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더'라는 동물은 흡사 아이돌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죠. 중국은 외교 수단으로까지 팬더를 활용한다고 하니, 팬더는 단순히 귀여운 것을 넘어 국제적인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는 동물입니다. 얼마 전 국내에서는 팬더 '푸바오'를 떠나 보내며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 했었죠. 오늘은 드림웍스 <쿵푸팬더 시리즈>의 4번째 작품, <쿵푸팬더 4, 2024>에 대해 리뷰하고자 합니다. 8년 만에 돌아온 '포'의 이야기는 푸바오와 이별한 국내 팬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까요?
1. 쿵푸팬더 프랜차이즈의 위상
쿵푸팬더 시리즈의 4번째 포스터
역대 쿵푸팬더 시리즈의 흥행을 살펴보면 이 프랜차이즈가 국내에서 갖는 위상은 실로 대단합니다. 쿵푸팬더 1~3편은 사실상 업계를 독점하고 있는 디즈니(+산하의 픽사)의 흥행 성적에도 밀리지 않았으며, 벼랑 끝에 있었던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명맥을 이어가도록 해주었죠. 국내에서는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순위 TOP10 안에 쿵푸팬더 1~3편이 모두 랭크되어 있을 만큼 꾸준한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흥행과 더불어 평단에서도 꾸준히 괜찮은 평을 받아 온 작품이기도 하죠.
2. 서사가 끝나버린 주인공
우그웨이의 지팡이를 들고 있는 주인공 포
영화 <쿵푸팬더4, 2024>의 서사는 매우 뻔하고 진부했습니다. 팬들은 이미 세 차례나 전작을 감상했기에 이야기 구조가 비슷하게 흘러갈 것이라는 점을짐작은했을테죠. <쿵푸팬더1, 2008>에 처음 등장했었던 주인공 '포'의 모습은 사람들이 흔히 기대하는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천성이 게으르고 천하태평하며 비범함이라고는 눈꼽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을 하고 있었죠. 그러나 포에게는 그를 믿고 응원해주며 가르침을 전하는 스승이 있었고, 스스로의 힘을 믿고 수련에 정진한 끝에 작중 영웅인 '용의 전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후 2~3편에서도 포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이를 극복하며 성장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합니다. 포는 출생의 비밀과 관련된 자신의 과거를 극복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으며, 마침내 진정한 쿵푸 마스터로 인정 받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죠. <쿵푸팬더 시리즈>는 1편에서는 영웅에 대한 클리셰를 비틀었고, 2편에서 과거에 집착하지 말라는 교훈을 주었으며, 3편에서는 주인공의 성장을 완성했습니다. 한 마디로 <쿵푸팬더 시리즈>의 서사는 이미 트릴로지로 완결되었고, 이번 작에서는 특별히 할 이야기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이미 전작인 <쿵푸팬더3>에서부터 등장한 바 있습니다.
3. 캐릭터는 모두 어디로?
어디선가 여러 번 본 것 같은 '젠'
4번씩이나 같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그것도 조금이나마 신선하게 하기를 바라는 것은 역시 무리였을까요? 제게 이번 작품에서 가장 아쉬웠던 포인트는 바로 '캐릭터의 부재'였습니다. <쿵푸팬더 4, 2024>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하나 같이 뻔하고 매력이 없습니다. 메인 빌런인 '카멜레온'과 조연인 '젠'을 비롯하여 이 작품의 그 어떤 캐릭터에도 진정성 있는 서사나 개성이 전혀 느껴지질 않습니다. 특히 '젠'의 경우는 클리셰의 총집합 그 자체인 인물입니다. 물건을 훔치고 다른 이들을 속이며 불신하는 특징을 가진 여우, 주인공을 배신했다가 끝에는 참회하여 악당을 무찌르고 정의에 편에 서는 인물. 젠은 외형적으로나 설정으로나, <쿵푸팬더4>에서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라고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다른 영화의 캐릭터를 몇 개 골라서 짜깁기 한 캐릭터로 취급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죠.
메인 빌런인 카멜레온 역시 전혀 매력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전작인 <쿵푸팬더3>에서도 메인빌런의 디자인과 캐릭터 설정이 조악하다는 평가는 있었습니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이번 작에서는 1편의 메인빌런이었던 '타이렁'이 꽤나 임팩트 있게 등장하죠.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는 '악수'로 작용합니다. 카멜레온의 계략이 진행되며 전작의 모든 빌런들의 모습이 잠깐씩 등장하고 이 중 '타이렁'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결국 영화가 끝날 때까지 가장 매력 있고 멋진 액션을 보여 주는 빌런은 카멜레온이 아닌 1편의 타이렁이 되어버리고 말죠.
새로운 빌런인 카멜레온은 자신이 모든 쿵푸 기술을 흡수했다며 포와 관객들을 기대하게 합니다. 그러나 쿵푸 마스터는 온데 간데 없고 괴상망측한 키메라로 변신하여 형편 없는 공격을 남발하다가, 최후에는 포의 외형으로 변신하더니 젠의 지팡이 한 방에 어이 없이 나가 떨어지죠. 그래도 주인공인 '포'만큼은 적어도 매력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팬더'라는 동물이 가진 천성적인 매력에 더불어 '잭 블랙'의 기깔나는 연기가 곁들여진 결과물입니다만, 이것 하나만으로는 시리즈의 4번째 이야기에 당위성을 부여하기 어려웠습니다. 어차피 새로운 시도를 할 자신이 없었다면 차라리 5인방과 마스터 시푸, 우그웨이를 적극 활용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4.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라.'
언제나 유쾌한 연기를 선 보이는 '잭 블랙'
이번 작을 관통하는 주된 메시지는 '익숙한 과거를 벗어나,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하기보다 '뻔한 과거'에 머무르기를 원한다는 점은,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이번 작에서 이 주제의식은 설득력이 느껴지질 않습니다. 용의 전사로서 해야하는 일을 내려놓는 것이 주인공의 내적 성장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포에게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쿵푸 마스터로서 싸워야 할 의무가 사라지는 것인지,영적 지도자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슨 임무와 정체성을 갖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합니다. 결국 <쿵푸팬더4>의 이야기를 통해 '포'는 성장하지 않았고, <쿵푸팬더 시리즈>의 이야기가 발전했다고 평가하기는 더욱 어렵겠습니다.
드림웍스社의 입장에서 <쿵푸팬더 시리즈>는 이대로 내려놓기 어려운 프랜차이즈입니다. 평가가 내리막을 걷는다 하더라도, 평작 수준으로만 완성한다면 흥행을 보장하는 시리즈이니까요. <쿵푸팬더4, 2024>의미국 박스오피스 오프닝 수익은 이전 2~3편의 성적을 훨씬 상회하였고 개봉 3주차에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겼습니다. 국내 기준으로도 개봉 3주차에 130만명 관객을 동원했으니 역시 흥행 면에서는 성공적입니다.
다만, 이번 작품의 주제의식이 '새로운 변화에 도전하라는 것'인 점은 꽤나 공교롭게 느껴집니다. 쿵푸팬더 시리즈는 이미 팬들에게 지나치게 익숙한 과거가 되어버렸습니다. <쿵푸팬더 5>가 훗날 제작된다고 한다면, 이 이상 기대할만한 여지가 남아 있을지 의문입니다. 드림웍스는 작중 포의 아버지의 입을 빌려 이야기합니다. 계속 같은 메뉴를 고집하면 반드시 본연의 맛이 변할테니,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야 한다고요. 이제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는 드림웍스의 모습을 기대하며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