행하기로 했다. 미리 군장품목을 챙기고 사회에서 가져온 깔창이나 가다가 도중에 마실 물이나 음료 등 다들 무언가를 단단히 준비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배급받은 부식이 이때 정말 쓸모가 있었다. 잘 부서지지 않는 작은 과자들이나 캔으로 된 음료수, 물을 챙기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그중에는 물집방지패드를 붙이는 경우도 보았다. 이것이 불러올 큰 파장은 모른 채 말이다.
행군은 감정기복이 심하다. 모두가 그러하다. 맨 처음 부대 내에서는 군가도 따라 크게 부르고 다들 이 정도 무게로 왜 못 견디지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출발한다. 오랜만에 나오는 위병소 바깥. 그 공기와 바깥세상을 보는 자체만으로 들뜬 마음은 주체할 수 없다. 나름 분대장(조교)들과 또 친해지기도 해서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친화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렇게 1차 휴식 위치까지 가면 다들 하는 이야기가 같다. "뭐야, 할 만 한데?"라는 자신감에 가득 찬 한 마디.
그렇게 앞으로 더 나아간다. 하늘은 더 어두워지고, 가로등 몇 개와 고속도로의 차들 정도가 빛의 전부가 되어갈 때 하나둘씩 말을 잃어간다. 편도로 가야 하는 곳의 절반 정도에 다다랐을 때도 활기찼던 훈련병들은 이제 전체 행군의 절반을 향해 가면서 힘겨운 숨을 내뱉는 훈련병들이 발생함을 느낀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나름 견딜 만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 주변에 보이는 새로운 광경과 깨끗한 환경 때문인지 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별들. 바쁜 일상 속에 살아왔던 우리들이 군대에 입대해서 보게 되는 가장 아름다운 밤하늘이었을 것이리라.
편도로 가는 끝 지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다들 앉아서 등에 맨 군장을 바닥에 걸쳐두기 바쁘다. 발도 슬슬 욱신거리고 점점 지쳐간다. AMB(구급차)가 항상 대기하면서 따라오지만 그곳에 선뜻 조치를 받으러 가진 않는다. 각자의 자존심이 있어서일까? 챙겨 온 마실 것과 간식거리는 중간 휴식에 있어서 필수품이다. 그 사이에서도 여전히 대부분은 그래도 아직 할만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친다.
하지만 절망적인 소식을 듣고 대부분의 자신감은 침묵으로 대체된다. 왔던 곳을 다시 돌아가 주둔지로 향해야 한다는 것. 힘든 몸을 이끌고 돌아갔을 때는 이미 모두 다 기진맥진이었다. 심지어 필자는 신교대가 사단 안쪽에 위치했는데, 그곳으로 향하는 오르막길 언덕이 꽤나 가파른 편이라서 위병소까지만 해도 어떻게 버텨온 훈련병 동기들과 오르막에서 최악의 경사를 느끼는 반열에 합류했었다.
그러고 우리는 숙영을 준비한다. A형 텐트를 설치하는 방법을 땡볕에서 낮에 열심히 배우다 이동했다. 야간행군을 다녀오면 기본적으로 시간이 매우 늦어 많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텐트를 치기에 시야 확보가 잘 안 된다. 그런 와중에 텐트를 치는 방법이 숙달되어 있지 않으면? 그거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나와 같은 조로 자게 된 동기, 우리 둘은 특히 텐트 치는 연습 때 순서와 방법을 맞췄다. 서로 각자가 어느 부분을 어떻게 연결하고 가져올 것인지, 심지어는 무슨 방향으로 어떻게 조립할 것인지조차 설정했다. 그 결과 우리는 별문제 없이 남들보다 조금 더 빠른 속도로 텐트를 치고 짐을 내려 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숙영의 후기는 한 마디로 끔찍했다. 분명 8~9월인데 숙영의 밤은 매우 추웠다. 행군의 여파로 땀에 젖은 옷은 밤공기에 다 식어 축축이 내 몸을 차갑게 했다. 사람이 있는 텐트 안쪽과 바깥의 온도 차는 이슬이 맺히기 좋았고, 밖으로 나갈 때 물방울이 맺힌 수준은 비가 왔음을 연상케 했다. 덕분에 숙영을 마친 날 오후에 추가로 취침과 개인정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여되었을 때 많은 인원이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