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미국, 아직 2차 세계 대전의 여파가 남아있는 문학계에 문제작 하나가 등장한다. 훗날 금서로 지정되며 존 레논과 존 F 케네디 암살범의의 애독서가 되기까지 한 이 작품은 바로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1. 스스로 이야기가 된 작가
<호밀밭의 파수꾼>은 거침없이 등장하는 비속어와 네 번이나 퇴학당한 문제적 주인공으로 금서 반열에 오른다. 문제적 행동의 반성과 자아 성찰에 집중하는 전통적 성장 서사와 달리, 이 책은 청춘들의 불안과 거친 생각을 그대로 담아내며 기성 세대의 성찰을 이끌어냈다. 결국 <호밀밭의 파수꾼>은 ‘콜필드 신드롬’을 이끌어낼 정도로 베스트셀러가 되며 7000만부의 판매기록을 세운다.
또한 이와 더불어 작가 ‘제롬’의 학창생활도 함께 주목받았다. 소설의 주인공 ‘홀든’이 퇴학을 네 번 당했다면, 작가인 제롬은 두 번의 대학생활을 모두 중퇴로 마무리 지었다. 중퇴 이후에는 육군에 징집되어 전쟁에 참가했으며, 그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하여 소설을 집필한다. 심지어 작품이 성공한 후에는 철저하게 은둔생활을 하며 모든 인터뷰를 거부하는 반항아적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즉,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은 제롬의 자전적 소설이었으며 그에 따라 제롬의 삶은 작품 못지않은 이목을 끌었다. 대중들은 그를 주인공 ‘홀든’과 같은 세상에 섞이지 못하는 반항아, 그리고 은둔 천재로 인식하였으며, 글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듯한 그의 태도에 열광했다. 작가 제롬의 인생은 이렇게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어 소설의 인기를 더욱 끌어올렸다.
제롬은 친구도 가족도 멀리한 채로 오직 글에만 매진하는 고독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러한 모습이 대중들에게는 세상을 거부하는 매력적인 반항아로 보일지 모르겠지만, 제롬에게는 문학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그에게 글이란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친구이자, 불안한 상황 속에서 마음을 다스릴 안정제였기 때문이다. 제롬은 적응하기 힘든 학교생활, 세상에 대한 복잡한 불만, 불안정한 상황에 대한 걱정을 모두 글로 풀어냈다. 심지어 소설이 써지지 않는 불안함도 창작으로 해소하며 글쓰기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간혹 누군가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다양한 경험, 혹은 특별한 경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작가의 서사가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든다는 것이 세간의 보편적 생각이기 때문이다. 제롬의 학창시절과 전쟁트라우마도 이 특별한 경험 중 하나였으며, 대중들은 이로부터 비롯된 창작물 뿐만 아니라 그 경험 자체도 흥미로워했다. 즉, 작가는 이야기를 만드는 창작자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글을 쓰는 인생마저도 이야기처럼 소비되는 것이다. 그렇게 ‘매력적인 반항아’, ‘은둔 천재’로 브랜딩된 제롬은 평생을 이야기로서, 이야기를 만들며 살았다.
2. 책 한 권으로 거머쥔 독이 든 성배
성공한 책 한 권은 제롬에게 유명세와 밀려드는 일거리,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가져왔다. 그러나 뒤따라온 차기작의 부담은 그에게 또 다른 고통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방황하던 마음의 탈출구가 되었던 글은 이제 그를 억압하는 족쇄가 되어버렸다. 거기다 성공을 이끌었던 <호밀밭의 파수꾼> 역시 차기작이 넘을 거대한 벽이 되어 제롬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만족스러운 글을 쓰기 위해 변두리 지역으로 이사하고, 아무도 모르는 작은 오두막에 숨어서 혼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친구도, 가족도, 스승도 전부 끊어내고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도피한 것이다. 그는 인생의 가장 큰 목표였던 출판과 성공을 모두 이루었지만 전혀 만족할 수 가 없었다.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글쓰기에 삶을 바칠 수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은둔 생활이 이어질수록 제롬의 유명세도, 그리고 차기작에 대한 기대도 더욱 높아졌다. 턱 끝까지 차오른 부담감 속에 결국 제롬은 한 가지 결론을 내린다. 지금의 고통과 잡념을 떨치고, 오직 글을 사랑하는 마음만 남을 수 있도록 ‘보상 없는 글쓰기’를 희망하게 된 것이다. 그는 오랜 고민 끝에 장편이 아닌 단편만을 출간한 뒤 앞으로의 출판을 그만두기로 다짐했다. 대중의 평가도, 감시도 없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글을 쓸 수 있도록, 또한 지금까지의 괴로움 역시 사라지기를 바라며 내린 최후의 판단이었다.
3. 진정한 작가가 되는 법
돈, 명예, 그리고 인기를 가진 인생의 전성기에서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글쓰기에 대한 제롬의 열정은 관객에게 ‘진정한 작가’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분명 제롬처럼 보상을 바라지 않고 오직 창작을 향한 열정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마치 ‘진정한 작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출판 후의 유명세나 금전적인 이득을 노리고 글을 쓰는 창작자들을 진정한 작가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재정적 어려움에서 비롯되어 명작을 낸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기에 <호밀밭의 반항아>는 관객에게 직업적 태도와 본질을 꿰뚫는 질문을 던진다. 쉽게 답을 내리기 어려운 ‘본질’에 관한 질문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말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작가 제롬의 삶을 그대로 담은 작품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홀든의 반항적 태도부터 뉴욕이라는 작품의 배경까지 제롬과 닿아있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 그는 “‘홀든을 연기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속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주인공을 통해 풀어내곤 하였다. 그러한 작품에 간절히 원하던 출판의 기회가 오고, 영혼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홀든이 세계적인 인기까지 얻게 된 것은 그의 인생 속 가장 핵심적인 성취였을 것이다. 즉, 그는 작가로서 이룰 수 있는 최고치의 목표들을 일찍 달성했기 때문에 창작이 가져오는 부가적인 이익을 배제하고 오직 ‘쓰기’라는 본질만을 고려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질적인 이득에서 벗어나 오직 쓰기만을 추구하는 순수한 열정은 사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물질을 이미 가짐으로써 나오는 여유에서 비롯되었다. 그렇다면 창작에 대한 순수한 열정, ‘진정한 작가’의 마음가짐은 어디서 나오는가.
4.수많은 완성으로 이루어낸 미완성의 결말
제롬은 출판 금지를 다짐한 이후로 원고를 가지고 있기만 할 뿐, 그 어떤 장편 소설도 출간하지 않았다. 직업적으로 가장 최전성기에 맞이한 은퇴였다. 그래서 세간의 사람들은 그의 커리어가 완성되지 못하고 끝난 점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제롬에게는 커리어의 미완성이야말로 진정한 완성이였다.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홀든의 이야기를 완결낸 후로는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영혼의 분신을 작품으로 그려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홀든의 삶을 완성시킴으로써 그는 문단계의 미완성작으로 남았고, 그 미완성이 제롬을 구성하여 완결된 삶을 이루어냈다. 즉, 수많은 작품의 완성으로 이루어낸 미완성의 작가가 된 것이다.
사실 제롬뿐만 아니라 역사에 이름을 남긴 유명한 예술가들은 대부분 미완성 작품을 남기며 삶을 마감하였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작품을 만들고 있거나, 혹은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이 완결된 것은 삶의 이치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지 완성하고자 하는 작품을 모두 완성했기 때문이 아니다. 삶의 마지막 시간까지 대중에게 작품으로 기억되고, 그 작품을 위해 다시 창작을 하고, 후대에게까지 그 흐름을 이어나가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는 오히려 ‘미완성’의 삶에 더욱 가깝다.
그렇기에 제롬 또한 마찬가지이다. 세상과의 격리를 통해 완성해낸 그의 작품 세계는 결국 미완성의 문학으로 대중에게 남겨졌다. 그러나 그 미완성의 문학을 통해 그는 불안정한 자신을 완성시켰고, 완성된 자신은 다시 미완성의 시도를 향해 걸어나간다. 즉, 창작을 향해 달리는 수백수천시간의 미완성의 시도들은 완성을 거쳐 다시 미완성의 경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과연 창작자는 창작물을 완성시켜야 하는 사람인가. 그리고 완성의 상태는 영원히 지속되는가. 세상이 열광했던 완벽한 반항아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삶은 이토록 수없이 뒤바뀌는 완성과 미완성의 굴레에서 창작의 본질을 짚는다. 진정한 창작과 진정한 완성. 당신이 결론 내릴 창작의 본질은 무엇으로 이야기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