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슈 선생의 따뜻함은 봄빛과 같고 위엄의 엄숙함은 설상과 같고 건곤을 뒤덮는 도량과 산을 밀고 물길을 기울이는 방략으로 일찍이 막히고 어두우며 험난함에 빠진 천지에 입신하여 떠돌아다니고 녹초가 되어도 넘어질 때마다 일어났으니, 마침내 錦旗를 후시미에서 휘날려 왕의 군대가 나아가 동북으로 치달리고 수백년래의 봉건 악정을 바꾸어 조정 통치의 좋은 제도를 회복했던 것은 성스러운 천자의 威武와 여러 번 호걸의 偉略에 의한 것이긴 하나 본래 난슈 선생의 힘도 또한 없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말로에 역적의 이름을 얻고 성산에서 패망하여 귀신이 된 것은 실로 영웅이 만난 액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종전 가고시마 폭거 당시 난슈 선생으로 하여금 몸을 빼내어 수도로 달려가 帝都의 문을 두드리고 그 일편단심을 개진했더라면 우리 천자가 인자하고 밝으신데 어찌 그 격노를 풀고 손을 맞잡고 그를 위무하지 않았겠는가. 살피건대 이렇게 되지 않고, 결연히 자기 일신으로 그 평소 돌보고 훈련시키던 壯士들에게 참여하여, 시종일관 변하지 않았던 근왕의 뜻을 지니고 어쩔 수 없이 안록산, 소준의 대열에 끼게 되었으니, 그 고심함이 어떠하였겠는가. (...) 정3위를 추증한 특별한 은혜는 만천하 義士로 하여금 한없이 기뻐 울게 하니 이 얼마나 장쾌한 일인가"
사이고 다카모리가 황거로 달려가, 문을 두드리고, 젊은 메이지 천황이 문을 열고 나와 충신의 손을 붙잡고 위무한다. 그렇게 될 수 있었는데. 자신을 따르는 젊은 지사들과의 의리를 저버릴 수 없어, 자신의 행위가 천자에게 활을 겨누는 것임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반역의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향한 사이고 다카모리. 그러나 거기엔 이미 어떤 체념, 승산이 없기 때문에야말로 오히려 처신을 바로 했다는 체념과 안도가 뒤섞인 비장함, 그것이야말로 천자를 위해 죽어보인 사족다운 처신이었다고 간취하는 일본인들이 당시 얼마나 많았을까.
나카에 조민의 인생에서 사이고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했는지는 아직 다 헤아리지 못하겠다. 『삼취인경륜문답』의 호걸객이, 나 같은 옛날을 그리워하는 자들이 지금 일본에는 많다. 그런 자들은 여기 계속 있으면 서구화 좋아하는 놈들이랑 내전이나 일으킬, 사회의 암덩어리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니까 내 생각에, 우리 같은 놈들은 전부 칼 차고 창 끼고 중국 대륙으로 넘어가버려야 한다, 라고 말하는 것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전장으로 나서는 사이고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이렇게 너무나도 자주 자기 자신을 해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니, 어리석고 아름다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