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데 통신병이 되었습니다
자대로의 이동, 뜬금없는 통신병 보직배치
훈련병 생활을 마친 우리들은 의기양양해져서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 생활을 마치고 동기들과 뿔뿔이 흩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눈물을 보이는 동기도 있었으며, 생각보다 그 여운은 서로에게 크게 남았다. 그렇게 하나둘씩 각자의 자대에 따라 여단 혹은 대대 단위로 불려서 차를 타고 신교대에서 떠나갔고, 나 역시도 거의 마지막에 이름이 호명되어 짐을 챙긴 의류대를 둘러메고 여단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여단으로 향하는 버스는 생각보다 길게 이동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고속도로를 타도 꽤나 이동해야 하는 거리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지도를 기준으로 내륙(중심부) 쪽에서 해안가 인접한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 마당이었으니 오죽했겠나 싶다.
그 안에서 휴대폰을 받은 나는 주변의 다른 생활관 동기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가족들에게 연락했다. 어디로 이동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드디어 자대로 간다며 안부를 전했고, 전화를 하는 것은 (딱히 사용하지 말라고는 안 했지만 사용하라고도 안 했기 때문에) 좀 아닌 것 같아 톡을 보내고 노래를 듣는 그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게 이동하다가 피곤한 탓에 조금 졸았던 것 같다.
거의 여단에 인접했을 때 깬 나는 여단의 광경을 보고 조금 놀랐다. 사단 아래의 단위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단의 전체 주둔지가 그렇게 좁거나 하진 않았다. 또, 그만큼의 인원들이 이리저리 보였고 군대에 대해서 정확히 몰랐던 나에게는 여단의 단위도 꽤 큰 편이라는 인식을 다시 가지기에는 충분했다.
그렇게 버스가 멈추고 모두가 의류대와 짐을 들고 내리자 한 분께서 오셔서는 인원들의 이름이 적힌 연명부를 보시고는 인원을 호명했다. 나는 몰랐다. 이 과정이 또 다른 분류였을 줄은...
처음에 몇 명이 불리고 여단의 건물로 향했다. 그다음 바로 내가 불렸는데, 그 뒤에 두 명이 더 불리고는 누군가를 찾으신다. 세 명 정도인데 이렇게 적은 인원만이 한 곳으로 가나? 싶었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른 버스로 타야 했다. 그 버스에는 현재 내가 있는 대대의 지역명이 적혀 있었는데, 사실 잘 아는 지역은 아니었다 보니 아무런 생각을 할 수 없었다. 그냥 들었던 생각은 '아 여기가 아니구나'라는 생각 정도였지 사실 어떤 판단을 하기에는 어리바리한 채 가라는 대로 갔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았다.
버스 내에는 인사담당관님과 복지담당관님께서 계셨고, 그분들은 우리에게 자신들을 소개하시며 말을 걸어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그 두 분이 친화력이 좋으신 것도 있지만 분위기를 풀어주시려고 노력해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마저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엄청 경직된 채로 대대에 도착했지 않았을까 싶다.
대대 근처에 접근했을 때, 그러니까 이곳이 내가 지내게 될 대대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는 당황스러움이 가장 먼저 찾아왔다. 생각보다 대대라고 해도 그렇게 작은 개념은 아니라는 것과,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시간대가 시간대여서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아무도 없는 것처럼 삭막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게 사실 이 대대 자체가 지역방위부대(향토부대)의 작은 개념이기도 하고 그때가 대대에 가장 인원이 적을 때였다. 후방 대대이기도 하니 특히 인원은 더 적었다.
버스에서 내려 막사 내부로 진입해서는 인사과로 위치했다. 인사과에서 앉아서 동기들과 대기하는 중에 인사담당관님께서 우리의 보직과 개인 신상을 확인했다. 나는 그때 내 보직이 통신병이 되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왜 통신병이지?'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있었던 신병교육대대에서는 1차 자대분류 이후에 훈련병들에게 종이를 나눠줬다. 고등학교처럼 지망을 적을 수 있는 종이였는데, 우리가 해당 1차 자대분류에서 필요한 보직을 인지할 수 있게 한 쪽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그 보직들 중 3개를 정해 1~3 지망으로 적고 이와 관련한 사회 경험 혹은 자격증 등을 적을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특별한 보직을 받을 생각도 없었고, 적을 수 있는 것도 다른 동기들은 좀 많기도 했는데 내가 받은 종이는 꽤나 적은 편이었다. 딱 세 가지였다. 보병, 조리병(취사병), 통신병. 평소 요리를 해보긴 했어도 요리와 관련된 사회 경험은 특별히 없었고, 통신병도 아는 게 뭐 별로 없기도 하고 내가 사회에서 아무리 소프트웨어/미디어 관련 공부를 했다지만 관련이 전혀 없을 것 같아 보병을 1 지망으로 적었던 나였다.
그런데 특기번호 171의 통신병이라니. 물론 이병이라 더 그랬지만 완전히 낯선 번호, 낯선 보직이었다. 그렇게 내 통신병으로서의 생활이 막을 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