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아니면

우연히 시작된 시간

by 초바샘

인생은 우연한 사건들로 시작되고, 선택으로 완성된다 -장 폴 사르트르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큰 아이가 돌 때쯤 되었을 때 우연히 은행에 갔다가 교육비로 쓰면 좋다는 보험 상품을 소개받았습니다. 적은 돈이라도 매 달 모을 수 있다는 것에 솔깃해서 10년 이상 저축해야 하는 교육보험에 덜컥 가입을 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근사한 목표가 있으면 만기까지 모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스트잇에 'A 초등학교 졸업 여행'이라는 글씨를 꾹꾹 눌러 써서 통장 앞 장에 꾹꾹 눌러 붙였습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습니다.


막상 아이가 졸업하던 해가 되자 코로나로 일상을 바뀌어있었습니다.

아이의 6학년은 온라인 수업으로 시작되었고, 마스크를 쓰고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1년이 지나 졸업식도 컴퓨터를 켜고 각 자의 집에서 하나 된 마음으로 했습니다. 컴퓨터를 켜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졸업식 노래를 부르던 것이 어찌나 진지했는지 모릅니다. 이런 상황에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차곡차곡 모아 온 통장은 결국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자신의 사용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돈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경험으로 쓰이지 못한 돈, 목적을 잃어버린 시간 같았기 때문입니다. 돈이 모여가는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의 자리도 하나씩 채워져 갔습니다. 둘째 아이와 셋째 아이가 태어난 것이죠. 돈을 불리는 것보다 경험이 쌓이는 시간이 더 가치롭다고 믿는 세 아이의 엄마는 불편한 마음을 안고 그렇게 또 3년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 큰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고 7년간 발레리나를 꿈꾸던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한 첫여름, 그 꿈을 접었습니다. 여러 번의 좌절에도 단단하던 아이의 마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방향을 잃어버린 아이의 마음을 일상과는 다른 곳에서 어루만져주고 싶다는 생각만 간직한 채 아이와 엄마의 3년은 너무도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어느 누구보다 하루가 빨리 저물어버리는 다둥이 엄마로 지내다 보면 이대로 눈 깜짝하고 뜨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 두려워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잡고 싶은 아이의 순간들은 쏜 살같이 지나갑니다


지금 결단을 하지 못하면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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