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시립호수도서관에서 '보태니컬 아트 in 호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공지가 떴다. 매주 1회, 10회를 서양화가가 지도해 주시고 필요 물품까지 지원해주신다고 한다. 식물세밀화를 한번 그려보고 싶어 색연필로 칠하는 보태니컬 아트 책도 구입해 놓고 시작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런 기회가 주어지다니, 기쁜 마음으로 접수 버튼을 눌렀다. 막상 신청해놓고 나니 그림을 그려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나만 엉망진창이면 어떡하지? 두려움반 설렘반,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리기 첫 수업이 시작되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예쁘다. 는 시구처럼 나의 첫 번째 모델을 고르기 위해 도서관 마당에 핀 풀꽃을 찾았다. 이건 너무 가늘고 이건 너무 꽃이 많아 어려울 것 같고 한참을 찾아 헤매다 그나마 평범하게 생긴 질경이를 선택했다. 쪼그리고 앉아 질경이 모습을 자세히 관찰한다. 잎맥과 잎자루와 잎사귀 모양, 꽃까지 확대해서 사진을 계속 찍었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더운 날씨였지만 앞마당 벤치에 앉아, 없는 솜씨 불러 모아 연필로 밑그림을 조심조심 스케치한다.
첫 번째 난관은 조색이다. 어떤 색을 어느 정도 섞어야 내가 원하는 질경이의 잎사귀 색을 만들 수 있는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잎사귀 중에도 빛이 많이 닿아 옅은 초록색 잎사귀, 살짝 뒤쪽 위치의 진초록 잎사귀 제각각이다. 잎맥은 어떻게 해야 표현이 될까? 옅은 초록색으로 먼저 칠해놓고 농담 조절해 가며 덧칠해 볼까? 시작했는데 내가 원하는 색을 만들 수가 없다. 초록색과 연두색을 섞어볼까? 파란색을 얹어볼까? 이것도 아닌데, 황토색을 살짝 얹어볼까? 이것도 아니네, 이럴 땐 어쩔 수 없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해요?" 지도 선생님이 다가오시더니 서너 가지 색을 살짝살짝 재빠르게 묻히시더니 우와~~ 신사임당의 초충도에서 보았던 낡은 초록색이 슥슥 칠해지고 세필로 물을 묻혀 터치하고 휴지로 눌러주자 신기하게도 투명한 잎맥이 살아난다. 선생님은 구부러진 잎사귀 뒷면 표현까지 가르주시더니 선생님은 다른 수강생들을 위해 이동하시고 방금 전 무슨 색깔을 섞으라고 가르쳐주셨는데 나의 총명한 머리는 금세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을 더듬어 조색을 하고 휴지에 살짝 묻히고, 이게 아닌데... 를 다시 반복한다.
수업이 끝나고 첫 작품이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지 하는데 화요일까지 글과 그림을 제출하라고 하신다. 질경이에 대해 검색도 하고 지난번 구입하여 읽다가 급한 책 먼저 읽느라 접어두었던 이소영작가의 '식물의 책"을 꺼내었다. 지난번에 연필로 밑그림만 그려져 있었다고 기억돼있는 세밀화가 사랑스러운 색감으로 올올이 표현되어 있는 기적이 일어난다. 책의 내용은 작가와의 만남에서 들었던 따스한 작가의 목소리로 읽어주는 듯하다.
선생님이 가르쳐주시겠지, 하다 보면 늘겠지 안이하게 생각하다가 그제야 식물 세밀화를 그리기 위한 방법이 있을 거야,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 도서를 검색해 보고 유튜브를 검색해 본다. 식물 세밀화를 그리기 위해 식물을 선택하고 관찰하고 스케치 후 채색하는 방법까지 스스로 공부하기 위해 나의 이번 여름은 싱그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