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우리는 '너답다', '학생답다' 등의 '~다운'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당장 그 의미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쉽사리 답하지 못할 것이다. 나도 이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난처하기만 했다.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 방식대로 해 보려고 한다.
이 질문을 들은 때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들어온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아 일병을 갓 달은 타 중대 후임이 질문의 주체였다. 하루는 체력단련 시간에 야외 체육관 시설과 협조가 되어 나가서 농구를 하다가 쉬고 있었다. 그러던 참에 후임과 같이 앉게 됐고,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말을 걸어보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한 질문들이 오갔다. 신병들이 들어오면 듣는 일반적인 질문들 말이다. 대학을 다니다 온 거냐, 어떤 전공이었냐, 좋아하는 것은 뭐냐 하는 등의 긴장한 후임들을 조금 유한 분위기로 이끄는 질문이었다. 그렇게 대화의 물꼬를 트고 아무래도 신병 축에 속하기 때문에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사실 이것도 모두 일반적이고 형식적인 흐름이다. 신병으로 오게 되면 군대에 대해서 듣는 것은 아는 형, 아버지, 할아버지, 친구들, 그리고 매체가 전부다. 그러다 보니 정확히 알지 못하는 부분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기 마련이다. 그럴 때 질문을 통해 미리 알아두는 것과 나중에 갑작스레 알게 되어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바꾸게 되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나도 그걸 느껴봤기 때문에 그랬던 것일까, 시답잖은 질문들에도 하나하나 답해주었다. 타 중대라 접점이 별로 없긴 해도 중대장님이 어떤 성향이신지, 휴가는 어떻게 하면 받을 수 있는 것인지와 같은 일반적인 질문들이 오갔다. 그러다가 나온 한 가지의 질문.
이병답게, 일병답게 행동하는 것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말은 이러하다. 이병이었던 이 후임이 일병을 달게 된 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는데, 이병 때 여러 번 알려준 것을 계속 실수하고 잦은 실수가 이어지니 선임에게 이제 일병도 달았는데, 점점 갈수록 일병답게 행동하라는 말을 듣게 될 것이니 좀 더 행실에 주의하라는 충고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당시만 해도 그냥 실수를 줄여가라는 말로 생각했는데 곱씹어보니 일병다운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잘 모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질문을 받았을 때 내 감정이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처음 들어보는 질문이기도 했지만, 상병을 갓 달게 된 나로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점점 계급이 올라갈수록 간부님들과 선임분들은 해당 병사에게 그 계급다운 행동을 하라는 말을 하지만, 그걸 진지하게 곱씹어보며 생각해 보는 사람은 많이 없다.
그렇게 잠시 생각에 빠진 나에게 드는 생각이 몇 가지 있었고, 나는 생각이 드는 대로 줄줄이 답해주기 시작했다. 이 아래가 내가 답한 내용이 되겠다.
음, 사실 제대로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일단 내 생각을 말해줄게. 네가 물어본 것은 '일병다운 것은 무엇인가'지만, 사실 그 질문은 결국 '일병답게 행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의 질문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 그건 또 '내가 일병이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과 맥락이 동일하지.
그건 결국 어떻게 보면 조건에 대한 이야기일지 몰라. 일병이 되기 위한 조건이지. 근데 너도 이 질문을 하면서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그냥 계급장을 다는 것으로 일병이 되었다고 바라보지 않아. 두 줄 계급장을 단다고 이 사람이 일병이라는 취급을 해 주는 게 아니란 말이지. 비유하자면 나잇값 못 하는 사람을 대우해주지 않는 사회의 분위기와 동일한 것 같아.
내가 비유한 것과 동일하게, 그 계급을 달은 사람에게 있는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 사람은 해당 계급을 달아도 그렇게 보이지 않거든. 가령, 병장인 어떤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근데 이 사람이 갓 들어온 신병처럼 어리바리하고 뭘 잘 못하고 지적받으면 병장답게 보일까? 적어도 난 절대 그렇게 안 볼 것 같아. 결국 다른 사람들의 기댓값을 충족하는 행동을 할 수 있게 될 때 우리는 '~답다'는 표현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
그러면 이제 각 계급별로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겠지? 이등병(이병)은 사실 바라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아. 아는 것도 별로 없고 실제로 거의 대부분은 신병이라는 이름 하에 신보기*를 가지기도 하니까. 이병다운 행동이란 건, 그 계급에서는 배우고 익히는 수밖에 없으니 각 잡힌 모습과 열심히 배우려는 열의를 보이는 것. 그게 이병다운 행동일 것 같아.
*신보기 : 신병 보호 기간의 줄임말. 전입 이후 1~2주 정도 선임들과 함께 붙어 다니며 혼자 개인행동을 하지 않고 자대에 적응해 나가며 도움을 받는 기간. 작업이나 근무 등에서도 열외 됨.
그런데 일병다운 행동은 폭이 좀 넓어. 일병은 이병보다 기간이 길잖아? 그리고 이미 이병, 신병의 기간은 지나간 셈이지. 이병의 기간이 남들보다 조금 짧더라도 아무 신경을 쓰지 않아. 결국 그 계급을 달게 된 것이 중요해. 이제 한 줄이 아니고 두 줄이니까 그만큼 아는 것도 있을 거고 마냥 초반처럼 어리바리하진 않을 것이라는 기대가 생기는 거지.
아직 많이 부족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 많을 거라는 것은 이미 다들 이해하고 있지만, 이전에 알려준 것들과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네가 잘 기억하고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거야. 그게 '일병다운' 것이라고 생각해, 나는. 결국 추상적인 얘기로 빠진 것 같지만 사람마다 너에게 기대하는 것이 다르니까 모두의 기대에 충족할 수는 없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얼빠진 모습을 보인다거나 부족하고 실수하고 잘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겠지. 네가 다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야.
상병을 이제 달고 좀 지난 지금의 나로서는 내가 상병다운가에 대해 자문해 보면 잘 모르겠다. 아직 나도 많이 부족한 누군가의 후임일 뿐이다.
하지만, 주변의 평가가 무난히 이어지고 '상병답지 못하다'라는 표현을 듣지 않는 이상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특별히 모난 곳 없고 지적받는 것 없이 평범히 살아가는 것이 최고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