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리뷰(최하단 링크)에서는 감독 '조지 밀러'의 발자취와 <매드맥스> 시리즈의 역사를 간단히 소개한 바 있습니다. 9년 전 개봉한 <매드맥스: 분노의도로, 2015>는 낯선 프랜차이즈의 영화였음에도 국내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한국에서만 393만명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대중과 평단은 호평을 아끼지 않았죠.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날 것 그대로의' 생생한 액션에 있었습니다. 녹슨 고철과 검은 기름, 굉음을 내는 엔진과 폭발로 빚어 낸 시퀀스들은 숨 막히는 긴장감과 액션을 선사했습니다. 관객들의 심장은 120분 내내 쉴 틈 없이 빠르게 뛰었고, 그렇게 많은 팬들은 '매드맥스의 세계'에 깊이 매료되었을 겁니다. 그로부터 무려 9년의 오랜 기다림끝에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 2024>가전작의 프리퀄로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지난 26일 돌비 시네마에서 작품을 관람했으며 제게는 매우 만족스러운 148분이었습니다.
1. 작열하는 노장의 예술
카체이싱, 그 이상의 액션을 완성하다.
조지 밀러감독은 1945년 생으로 현재 만 나이 기준 79세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올해 이미 팔순을 맞이 한, 인생의 황혼기를 살아가고 있는 감독입니다. 그렇기에 더욱 영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높은 완성도는 놀라울 따름입니다. 전작에서 이미 호평 받았던 액션 시퀀스들은 이번 작품을 통해 한 층 더 높은 수준으로 완성됩니다. 액션의 주 무대를 8기통 엔진의 거대한 트럭으로 하며, 사막 위에서의 질주를 통해 긴박감을 극대화 하는 전략은 전작과 유사합니다. 여기서'카 체이싱' 액션의 활용은 속도감에 분명한 장점이 있지만 자칫 '수평 방향'의 움직임에만 갇힐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상의 움직임을 위주로 하기에 카메라가 담을 수 있는 공간의 범위에도 큰 제약이 생깁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조지 밀러는 다양한 장치와 움직임을 적극 활용합니다. 주인공을 쫓는 추격자들은 여러 대의 오토바이를 통해 '수평 방향'으로 질주하는 동시에 패러글라이더를 활용해 '수직 방향'의 움직임을 구현합니다. 트럭과 오토바이는 극한의 속도감과 긴장감을 팽팽하게 유지하며, 패러글라이더(+글라이더)는 3차원 공간을 활강하여 액션에 입체감과 공간감을 부여합니다. 트럭의 넓고 긴 공간을 활용하는 세밀함 역시 크게 발전한 부분입니다. 롱테이크로 촬영한 액션 시퀀스에서는 말 그대로 '모든 공간'을 촘촘하게 활용합니다. 특히 주인공이 전투 트럭 하부에 거꾸로 매달린 채로 진행되는 씬에서는 액션과 촬영의 완성도에 절로 탄성이 나옵니다.
2. '매드맥스 세계관'의 확장
등장인물과 장소에 대한 여러 설정(세계관)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는 전작에 비해 영화 속 배경과 설정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분노의 도로>에서는 '전쟁으로 공멸한 인류' , '근 미래의 지구'라는 간소한 설명이 전부였다면, 이번에는 작중 배경이 되는 시점과 장소가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도입부의 나레이션은 인류가 어떤 과오를 저질렀으며 역사에는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그로 인해 재앙 후(포스트-아포칼립스)의 세계에 어떤 결과가 초래되었는지 전달합니다. 곧이어 스크린은 황폐화된 지구의 모습을 비추고, 그 속에는 작은 낙원과도 같은 '초록빛 세계(그린 플레이스)'가 엿보입니다.
전작에서 퓨리오사는 자신의 고향, '그린 플레이스'의 생명력과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목숨을 걸고 그곳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 끝은 비극이었으나, 관객들 역시 낙원의 실제 모습이 꽤나 궁금했을 겁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초록빛 낙원의 모습이 등장하고 전에는 탐험할 수 없었던 다양한 랜드마크의 설정이 함께 그려집니다. 관객들은 퓨리오사를 통해 '가스타운'과 '무기농장(불렛팜)'을 방문하게 되며, 각 세계의 구체적인 모습과 설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계관의 확장은 특정 랜드마크들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지하에서 '시타델의 주민들'이 살고 있었던 생태계의 실체, 각양각색의 '전투차량들'이 제작되는 과정, 전투원들의 '계급체계와 서열', 각 마을의 지도자와 '정치적 관계' 등. 다채롭고 촘촘한 설정들이 이번 작품 곳곳에 녹아 있었습니다. 즉,매드맥스 시리즈는 이번 작품을 통해 전보다 정교하며 확장된 세계관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작중 세계관의 설계가 갖는 중요성의 무게는 영화 <스타워즈> 프랜차이즈를 통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실거라 생각합니다.
3. 찰떡 같은 배우들
개성이 넘치는 배우들의 모습
배우 '안야 테일러 조이'는 촬영을 시작하기에 앞서 적지 않은 부담을 느꼈을거라 생각합니다. 전작의 배우 샤를리즈 테론이 완성했던 캐릭터를 프리퀄에서 다시 연기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도전이었을 겁니다. <분노의 도로>의 사령관 퓨리오사는 냉철하고 차분하며 쉽게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고향으로의 탈출'이라는 단 한가지 목적만을 갖고 움직였으며 그 밖의 일에는 감정을 소모하거나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습니다.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의 퓨리오사는 조금 다릅니다.젊은 시절의 그녀를 지배하는 힘은 '증오'와 복수에 대한 '갈망'이며, 디멘투스를 향해 모든 것을 돌려달라며 울부짖기도 합니다. 또한 그녀는 복수의 여정에서 자신의 조력자이자 동료인 '잭'을 만나 '애정 혹은 사랑'의 감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렇듯 젊은퓨리오사는 전투원으로서 냉철하나, 한 인간으로서는 여러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과정을거칩니다. 안야 테일러 조이는 퓨리오사의 차가운 이성과 뜨거운 감정을 적절히 섞어가며 입체적인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크리스 헴스워스는 이번 작품을 통해 본인의 인생 연기를 해냈습니다. 그는 본래의 중후하며 남성적인 톤을 철저히 감추고, 비열한 캐릭터에 맞는 소리를 연구하여 148분 내내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로 연기합니다. 독특한 톤과 말투를 듣는 것 만으로도 '디멘투스'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다가옵니다. 디멘투스는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입체적으로 변화하는 캐릭터입니다. 첫 등장부터 세력을 넓혀가는 시기에는 강력한 리더십과 카리스마를 보이지만, 결국 후반부에는 권력을 모두 잃고 '이 빠진 호랑이 신세'가 되는 인물이죠. 크리스 헴스워스는 이러한 변화를 탁월하게 표현하며 개성 넘치는 빌런을 창조하는데 성공합니다.
4. 차기작(매드맥스 5)을 기다리며
감독 조지 밀러(1945년생)의 인터뷰 현장
매드맥스 시리즈의 차기작은 매드맥스 5(가제: 웨이스트 랜드)가 될 예정입니다. 작품은 <분노의 도로> 이후의 시점, 즉 속편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합니다. 전작의 주인공 '맥스'를 연기했던 톰 하디가 이미 출연을 확정했다고 밝혔으며 그 밖의 등장인물에 대한 정보는 아직 없습니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 각본이 미완성 단계이지만 작업에 진전이 있다고 합니다. 차기작은 그의 '80대'에 개봉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생의 황혼기에그 어떤 작품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빛나는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를 완성한 그에게 존경어린 마음을 바치며 리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