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차려주는 아침은 내게 특식이다.
지난 주말,
딸은 목금토일을, 사위는 토요일 하루를 각각 수업받으러 집을 떠나 있어야 했기 때문에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대신 손자 놈 둘을 돌보며 지내야 했다.
육아도 잘하고, 밥도 맛있게 하고, 빨래와 집안 정리도 잘하는 재수 없는 슈퍼맘 성향이지만, 이제는 몸이 늙어 힘이 드니 그럴 수 없다. 또, 그렇게 열심히 해봤자 표도 안 나고 내 몸만 축난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비우고 잘하려는 욕심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맡긴다는 생각으로 평온하게 주말을 맞았고, 손자들을 대충 돌보고 대충 먹이며 무사히 지나갔다.
그중 금요일 밤에는 손자를 데리고 자야 했다. 토요일 새벽 일찍 사위가 집을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날은 나 혼자 완전 독박육아로 제일 힘든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저녁 늦게 돌아온 사위는 나더러 이제 집에 가서 쉬시라고, 자기가 둘 다 볼 수 있으니 괜찮다고 하는데 둘째 손자는 안 괜찮은 모양이었다.
'할머니 간다~, 바이~'
소리를 듣자마자 평소 읽지도 않던 책을 들고 와서는 내 손을 잡아끌며 옆에 앉으란다. 이제부터 책을 볼 것이니 나더러 집에 가지 말고 같이 읽자는 뜻이다.
'할머니 이제 가야 돼, 내일 올게.' 손자가 입을 삐죽거리며 곧바로 울 태세다.
아~ 이걸 떼어놓고 어찌 맘 편히 가겠는가!
발라당 내 맘이 바뀌며 사위에게 말한다. '오늘까지 여기서 잘게!'
사위가 반색을 하며 좋아한다. '하하! 정말요, 괜찮으시겠어요?'
딸은 내일 일요일 저녁에나 집에 올 것이니 그때까지 사위 혼자 독박 육아를 해야 하는 탓이다.
그래서 토요일 밤에도 딸네 집에서 둘째 손자를 데리고 잤다.
일요일 아침이 되어 사위가 손자들 식사를 준비하며 내게 물었다. '어머님은 아침에 뭐 드세요?'
과일이랑 야채랑 계란프라이랑 먹는데, 내가 알아서 먹을 테니 신경 쓰지 말라 하고는 손자들을 데리고 놀았다.
'아침 먹자~'
어느새 사위가 식탁에 아침을 차려놓고 부른다. 커다란 하얀 접시에 사과와 아보카도, 스크램블드 에그가 담긴 것은 내 것이란다. 과일로 사과, 야채로 아보카도, 계란은 계란으로 차렸으니 내가 먹던 아침 메뉴와 같았다. 아이들 아침을 준비하면서 내 것도 만들었나 보다. 아이들 접시에도 사과와 스크램블드 에그가 담겨있다. 정작 사위 본인의 아침은 블랙커피 한 잔으로 끝이다.
일반적인 아침 메뉴처럼 베이컨이 있거나 빵이 있거나 해서 접시가 꽉 차지도 않았고, 12가지 영양소로 꽉 차지도 않았으며, 색색들이 예쁘거나 팬시 하지 않았지만, 내용물이 무엇이든 영양소 배합이 어떻든 남이 해주는 아침은 내게는 특식이고 보양식이다. 더구나 그 '남'이 사위었으니, 곱하기 열 배다.
해서 사위가 차려주는 아침을 황송하게 먹었다.
사위가 나의 아침을 차려주는 그 마음은 독박육아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고, 자신의 아이를 돌봐주느라 애쓰는 장모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란 걸 안다. 마음을 마음속에만 담아두지 않고 접시에 담아 표현해 주는 것이 나 역시 고마웠다.
오후에 딸이 도착했다. 둘째 손자 놈은 어느새 내게 '바이~'하며 손을 흔들고 있다. 저렇게 쿨할 수가! 엊저녁엔 내 옷자락을 붙들고 가지 말라며 눈물 글썽거리던 놈이 제 엄마 왔다고 미련 없이 바이 한다.
에라이~ 나쁜 놈! 나도 너만큼 세상 쿨하다, 이놈아!
'바이, 바이바이~'
이틀밤 잠을 설치고 육아로 몸이 힘드니 나도 쿨한 척 얼른 손 흔들고 집으로 왔다.
대문사진 출처: Pixabay로부터 입수된 Omi Sido님의 이미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