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Orcaleopard
Jul 08. 2024
모든 것은 그 자신에 있어서 존재하거나 다른 것에 있어서 존재한다.
다른 것에 의해 생각될 수 없는 것은, 그 자신에서 생각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자신에 있어서 존재한다는 건 스스로 그러함에 머문다는 뜻이다.
다른 것에 있어서 존재한다는 건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이다.
만물의 조화가 있다면 오직 그러한 견지에서만, 그 자신에 있어서 존재하는 것과 다른 것에 있어서 존재하는 건 같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조화라고 부르는 것이 신의 조화라고 착각한다.
그러므로 인간 개체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할 때 발생하는 소외라든지 하는 긴장된 문제들은 결코 엄밀한 의미에서 해결되지 않고, 인간이 다른 인간과 유사하다는 점에 의해 완화된다.
그러나 완화된다, 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베케트의 연극들이 보여주듯이, 천으로 전신을 휘감아 얼굴도 보이지 않는 인간들이 서로에게 닿기 위해 여기저기를 더듬는 더듬거림이다.
무엇 하나 나아진 게 있을까? 무엇 하나 완화된 게 있을까 하고 베케트의 인물들은 한탄한다. 한탄할만큼의 힘이 그들에게 남은 경우엔.
술집에서의 파티와 고성방가와 우발적인 살인과 도피조차 그런 더듬거림에 지나지 않는다. 발푸르기스의 높이도, 지하세계의 헬레나도.
인류세의 소진된 역사란 기나긴 완화, 끝없는 더듬거림이다. 절망한 정신의 삭막한 풍경.
다른 것에 의해 생각될 수 없는 것은 자기자신에서 생각될 수밖에 없다. 어째서 베케트는 초조한 인물들을 그렸을까? 우리는 다른 것에 의해 고찰되거나 우리 자신에 의해 고찰될 뿐이다. 우리가 다른 것에 의해 고찰되는 것은, 또 우리가 남을 남과 다른 것들에 의해 고찰하는 건, 언제나 일어나는 일. 그러나 다른 것에 의해 고찰될 수 없는 것은 자기자신에서 고찰될 수밖에 없다. 자기자신의 피와 뼈와 살과 세포들에서. 너의 피와 뼈와 살과 세포들에서. 나의 피와 뼈와 살과 세포들에서. 너의 피는 나의 피가 아니니까.
인화루는 착잡하게 가라앉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