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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아오라 Mar 06. 2024

보통날

아빠가 출근하지 않고, 엄마가 병원을 가지 않고 세 식구가 함께 학교로 향하는 보통날. 

갑갑한 양복을 벗어던지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불편한 구두를 벗고 슬리퍼를 신고, 면도는 당연히 패스. 나의 남편은 평발이다. 퇴근 후에는 발이 많이 지쳐있다. 그래서 발 마사지를 자주 했다. 하지만 이곳은 어딘가!! 바로 뉴질랜드 아닌가! 복장과 체면으로부터의 자유가 있는 곳! 나의 남편은 처음으로 찾아온 보통날을 원 없이 즐겼다. 내가 아플 때는 병원을 쉬면서 육아를 도맡았다. 그때도 복장은 자유로웠으나 마음은 편하지 못했고, 무너지기 직전의 멘탈은 붙들어야만 했기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더없이 평안한 보통날이다.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정말 가까운 곳에 있다. 돈이 깨져 나가고 빚이 늘어 갈지언정, 추억은 돈으로 로 살 수 없는 것이니까. 일단 돈을 떠나 세 식구가 온전히 함께 주말 같은 평일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돈 그까이꺼! 나중에 생각하자!

나의 가족은 term3에 처음 왔다.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계절이었다. 한국과는 또 다른 느낌의 추위였다. 하루 안에 4계절이 있달까. 


<춥다-쌀쌀하다-따뜻하다-잠시 덥다-춥다.> 


요상스러운 날씨였다. 나의 딸은 외투로 겨울 패딩을 입고 양말에 크록스를 신었지만, 그냥 반팔, 반바지, 맨발로 오는 아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아주 강하게 크는 듯하다. 겨울 따위! 그냥 날려버려! 그런 느낌이랄까. 비가 와도 그냥 학교 안에서 뛰어다닌다. 비 그까이꺼! 그냥 맞지!! 이런 느낌이다. 비에 흠뻑 젖어도 행복해 보이는 그 어린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나의 입가도 씰룩 거리게 된다.

아침 8시 40분까지 등교를 하는데 지각 시에는 이름을 적는다. 아침 체조나 스포츠를 신청한 아이들은 7시 20분까지 학교를 간다. 나의 딸은 아침 운동을 신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 8시~8시 10분쯤 등교를 했다. 8시 10분에 교실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기 때문에 너무 일찍 가면 밖에서 놀면서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처음 머물렀던 집은 학교와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준비가 늦었거나, 나의 딸이 감기 기운이 있거나, 날씨가 안 좋을 때는 빼고 스쿠터를 타고 학교를 갔었다.(두 발 자전거를 타기 전까지다.) 사진에 보이는 핑크색 스쿠터는 K마트에서 구매했다. 저렴한 가격에 산 저 스쿠터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퀄리티가 쓰레기라는 것! 조금 탔더니 바퀴가 걸레짝처럼 다 찢어져 버렸다. 거의 뭐 일회용품 수준. 결국 다시 샀다. 단기 유학생이라면 저렴한 거 타고 버리고 가면 그만이다. 장기 유학생이라면 처음 살 때 너무 저렴한 건 피하자. 돈이 두 번드니까.

한국의 아이들은 태권도 가방 하나 처억 메고, 책가방에는 학원 책과 필기구를 넣어 다닌다. 그렇다면 이곳의 아이들은 학교 가방에는 무엇을 들고 다닐까? 필기구나 학교 교재는 들고 다니지 않는다. 뉴질랜드 초딩 책가방에는 스낵 박스와 런치 박스! 두 개의 도시락과 물통을 넣어 다닌다. 가끔 북백과 모자를 넣기도 한다. 한국과의 차이는 밥을 주지 않는다. 급식이 없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처음에는 김가루를 잔뜩 넣은 주먹밥을 넣어 줬다. 


"엄마 밥이 너무 시커멓더라. 나도 그냥 샌드위치해 줘. 아무도 꺼먼 밥 안 먹어."


그날 이후 지금까지 도시락에는 밥을 넣어 가지 않는다. 도시락을 열었던 그날 너무나도 시꺼먼 음식에 같은 반 친구들이 많이 놀랬다고 훗날 아이들에게 들었다. 


"딸!! 엄마가 미안해! 꺼먼 밥을 보고 같은 반 친구들이 놀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어."


처음 도시락을 쌀 때는 새벽 6시 20분쯤 일어나서 준비를 했었다. 등교시킬 때 나도 좀 깔끔하게 입고 가야 하니까. 나의 준비 시간과 도시락을 싸기 위해서는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매일 하다 보니 깨달았다. 나는 그냥 세수만 하면 되는구나. 요즘은 아침 7시 10분에 일어나 세수하고 바로 도시락을 후다닥 싸고 모자를 쓰고 학교로 향한다. 자꾸 싸다 보니 아주 쉬워 쉬워!

메뉴는 의외로 간단하다. 한식이었으면 국 넣고, 반찬 넣고, 밥 넣고 막 바리바리 싸야 하는데 빵만 하면 되니까 아주 간단 간단! 계란과 베이컨을 넣은 샌드위치와 누텔라나 딸기 잼을 바른 식빵을 넣고, 과일과 스낵, 젤리, 초콜릿을 넣는다. 파우치형 요구르트는 따로 넣어준다. 그렇게 하면 도시락 두 개 완성. 

어떤 아이들은 그냥 당근을 통째로 넣어 오기도 하고, 라면을 끓여 오기도 한다. 혹은 큰 햄버거나 피자를 넣어 오기도 한다. 학교 사이트에서 화요일은 스시, 목요일은 서브웨이, 금요일은 피자 신청을 하면 그날은 스낵 박스만 싸면 된다. 나의 딸은 스시와 서브웨이를 싫어한다. 그래서 매주 금요일 하와이안 피자 3조각을 신청해 놓았기에 지금까지 매주 금요일은 스낵 박스만 싼다. 런치 박스에는 간단한 과일과 과자류만 넣는다. 도시락을 각 각 싸서 오니까 한국인의 정서에는 그러면 노나 먹지? 생각하지만 나눠먹지 않는다. 각자의 도시락은 각자가 먹는다. 


<No share food> 


등교하고 한 시간 정도 있으면 스낵 타임이다. 스낵을 먹고 밖에 나가 신나게 뛰어논다. 한국의 아이들과는 다르다. 우리는 군대식으로 앉아 공부를 하고 일과를 시간표에 따라 움직인다면 이곳의 아이들은 그냥 뛰어논다. 지나친 학업 스트레스는 천사 같은 아이들도 사납게 만든다. 이곳은 지나친 선행학습 학업 스트레스가 없다 보니 아이들이 덜 예민한 듯하다. 그렇게 스낵 먹고 놀다 보면 또 수업 시간이 찾아온다.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색칠도 하고,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하고 매트에 삼삼오오 그룹으로 앉아 게임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숫자도 배우고, 단어도 익히고, 토론도 하면서 자유롭게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12시는 점심시간이다. 12시 15분에 아이들이 쏟아져 나온다. 밥을 먹고 또 나와서 논다. 그때 주디 티쳐라고 해서 주황색 조끼 옷을 입은 선생님들이 학교 이곳저곳에 흩어져 다닌다. 밖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많고, 맨발로 노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언제든지 크고 작게 다칠 수 있다. 혹 놀다 다쳤을 경우 가까운 곳에 있는 주디 티쳐를 찾아가 이야기를 하면 선생님이 체크해 준다. 그런데 뭐 큰 기대는 하지 말자. 이곳 분위기가 크게 다치지 않는 한 기냥 그냥저냥 넘어가는 것 같다.

1시부터는 오후 수업이 시작된다. 스쿨 트랙을 달리기, 공을 이용한 수업, 반별로 도서관 방문, 교실에서 리딩 수업을 하기도 한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오전 혹은 오후에 이솔 수업이라 하여 부족한 영어 수업을 따로 받는다. 나의 딸은 주 3회 받고 있다. 언제쯤 영어가 빵 터져서 방언 터지듯 술술 솰라솰라 할런지. 그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언젠가는 영어로 줄줄 하겠지. 단, 한국에서 영어 시험 성적 향상을 위해서 이곳에 온다면 추천하지 않는다. 한국의 영어 시험 성적 향상을 위한다면 단기 스쿨링 혹은 장기 유학 말고 동네 학원을 등록해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학년과 반별로 매주 바이크데이라 하여 하루 일과 중 자전거를 타는 시간이 있다. 그날은 반드시 헬멧과 운동화를 신고 가야 한다. 매주 토요일 혹은 일요일에는 선생님이 weekly update라 하여 한주 동안 어떤 내용을 수업했고, 다음 주에는 어떤 수업을 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 준다. 이것은 의무는 아니다. 선생님마다 다르다. 어떤 선생님은 매주 보내 주고, 어떤 선생님은 한 학기 동안 한 번도 보내지 않는 선생님도 있다. 

seesaw라는 어플에 담임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찍은 사진을 올려 주거나 수업 시 진행한 과제물을 올려 주기도 하고, 수업 내용을 올려 주기도 한다. year2 때 담임 선생님은 수업 중인 나의 딸 사진을 찍어 자주 올려 주었다. 영어가 안 되는 자녀가 교실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이 많을 외국인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줬었다.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실험을 하고, 친구들과 모여 웃거나 심각한 표정의 딸의 얼굴들을 많이도 찍어 주었다. 얼마나 고맙던지. 그때는 유학생이니까 해주는 줄 알았으나, 오 마이갓! 지금 선생님은 아.................................................... 그렇다. 그렇다. 


<선생님 복이 올해는 폭망이로세>


아니라고 믿고 싶다. 아침에 만나는 현재 반의 선생님은 친절하다. 미소가 이쁜 선생님이다. 원래 외국인 마인드라 그런 거겠지.


한국의 학교와는 다르게 이곳의 학교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있다. 아이들을 위한 행사.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year2 term3에 했었던 "디스코 파티" 행사였다. 학년별로 시간이 정해져 있어 그 시간에 맞춰 가면 된다. 나의 딸을 교실에 데려다준 후, 디스코 파티 행사장 꾸미기 봉사자를 신청한 나의 남편과 나는 파티가 예정된 장소로 향했다. 학교의 Hall에서 파티장 꾸미기를 진행하였는데, 직접 가서 보니 유학생 부모는 나와 나의 남편 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백인 엄마들 뿐이라니. 그 틈에서 어색해하는 우리에게 일거리를 나눠 주고 이야기를 걸어준 엄마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날 나의 남편은 행사장 안의 바위 벽을 꾸미기를 했는데, 안타깝게 사진을 찍지 못했다. 평생 공부만 했던 남편은 의사 가운을 벗어던지고 학무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종이 바위를 만드는 남편이 무척 자랑스러웠다. 얼마나 열심히 종이를 뜯고 구겨 바위를 만들던지. 칭찬해 남편!


하교 후 5시부터 6시까지 한 시간가량 아이들끼리 신나게 디스코 파티를 마치고 선생님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그때 나의 딸이 이런 말을 했다.


<엄마! 여기는 천국이야>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내가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 지금 나는 행복과 함께 보통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 있을 때 학원은 태권도만 갔으나 집에서는 틈틈이 서점에서 사 온 수학책으로 공부를 했었다. 수학 공부를 시키려는 자와 수학 공부를 하지 않으려는 자의 창과 방패의 팽팽한 싸움! 싸움의 승리는 언제나 엄마였다. 하지만 그렇게 40분가량 공부를 하고 나면 오늘 해야 하는 3장을 풀었을지언정 마음은 불편했다. 그래도 해야 하는 공부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거다. 그렇지만 같은 공부를 조금은 다르게 즐겁게 배울 수는 없을까? 지금은 하교 후, 집에서 30분씩 수학 공부를 하고 있다. 매일은 못하고 일주일에 3회 정도는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에서와 달리 지금은 나의 딸 스스로 수학 책을 꺼내와서 공부를 하자고 한다. 물론 하기 싫을 때는 엄마에게 와서 당당하게 말한다. "엄마. 오늘은 나 하기 싫어. 오늘은 쉴게. 내일 4장 할게. mum OK?"그러면 나는 "OK. Promise." 학교에 다니는 반 친구들 대부분 수학 공부를 집에서 하지 않으니까 나도 부담이 없다. 나도 쫓기는 마음이 들지 않으니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겨난다. 


약속은 지킬 수 있게 응원하고, 힘들다고 이야기를 한다면 그 마음을 들어주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게 마음의 힘을 길러 줄 수 있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 유학생으로서 겪어야 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반듯이 존재한다. 선생님의 배려 부족으로 오는 어려움, 백인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의 얼굴이 흙빛이라고 슬퍼하는 일, 영어의 벽으로  친구들과 원활하게 소통이 안되어 답답한 일, 학교 문제로 선생님과 이야기해야 할 때 나의 영어실력이 원망스럽다거나 등등. 


그렇지만  나의 딸이 후회는 없단다. 살 수 있다면 조랑말 한 마리와 함께 이곳에서 살고 싶단다.


<엄마! 내가 또 말하지만 여기는 천국이야! 이제 말도 한 마리 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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