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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caleopard Jul 18. 2024

참호전

참호전은 유럽 귀족들의 전쟁놀이를 끝장냈다. 최초의 기관총 소사 소리는 영웅들의 시대를 끝장내는 벼락처럼 울렸다. 그로부터 패배한 귀족들이 전쟁의 종식과 평화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것이 국제연합과 윌슨주의로 이어졌다. 1차대전에서 서부전선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들이라면 그 평화주의를 간단하게 조롱하거나 부정할 수 없었고 그래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올바른 전쟁과 올바르지 않은 전쟁을 구분할 수 있는 사유의 여건이 이미 PTSD로 인해 파괴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전쟁 일체를 부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고 전쟁 일체를 부정하는 것은 그 반동으로 모든 전쟁의 결단을 차별 없이 찬양하는 파시즘을 낳았다. 그래서 참호전은 중요하다. 이 일련의 일들(서유럽의 전간기)이 거기서 유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아시아와 동아시아가 참호전을 겪지 않았다는 것도 중요하다. 

참호전의 큰 문제는 병사들에게 동기부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참호전은 사실 거대한 아우슈비츠나 다름 없다. 일제돌격을 반복해도 조금도 전진할 수 없다. 하루 만에 6만 명씩 죽어도 말이다. 질서정연하게 가스실로 들어가는 유대인들처럼 유럽인들은 질서정연하게 죽으러 돌격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유대인의 죽음만큼이나 무의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무의미하다고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죽음을 강제하는 전쟁의 시스템이 마치 자연스럽게(모노노아와레적으로)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나는 참호전을 볼 때, 아우슈비츠를 볼 때와 똑같은 어떤 기형적 정신을 느낀다. 유럽인들이 “문명 발달의 결과 아우슈비츠가 나왔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들이 “문명 발달의 결과 1차대전의 비극” 운운하는 것과 매우 유사한 어법이다. 그런데 그것은 특별히 문명이 발달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유럽이라는 지방의 고유한 풍속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런 이상한 참호전과 이상한 가스실은 유럽(서부전선)에서만 나타났고 다른 지역에서는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참호전은 국가와 사회의 상호관계의 한 양상을 나타낸다. 국가가 사회와 자신을 강박적으로 구분하려고 하는 것. 그것이 참호전으로 나타난다. 참호전은 결국 전장과 총후를 강박적으로 구분하려는 사고방식의 소산이다. 이런 것이 갑자기 전장에서 처음 등장한 게 아니다. 그 전부터, 국내적으로도 이미 참호전적인 상황이 벌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것은 사회와 군대, 국가의 상호침투를 강박적으로 경계하는 것이다. 유럽인들은 원래 교회와 국가의 상호침투를 막아야 한다는 주제에 집착해왔다. 그런 주제가 유럽의 근대국가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은 참호로 국가를 둘러싸고 사회로부터 그것을 보호하려고 했고 그 반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참호로 사회를 보호한다는 것. 그러나 이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러야 하는 사고방식이다. 이런 대가를 치를 바에야 적이 치고 들어오게 놔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다. 대조국전쟁 당시 소련이 성공적으로 참호전을 수행했다면 사상자는 좀 적었을 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민간인 사망자가 좀 적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조국전쟁에서 도대체 민간인과 군인을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대조국전쟁의 핵심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참호전이 성공했다면 기껏해야 교착을 얻을 뿐이며, 러시아인들은 결코 대조국전쟁의 절망과 환희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유럽의 심장으로 진격해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며, 일약 세계의 공동 지배자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내 생각에 이 문제에 주목한 중요한 사상가는 푸코다. 그는 잠깐 이 문제에 주목해서 전쟁론에 빠졌다가, 그것이 “너무 단순”하다고 느끼고 <감시와 처벌>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왜 단순하다고 느꼈을까? 여러 생각이 들지만 일단 넘어가고, 그가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라고 이름 붙은 1년의 강의를 1차대전의 참호전이 아닌 나치의 절멸전쟁으로 끝마치고 있는 부분만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죽이는 주권권력에서 살게 하는 생명권력으로 이행한 다음 국가가 적을 죽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인종주의가 필요했다. 푸코가 말하는 인종주의는 “국가들이나 한 계급이 (…) 반목을 가상의 적수에게 돌리고자 할 때 이용하는 일종의 이데올로기 조작” 같은 것이 아니다. 인종주의는 생명권력에 의해 억압된 주권권력이 고차원적으로 회복된 것이다. 

푸코는 생명권력이 극단화되면 극단화될수록 당연히 인종주의도 극단화된다고 설명하고, 나치즘을 그 사례로 든다.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왜 가장 많은 인명을 빼앗는 국가가 동시에 불가피하게 가장 인종주의적인지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아언문 학파라면 바로 고개를 갸우뚱할 것이다. 나치즘은 “가장 많은 인명을 빼앗는 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창비주의를 푸코의 후예라고 부르는 까닭이다. 소련이나 중국의 사례를 들 필요도 없으며, 단지 나치가 서부전선에서 1차대전보다 훨씬 적은 사상자를 냈다는 점만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왜 푸코는 솜 전투나 베르됭 전투 같은 참호전의 1차대전이 아니라, 2차대전의 나치를 “가장 많은 인명을 빼앗는” 생명권력의 극단적 형태로 제시하는 것인가? 이것이 제기되어야 할 질문이다. (그러나 넘어가자)

푸코가 생명권력이라고 말하는 것이 내게는 유럽의 풍속, 혹은 (제국이 아닌) 제국주의의 풍속으로 느껴지기는 한다. 그는 훌륭하게 다음과 같이 정리해준다. “물론 나치 정권만큼 규율적인 국가는 없었습니다. 생물학적 조절이 그렇게까지 촘촘하고 집요하게 중시됐던 국가도 없죠. 규율권력과 생명권력. 이 모든 것이 나치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미쳤으며 그 사회를 떠받쳤습니다. 생물학적인 것, 번식, 유전 등의 관장. 마찬가지로 질병, 사고의 관장 등. 나치가 수립한, 여하튼 기획한 사회만큼 규율적이고 보험적인 사회는 없습니다. 생물학적 과정에 고유한 우연을 통제하는 것은 이 체제가 즉각적인 목표로 삼았던 것 중 하나였습니다.”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는 제목은 바로 이러한 생명권력의 정언명령을 가리킨다. 규율적, 보험적, 안전적, 조절적 사회. 

거칠게 말하자면, 푸코의 주장은, 규율적, 보험적, 안전적, 조절적 사회가 아우슈비츠를 낳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 더해 그것이 참호전을 낳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참호로 사회 주변을 빙 둘러서 사회를 보호하려는 사고방식, 내지 권력의 작동방식. 그것은 반대로 사회로부터 국가를 보호하려는 사고방식이기도 하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샌다. 전쟁이 났다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살던 대로 사는 법이고 하던대로 하는 법이다. 참호전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아우슈비츠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달리 말해, 그것들은 그들이 그 전에 살았던 삶의 당연하고 마땅한 귀결이며 대가였다. 


아시아인들이 언제나 참호전을 마뜩찮아 했고 서부전선 같은 사태가 애초부터 나게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참호전은 일본군 일부나 국민당 일부만이 좋아하는 신기한 박래품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규율적, 보험적, 안전적, 조절적 사회에 가장 가까운 것이 일본임은 말할 것도 없다. 일본군은 어쩌면 참호전을 하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참호전을 했으면 일본군을 이길 군대가 세계에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아시아의 인심은 참호전을 받아줄 생각이 없었다. 일본군은, 그래? 그럼 더 이득이지, 라고 약간의 오기와 함께, 큰 소리로 허공을 향해 외치며, 그러나 어쩐지 뇌리를 스치는 한 조각의 불안함을 애써 억누르며 총총걸음으로 대륙 깊숙히 치고 들어갔다. 그 결과는 잘 알려져 있다. 요즘의 의사파업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이지만, 우리의 인심은, “누워버려”를 무한한 쾌감과 함께 발화하고, 누가 더 잘 누울 수 있는지를 경쟁한다. 


코로나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의 생명권력은 이제 세계적인 수준이다. 출산율을 0.7로 유지하는 것도 대단한 조절능력이다. 우리가 만에 하나 공격전쟁을 감행한다면 참호전이나 아우슈비츠보다 더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을 것이다. 거의 확실히 그런 사태를 초래할 것이다. 다만 희망은 아직 한국에서 보수적 주자학이 작동하는 정치가 생명권력이 관할하는 행정 및 각종 전문분야들보다 우위에 있는 한에 사라지지 않는다. 모두가 한국 정치가 국민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고 한다. 그것을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올 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면 국회에 빠루를 들고 난입하듯이 미트 그라인더를 누르려는 행정가들의 밀실에 난입해서 드러눕고 그라인더 자체를 깨부수고 밖으로 옮겨 광장의 빛 아래에서 기자들에게 조리돌림 하는 역할을 이 무뢰한 민권 장사壮士들 말고 또 누구에게 기대할 수 있을까. 물론 사대부가 반드시 평화적일 거라는 말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미트 그라인더를 멈추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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