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식물화 공부 시간에는 야생화를 그리기로 했다. 호수도서관 옆 쌈지 숲은 관목과 교목이 우거져 있어 야생화가 자라기에 적합지 않은 환경이지만 주의 깊게 살피다 보면 아주 작고 여린 야생화를 만날 수 있다. 그렇게 십여분을 찾아 헤매다 유난히 밝은 분홍색 꽃을 찾아내었다. 어두운 수풀 속 촛불을 켜놓은 듯 밝은 분홍색 꽃이 펴 있었다. 와 예쁘다 감탄도 잠시 내가 이 꽃을 그릴 수 있을까?
지름이 0.5도 안되어 보이는 꽃송이와 수십 개의 꽃망울이 다닥다닥... 무한 꽃차례 또는 총상화서라는 구조를 가진이 꽃은 냉이꽃의 구조를 상상하면 쉽게 이해되는 꽃이었다.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화피갈래조각이라고 한다. 이건 또 무슨 말인지?.... 넓은 꽃부리와 꽃받침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암술과 수술을 둘러싸서 보호하고 있는 부분으로 화피란 쉽게 꽃잎으로 이해하면 된다. 자세히 보면 흔히 보이는 꽃받침이 없다. 또한 꽃잎이 서로 떨어져 있는 꽃을 갈래꽃이라 하고 꽃잎의 아래가 붙어있거나 나리나 나팔꽃처럼 통모양으로 붙어있는 꽃을 통꽃이라고 일컫는다. 그리고 익히 알다시피 나팔꽃이나 팬지 같은 통꽃은 한 번에 주글주글 시들어 버리지만 갈래꽃은 꽃이 질 때 꽃잎이 한 조각씩 떨어진다.
또한 무릇은 20-30cm의 긴 꽃대에 기다란 잎사귀가 두 개만 뻗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줄기와 꽃자루가 만나는 자리, 즉 겨드랑이 위쪽에 애벌레처럼 생긴 아주 작고 하얀색의 '포'라는 구조가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보았다.
이제껏 숲 속에서 무릇을 만나면 밝은 분홍색의 예쁜 꽃이 피었네 하며 지나쳤다. 한 번도 무릇의 구조나 색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꽃을 가져와 루페로 관찰하면서 우주가 열리는 듯한 감상에 젖게 되었다. 이 작은 꽃망울에 6개의 화피와 6개의 수술, 1개의 암술, 그리고 포라고 불리는 구조까지 육안으로 보았을 때 잘 보이지도 않는 크기이지만 이 작은 한송이에도 우주가 깃들여 있었구나 나를 겸허하게 만드는 꽃이었다.
무릇의 아랫부분은 피었다가 시들어 버린 갈색의 씨방이 맺혀있고 위로 올라갈수록 피어있는 꽃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이 맺혀있다. 무릇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보겠다고 나서기에 나의 재주가 너무 하찮아 열심히 그려보지만 그림을 마치고 나니 꽃송이에 물을 바르고 시작해 옅은 분홍색을 바르고 그 위에 진보라색 가는 선으로 번지기를 시도해 볼 걸 그랬나? 아쉬웠다. 무릇을 그려보겠다 덤빈 나의 무모한 의지가 가상한 거야라고 나를 위로해 본다.
무릇의 아름다움을 살펴보고 나니 오래전 탤런트 신구 선생님의 광고 속 카피가 떠올랐다. "니들이 게맛을 알아!" 어쩌면 오늘도 무릇을 무심히 지나쳐버리는 우리들에게 온 힘을 다해 무릇은 외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니들이 무릇을 알기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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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로드를 마치고 나니 보이는 진실, 분명 무릇은 분홍과 붉은 계열의 보라색인데 어쩌자고 내 머리는 파란빛이 도는 보라색만을 생각하며 그렸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