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원지 Jul 09. 2024

식대도 없는 프리랜서, 갑자기 출근하게 되다

프로도시락러 더 비기닝


#. 집이 직장인 프리랜서의 점심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업계에서 약 8년 간 프리랜서로 일 해왔다. 주로 집에서 작업하며 식사는 대부분 간단하게 해 먹는 것으로 (아주 가끔 배달로) 해결하곤 했는데. 프리랜서라 식대도 안 나오고 동생이랑 사는 2인가구 자취생인데, 동생은 직장인이라 식비를 아끼려면 해 먹는 수밖에 없었다. 가끔 생각했다. 만약 내가 직장생활을 했다면, 점식식사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직장인들 얘기를 얼핏 들어보면, 대부분 회사 근처 식당에 가거나 포장 혹은 배달로 해결하는 것 같았다. 도시락을 싸다니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는 내가 그런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계산조차 머릿속에 있지 않았다. 은연중에 도시락이란, 정성이 많이 들어가야 했고 또 남들에게 (강제) 공개돼도 민망하지 않을 정도의 모양새를 갖춰야 했으며, 쌀 수 있는 메뉴도 한정적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내 삶에 변수가 생겼다. 태어나 처음으로 ‘출근’이라는 걸 하게 된 거다. 프리랜서가 웬 출근이냐고? 사실 정확히 얘기하면 출근은 아니고, 함께 일하게 된 회사에 있는 방 하나를 내 몫으로 가질 수 있게 된 거다.

 “00님이 원한다면 이용하게 해 드릴 수 있어요. 편하신 대로 하세요.”

 강요가 아니었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있었고,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출근을 하기로 했다. 미쳤냐고? 왜냐고?


#. 출근이냐 재택근무냐 그것이 문제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직장인들이 들으면 욕하겠지만) 나에겐 출근하는 삶에 대한 로망이 있다. 동생은 아침마다 알람 소리에 겨우 일어나 출근을 하는데, 나는 눈곱조차 떼지 않고 잠옷 차림으로 책상 앞에 앉아 컴퓨터 전원만 누르면 출근이었으니. 직장인들이 보기에 나는 한마디로 꿀 빠는 인생일 테다. 심지어 내가 일 하는지 안 하는지 아무도 감시하지 않으며, 중간에 낮잠을 자도, 하루에 최소한의 시간만 일해도 마감시간만 지킨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동생은 그런 나를 아침마다 째려보며 “프리랜서... X나 부럽다” 중얼거리곤 했다. 그럴 때면 나 또한 "출근 안 해도 되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라며 유연석 화법으로 동생을 약 올리곤 했다. 그런데... 8년째 매일매일 그 삶을 반복하다 보니, 염증이 생겼다.


 나는 좋아하는 옷을 골라 구매하고, 또 입고 나가 나만의 패션쇼(?)를 하는 게 큰 행복 중 하나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옷장에 쌓여가는 옷들 수에 비해 나의 외출빈도수는 점점 줄어갔다. 가난한 대학생 때 입던 싸구려 옷들에 비하면 훨씬 질 좋고 예쁜 옷들을 살 수 있게 됐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입고 나갈 곳이 없다는 게 매일 같이 비통했다. 오죽하면 산지 5년이 넘었는데 마치 새 옷 같은 옷들이 한가득이다. 옷이 도무지 닳지를 않는 거다...  

 게다가 방문 하나만 열면 나를 반기는 침대의 유혹에, 자꾸 낮잠을 자고 할 일을 미루다 마감에 쫓기다 보면, 남들 일할 때는 쉬고 남들 쉴 때는 일하기 일쑤였다. 출퇴근 시간이 없으니, 쉬는 시간과 업무시간의 경계도 흐리다. 또 생활공간과 업무공간이 같다 보니, 일하기에 쾌적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집안일을 해야 하고 집안일을 하다 보면 일할 시간이 줄어드는 비효율도 감당해야 한다. (사실 일하기 싫을 때는 집안일마저 매혹적으로 느껴진다)그리고 나름 8년 차 사회인인데 내가 커리어우먼(?)이라는 감각을 도무지 느낄 수가 없었다. 그냥 집에서 잠옷 입고 낮잠 자다 일하다가 설거지하다가 밥 먹는 내가 마치 반홈프로텍터(백수)처럼 느껴질 때도 왕왕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만을 위한 공간이 있는, 그 공간 청소는 남이 해주는 직장인들이 너무너무너무 부러웠다.

이런 모습? 당연히 아니다...

 심지어 ‘진짜’ 출근도 아니지 않은가? 출퇴근 시간이 정해진 것도, 나오지 않는다고 눈치 주는 사람도 없다.  방 안에 들어가면 노트북과 나 밖에 없고, 사무실에 직원들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나를 건드리는 일은 없다.  쾌적한 업무공간과 에어컨 바람, 탕비실의 무료커피와 간식까지 제공받지만 직장상사에게 시달릴 일도,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이, 그저 직장인이 된 기분만 내려가는 거다. 한마디로 내가 하게 될 건 무려 ‘폰’출근이었다. (폰00이라는 밈이 있다. 있다고 하지만 없는 것, 거짓말 같은 의미인데. 작년에 벚꽃이 피어야 할 기간에 피지 않자 ‘폰벚꽃’이라며 공무원들이 홍보했던 걸 생각해 보면 이제 꽤나 보편적인 밈(라고 쓰고 사망선고라고 읽는)이 되었나 생각했는데... 맞겠지?)  즉 직장인으로 살기 위해서 감당해야 하는 장단점 중 장점만 취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폰출근러가 되는 거... 정말 매혹적인데?  

 그런데 문제는 식사였다. 하루에 만 원이 든다고 쳐도, 일주일에 다섯 번, 한 달에 20일이면 20만 원이다. 그것도 점심값만!  거기서부터 나의 엄청난 내적갈등이 시작됐다. 출근이냐 집이냐... 점심값 폭탄이냐 식비 절약이냐... 잠옷이냐 외출복이냐...


 “할게요 출근.”


#. 밥은 먹고 싶지만 돈은 쓰기 싫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르고 나서, 나는 폰출근을 앞두고 네이버 지도를 켜 합정역 근처 식당이란 식당은 죄다 클릭해 보았다. 가성비가 좋은 식당을 찾기 위해서였다. 당연히도 만원 이하인 집은 거의 없다시피 했고, 회사 건물 지하에 있는 카페의 샌드위치가 6-7천 원, 근처 베트남 식당의 반미가 7천 원, 구내식당에서 외부인에게는 7천 원에 식사를 제공하고 있었다. 약 7천 원이 최소금액이라는 거다. 그러면 14만 원, 6만 원 정도는 더 아낄 수 있었다. 물론 매일 샌드위치 아니면 반미(이것도 샌드위치잖아?), 구내식당 메뉴만 먹어야 하긴 했지만. 아니 잠깐.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그리고 솔직히 집에서 먹을 때와 비교하니 7천 원도 엄청 비싸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시락이라도 싸다녀야 하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내게 일주일에 5번 도시락을 싼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이었다. 내가 집에서 주로 해 먹는 음식(이라고 하기도 민망한)이 도시락 메뉴로 전혀 적합하지 않았고, 아침마다 씻고 나가기도 바쁜데 (심지어 난 아침에 운동도 하는데) 도시락을 언제 쌀 것이며, 매일 쌓이는 설거지 거리에 메뉴 구성을 스스로 짤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정말이지 밥은 먹고 싶었지만 돈은 쓰기 싫었다...

그렇게 나는 답을 내리지 못한 채로 출근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간편식 아니면 배달음식만 먹던 제가 도시락을 싸다니게 된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진짜 천 원을 들여서 도시락을 싸간 적도 있지만, 항상 천 원은 아니에요. 그만큼 저렴하게 싼다는 의미에서 천 원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천 엔 샵의 모든 물건이 천 엔은 아닌 것처럼요? 어그로 죄송...) 그래도 제목에 충실하기 위해, 그리고 저의 지갑을 지키기 위해 회사 근처에서 사 먹는데 드는 최저비용인 '7천 원'은 무조건 넘지 않을 예정입니다! '아무 거나 먹고 싶지는 않지만 식비는 아끼고 싶은 사람'으로 저를 소개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도시락을 싸다니는 경험과 또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에 대해 조잘조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