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테 May 25. 2024

예상은 늘 뒤집어지고 기다림은 보상받기 마련입니다

기다리던 수료식의 잘못된 흐름과 부모님과의 재회

누군가에게는 속절없이 지나가는 시간,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애타게 기다리기만 하는 시간,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달프고 견디기 힘든 시간 - 훈련병의 시간. 그 시간이 끝나고 결국 고대하던 '수료식'이 우리를 기다린다.


오늘의 이야기, 수료식


수료식을 맞은 훈련병들 모두가 들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훈련병들은 아마 들뜬 마음도 물론 있겠지만 그 와중에도 긴장감에 절여져 있으니 말이다. 수료식 주간에 다다르면 훈련병들은 '분열제식'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분열제식 행사라고 부르는 이것은 수료식 행사에서 훈련병들이 총기제식과 맨손제식, 그리고 대열을 갖춰 행동하는 것을 통틀어서 방문해 주시는 가족 및 친지께 보여드리게 되는 일종의 결과발표회 같은 것이다.


간부 및 조교들에게는 사실 못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훈련병들도 크게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들이 열심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은 오직 하나 - 가족과의 재회. 오랜만에 보는 누군가의 아들, 손자, 남자친구가 하는 행사에 오합지졸에 총기는 떨구고 각은 안 맞고 모두가 또 다른 의미로서의 '분열'된 모습을 보이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겠는가. 그만큼 연습도 많이 하고 자신들이 오히려 자존심과 오기가 생겨서 노력하는 모습도 보이게 된다. 대충 하던 훈련병들도 열심히 하게 된다. 물론 동일한 이유는 아니고, 잘 안 하면 계속 반복하니까.


그렇게 수료식 당일 아침이 되었고 기상을 했을 때 우리는 알아챘어야 했다. 그날의 날씨를 신경 썼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별 대수롭지 않은 정도였다. 그냥 잠시 뒤면 지나갈 비 정도로 느껴졌고, 행정반 통제로도 이후에 비가 그칠 거라고 방송이 나왔다. 우리는 연습을 진행했고, 분열행사를 해낼 수 있도록 계속 빙빙 연병장을 돌며 연습했다. 그러나 도중에 그치는 줄 알았던 비는 다시 거세지며 그칠 줄을 몰랐고, 수료식이 가까워졌을 때는 이미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그제야 우리는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오늘 연병장에서 진행하려던 수료식 행사는 우천 관계로 교육관에서 진행하겠습니다.


아, 그 방송이 나와버렸다.

나오지 말았어야 했을 그 방송이 나오고 우리는 왠지 모를 허무함이 느껴졌다. 그동안 연습한 건 뭐냐며 허탈해하고 모두가 그때 군 내에서의 비속어 '뺑이치다'가 무슨 뜻인지 몸소 체험한 순간이었다. 물론 날더운 계절에 서서 수료식을 쭉 버티는 것도 곤욕이지만 비는 생각보다 더 많이 내렸고 우리는 애매한 입장에 놓여 이걸 좋아해야 할지 허무하게 느껴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수료식의 시간은 다가왔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급조된 흐름으로 전개되었지만, 그래도 훈련병으로서의 시간을 잘 마친 우리를 축하하고 맞이해 주기 위해 찾아와 준 우리의 가족/친지/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마 그들도 이런 날씨라서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서로를 다시 만나볼 수 있을 이 날을 기다려왔기 때문에 세상 누구보다도 기쁨에 가득 차 있었으리라.


나름의 각을 맞춘다고 제식을 갖추고 서툰 솜씨로 입은 군복과 베레모. 우리가 느끼기에는 이미 군인인 우리들이지만 찾아와 준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직 어릴 뿐이다. 그럼에도 서로가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 정확히는 몰라도 어림잡아 느낄 수 있기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감동의 재회가 진행됐다. 나도 다시 만난 가족들을 보며 큰 반가움을 느꼈다.


수료식 행사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 생각해 보면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 훈련병 기간을 마친 우리들에게 찾아와 주신 부모님이 직접 이등병 약장을 붙여주시는데, 그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등병 기간 내에 훈련병 기간이 포함되지만 그 기간에는 이등병 약장이 부여되지 않기에 우리는 부모님의 손으로 직접 붙여주심에 따라 이등병 군인이 된다.


당일마저 조금 다사다난했지만 우리의 훈련병 기간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나는 우리 가족과 함께 잡아놓은 숙소로 이동하며 밥을 먹었고, 그동안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을 대화하며 시간을 보냈다. 주마다 편지를 적으며 보냈던 것도 내용이 산더미였는데 그때는 또 뭘 이야기할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계속 나오니까 한참 대화를 나눴던 것 같다.


솔직히 많이 짧은 시간이다. 다시 돌아와서 보직과 자대를 배정받고 익일에 자대로 배치되기 때문에 당일 수료식을 마친 이후 몇 시간 정도만이 우리 가족의 재회가 허락되는 시간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참 많은 것을 하고 훈련받으며 보낸 훈련병의 시간에 비해서는 매우 짧은 시간이지만 말이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위병소를 통과해 차에서 내리기 전, 다시 우리는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떨어져야만 했다. 마음이 떠나지 못해 떠나가는 차에 계속 손을 흔들며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기다리다 돌아온 생활관에는 가족과 친지를 오랜만에 만나고 리프레시를 하고 돌아온 동기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자대로 배치받기 전 마지막 훈련병의 날을 보냈다.

이전 04화 주인공은 항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법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