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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Sep 04. 2024

육아의 쓴맛을 봐야 어른이 되지

에필로그

5년을 계획했던 황혼육아가 2년 만에 끝을 내게 됐다. 긴 기간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원섭섭하다는 표현을 쓸 수는 있겠다. 단축된 이유를 길게 늘어놓으면 열 가지쯤 되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사회적 제도를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손자가 성장했고, 그로 인해 육아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손자들이 자기표현도 가능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 


다섯 살과 두 살의 손자들은 9월부터 집 앞에 있는 새로운 유치원으로 다니기 시작했다. 이것은 상당한 변화를 의미한다.

 

우선, 유치원이 집 앞이기 때문에 스쿨버스를 타지 않는다. 대신 매일 아침저녁 직접 등하원을 챙겨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출퇴근길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려오느라 막히는 도로를 더 달릴 필요가 없어졌다. 둘이 같은 유치원이므로 픽업장소도 같은 곳이다.


아이가 유치원에 머무는 시간이 아침 7시부터 저녁 5시 30분으로 길어졌다. 예전에는 하원이 3시 30분이어서 엄마나 아빠가 올 때까지 아이를 데리고 놀아줄 사람이 필요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되었다. 딸이나 사위가 근무하지 않는 평일에는 긴 낮시간 동안 밀린 집안일을 하거나 자신을 위해 사용하면 되므로 시간에 훨씬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공립유치원이기 때문에 선생님이 여러 명이다. 이 말은, 선생님이 아파서 근무를 못해도 대체해 줄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이가 아파서 유치원에 못 갈 수는 있어도 예전처럼 선생님이 아파서 아이가 유치원에 갈 수 없는, 그런 어처구니없는 경우는 없을 거란 의미다.


게다가 작은 손자는 매일, 큰 손자는 일주일에 두 번 유치원에서 점심을 준단다. 도시락을 싸야 하는 번거로움도 줄어들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Peggy und Marco Lachmann-Anke님의 이미지입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초보 엄마인 딸이 5년 간의 육아를 치러내면서 나름 노하우가 생겼고, 직장맘 라이프에도 웬만큼 적응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던 첫 아이 때를 경험하고, 정신없이 바쁘게 두 아이를 키우며 육아의 쓴맛을 본 딸은 제법 의젓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 여전히 매운맛과 짠맛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쯤 되면 그것을 덮어줄 단맛이 있다는 것도 알아챘을 것이다.


아이를 가르친다고만 생각했던 육아가 아이에게 배우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하였고, 이를 통해 오히려 본인이 성장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이해심 많은 사위를 비롯해서 사돈내외, 그리고 육아를 직접적으로 도와준 나와 남편의 도움이 바탕이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려고 우리 같은 조부모들이 필요한 것 아닌가!


어린 시절 부족한 사랑 밖에 주지 못한 딸에게 조금이나마 미안함을 갚을 수 있었고, 때로는 같은 여자로서, 때로는 같은 엄마로서 간간이 삶을 이야기하며 딸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던 지난 2년의 시간이 내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작고 보드라운 손자들을 맘껏 안아주고 예뻐했던 순간들도 내 가슴 한편에 자리 잡아 늙어가는 나의 몸과 마음을 따스하게 덥혀줄 것이다. 이것은 황혼육아의 단맛이다. 


나 또한 초보 엄마의 엄마는 처음이라서 육아의 매운맛을 보기도 했지만, 황혼육아의 엄청난 달콤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딸과 나는 육아를 통해 아이와 함께 이렇게 한번 더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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