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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테 Jun 15. 2024

당직 : 정기적으로 잠을 못 자게 하는 행위입니다.

어떻게 버텨도 결국 피곤한 건 매한가지인 당직근무

입대 이후에 지금까지 오면서 느낀 건 이곳에서 우리는 그 무엇도 편히 할 수가 없다. 밥을 먹는 것도, 쉬는 것도, 자는 것도 말이다. 그런데 가장 짜증 나는 것은 아무래도 자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많은 현역 복무자들에게 물어보면 '잠 하나도 편히 못 잔다'는 말에 매우 공감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야간 근무의 또 다른 형태인 당직근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당직근무는 야간 근무의 '또 다른 형태'이다. 일반적으로 야간의 근무라 하면 다들 생각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불침번 근무. 물론 나도 신병교육대대에서 했다. 불침번 근무란, 말 그대로 '잠에 들지 않고' 서는 근무형태이다. 자세한 설명도 필요 없다. 설령 군부대에 (그러면 안 되지만) 누군가 잠입했다 치자. 그런데 다 잠들어있으면 어쩌겠는가? 물론 각 시설의 보안도 다 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병사들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다.


특수한 상황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그런 목적이 아니더라도 복도에서 위치하며 시간마다 각 생활관에 들어가서 아픈 병사는 없는지 체크거나, 각 생활관의 온도나 습도는 적절한지, 도중에 일어나서 어딘가 사라지지는 않는지 등 여러 가지 항목을 체크하며 근무를 하는 형태가 바로 불침번 근무인 것이다. 그 중요성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귀찮고 잠들어 있다가 깨서 나가면 그 기분 또한 매우 역겹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군에서의 모든 근무는 '명령*'의 형태로 하달되기 때문에 근무를 제대로 서지 않는 근무 태만 역시 명령 불복종의 사유로 징계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잠을 억지로 깨려는 일회라던가, 피곤해서 교대로 눈을 붙이다가 시간이 엄청 지나버려 깨졌다는 인터넷의 많은 일화들이 생기는 것이다. 나 역시도 불침번은 끔찍했다. 복도에서 벽 보고 벌서는 느낌보다 더 별로다. 중간중간 생활관의 온도 체크나 이상인원 체크 등을 제외하면 진짜 잠을 버티는 것이 불침번 근무의 전부가 되기 때문이다.


*주석. 군에서는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하는 지시사항을 모두 명령이라고 칭한다.


하지만 지금 소속된 부대로 배정된 이후 나는 불침번 근무는 서지 않는다. 부대별 차이는 있지만 보직에 따라서 불침번 근무를 서지 않는 보직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나를 비롯한 통신병들과 몇몇 보직의 인원들은 당직근무를 서게 된다. '상황병'이라고도 하는데 쉽게 말해 특수상황에 대비하여 불침번과 같이 잠을 자지 않고 근무를 서는 형태를 말한다.


부대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다고 하는데, 대부분은 중간 제어를 하는 역할인 '지휘통제실' 혹은 '행정반'에서 그 근무를 진행한다. 우리 부대는 지휘통제실에서 진행한다. 근무 투입은 공식 일과가 종료되는 시점보다 30분 우선인 시간(16시 언저리)이고, 종료는 공식 일과가 시작되는 시점보다 30분 이전인 시간(08시 30분)이다. 주말의 경우는 일과가 없으니 08시 30분 투입, 익일 08시 30분 퇴근.


기본 근무시간이 평일은 16시간 언저리고, 주말은 24시간이다. 웃음밖에 안 나오는 시간. 하지만 불침번 근무자들은 가끔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래도 앉아서 근무하고 좀 졸기도 할 거고 안에서 근무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다. 물론 사무실 안에서 근무하는 형태다 보니 야간 위병소 근무(부대에 따라 다르지만 새벽이나 야간에도 근무를 서기도 한다) 같은 경우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말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버티는지는 전적으로 당직병들의 고충이다.




간부님들은 도중에 급한 연락이 올 수도 있고 실제상황 등이 발생하면 또 연락을 하는 게 맞기 때문에 폰을 가지고 계신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병사는 사용 시간이 정해져 있고 근무 중에는 사용하지 않아야 하므로 주말에 당직이 걸리면 말 그대로 폰을 24시간 통제당하는 것이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것이지 주말에 24시간 폰을 주진 않는다. 남들은 연락하고 OTT 볼 시간에 앉아서 근무를 서고 있다는 현실.


그리고 마냥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아니다. 당직병에 부여된 통신 및 문서/사무 업무, 식사나 청소, 기상 등의 주말일과나 평일일과 방송통제 업무 등 해야 할 일도 시간별로 당연히 존재한다. 거기에 당직메이트라고도 부르는 '당직사령*'님께서 주시는 자잘한 업무들, 지시사항들까지 챙기다 보면 정신없이 일하는 시간도 존재한다. 모니터도 한참 쳐다봐야 하고 기계장치도 많아 온도도 높으니 안구건조증이 있다면 근무환경은 한참 최악이다.


*주석. 말이 어려울 뿐이지 진짜 당직을 같이 서는 간부님을 말한다.


그런 업무가 없는 새벽시간대에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잠을 버틸까? 그건 근무자에 따라서 차이가 있다. 일단 한 가지의 잘못된 인식을 정리해 보자. 통신병이니까 더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컴퓨터가 있으니 시간 때우기 쉽겠네' 같은 소리는 하지 말자. 흔히 회사, 대기업, 증권, 정부,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폐쇄적으로 접근 가능하게 하는 사설망인 '인트라넷'. 군에서도 인트라넷을 사용하지 정신이 나가지 않은 이상 인터넷을 연결해서 군사 기밀을 빼내는 국가보안법 위반 행위를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PC의 사양 역시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낮고, 게임이고 뭐고는 깔 생각도 못한다. 애초에 인터넷이 연결되어있지 않은데 뭘 할 수 있겠는가. 인트라넷으로도 물론 할 수 있는 것들은 있지만 여기에 굳이 서술하진 않겠다. 시간을 때울 용도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라서...


대부분은 공부를 한다. 책을 읽고, 문제를 풀고. 군수생들이 가장 활용하기 좋은 시간임에 틀림없다. 심지어 군인이라면 받을 수 있는 혜택 중 하나인 '병 자기 계발비용'. 이전에는 꽤 범위가 넓었지만 이제는 사용 가능 범위가 축소되어 사람들이 마음 편히 그냥 책을 사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에서 자신이 하던 전공분야 공부나 수능 공부, 자격증이나 토익 등의 시험 준비를 하는 사람도 많다. 조용하기도 하고 앉아서 근무하니 최적의 시간이라 할 수 있겠다. 졸음만 참을 수 있다면...


그 외에는, PX에서 미리 사 온 과자를 먹는다던가, 그냥 책을 읽는다던가, 처부 업무를 한다던가(당직병은 대부분 본부중대의 특수처부 병사들이라서), 휴가 계획을 짠다던가... 점점 갈수록 저게 어느 정도의 시간을 버틸 수 있게 해줄까 싶은 것들로 보이겠지만 실제로 그게 맞다. 당직사령님에 따라 스타일도 다르다 보니 분위기를 풀어주는 분도 계시며, FM대로 하시는 분도 계신다. 거기에 훈련 같은 요소들이 또 섞이거나 하면 점점 이 당직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싶어진다.


며칠 전에도 당직을 서고 와서 지금 이 글을 적고 있으니 PTSD가 온다. 당직을 서고 나면 근무취침을 주는데, 퇴근 이후 일과 종료 시간까지 잘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일과를 하다가 생활관에 왔을 때 들락거리며 문 소리에 방송 소리에 등등 잡다한 소리가 들리는 것은 덤이다. 그래도 피곤하니까 곯아떨어지기 일쑤다. 선임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나의 경우는 와서 잠들면 무슨 소리가 나도 근무취침 종료 시간까지 도중에 깨는 걸 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


이런 당직은 로테이션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인원이 적으면 달에 몇 번을 서기도 하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서기도 한다.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을 기준으로 돌아오는 주에도 또 당직을 서야 한다. 전국의 잠을 이겨내며 야간근무를 서는 모든 장병 분들, 파이팅. 같이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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