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의 일이다. 나의 집은 잔디를 주인이 깎아 준다. 계약할 때 잔디를 못 깎는데 어떻게 관리를 하면 될까? 물었었다. 그때 주인이 흔쾌히 자기가 해주겠단다. 잔디가 자라서 깎아야 할 때 문자를 하면 자기가 시간 될 때 지나가다 들려서 해준다고 했다. 그날도 그랬다. 고양이 집을 사고 집으로 오면서 문자를 했다.
"저기, 잔디가 많이 자랐어. 시간 될 때 들려줘. 고마워"
그날 저녁에 집으로 들려서 깎는다는 연락이 왔다. 4시 20분쯤 주인이 문을 두드렸다. 그래서 문을 여니까 주인과 함께 그 옆에 이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또 신나게 말을 했다.
"아니, 이 고양이가 매일 와. 이 사진들 좀 봐봐. 네가 집안에는 안된다 해서 마당에 사료랑 물을 뒀어. 너도 알다시피 며칠 계속 비가 왔잖아. 비가 오는데도 마당에 있었어. 그래서 내가 비 오는 날 문을 못 열어 줘서 너무 미안해서 아까 오전에 고양이 집을 하나 샀어. 저기 테이블 옆에 뒀는데. 괜찮을까?"
그 이야기를 하는 중에 고양이는 집으로 슬쩍 들어왔다. 내가 고양이를 내보내려고 하자 주인이 갑자기 말리네? 뭐임? 갑자기 주인이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아. 이 고양이는 이름이 머피야. 얘는 이 집을 좋아하지. 나도 알아. 이 고양이라면 그냥 집에 들여보내줘. 가끔 발톱을 꺼내기는 하지만 대부분 혼자 여유롭게 자다가 시간 나면 자기 집에도 가끔 가. 그러니까 집에 이 고양이가 함께 지내도 괜찮아. 저 고양이 집 필요 없는데. 괜한 돈을 쓰게 했네? 미안해."
고양이가 함께 있어도 된다고라? 좋기는 한데. 한 가지 걱정이 들었다. 고양이가 여기저기 떠돌고, 풀밭에도 뒹굴도 바닥에도 누워있는데 저 빡빡한 털들 사이에 이, 벼룩, 개미, 거미 등은 없을까? 당연히 있을 텐데. 왜냐면 내가 가끔 털 사이로 삐죽 보이는 거미들을 잡아 주기 때문이다. 보이면 때려잡는다. 나는 곤충이 무서워. 어쨌든 집주인이 잔디를 깎아 주러 왔던 그날 4시 30분 이후로 지금까지 집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름: 머피
성별: 남
나이: 3~4년
가족 유무: 함께 지내는 원래 가족은 있다.
잔디를 깎고 주인은 돌아갔으나, 저 고양이는 집안에서 지내고 있다. 언제쯤 집에 가니? 안 보여서 찾아봤더니 우리 집의 캣도어로 나갔나 보다. 캣도어를 잠가놨더니 30분 정도 있었을까? 캣도어를 부술 기세로 긁어 데고 있더라. 그래서 이제는 캣도어도 열어 놨다.
<언제든 너희 집에 갔다 오렴. 너희 가족도 널 기다리겠지.>
잠깐 동안의 외출을 제외하곤 대부분을 잠을 자며 지낸다. 놀아 주려 해도 소용이 없다. 우리 집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끈놀이도 머피는 시큰둥하다. 그냥 눈만 떠서 잠시 쳐다만 볼 뿐 이내 눈을 감아 버린다.
<젊은 애가 왜 그러냐? 생기가 읍써>
나의 딸이 가장 아끼는 플레이 텐트다. 딸이 돌아 올 시간이 다 되어 가서 머피를 꺼내 주려 했는데. 나를 무네? 손가락을 살짝 물려서 포기하고 딸을 데리러 학교에 갔다 왔다. 집에 돌아온 나의 딸은 집안의 자기가 아끼는 텐트 안에서 자고 있는 고양이를 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는 나의 딸이 화났나?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그동안 고양이가 밖에서 비가 오나 해가 쨍쨍하나 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는데 집안에 있으니까 자기는 행복하다고 했다. 고양이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오늘은 맘 편하게 신비아파트 만화책을 볼 수 있겠단다. 그러면서 텐트는 제일 좋아하지만 물건일 뿐이라며 텐트를 고양이가 편히 잘 수 있는 공간으로 이용되니까 고양이와 자기 사이에 공통점이 생겼다며 좋단다.
<엄마! 나도 고양이도 공통점이 있어! 우리 둘 다 유니콘 플레이 텐트를 좋아 한단 거야! 그거면 됐어!>
그렇게 고양이 옆에서 떠들고 있으니까 고양이가 슬며시 일어나 움직이더니 나의 딸을 따라다녔다.
나의 딸이 "고양아"라고 부르니 그 앞에 앉아 있던 머피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의 딸 눈을 바라 보았다. "둘이 참 신기한 조합이야. 알 수 없는 끌림이 있나 봐."라고 내가 중얼거리자 나의 딸이
"엄마! 고양이도 알아보는 거야. 고양이를 좋아하는 나를 말이야. 좋아하는 건 숨길 수 없거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아마도 나의 딸은 뉴질랜드의 집 주변에서 만난 갈매기, 오리, 고양이, 강아지, 이웃이 키우는 토끼 등을 만나며 한 뼘 더 생각 주머니가 커졌나 보다. 학교 마치고 오면 테이블에 앉아 과일을 먹다가 집 앞을 지나가는 창문너머의 이웃을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든다. 그러면 창문 너머의 사람들도 웃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느끼며 나의 딸은 조금 더 성숙한 어린이가 되어 가는 중이다. 지나가다 마주치는 누구와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비록 어수룩한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어린 외국인이 이야기를 해도 기꺼이 가던 길을 멈추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웃, 그 말을 이해하고 대화를 함께 이어가는 이웃, 헤어질 때 주로 이 시간에 강아지와 산책을 나오니 자주 만나 또 이야기하자는 이웃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인연들이 나의 딸의 삶을 풍요롭게 해 준다. 게다가 이제는 고양이까지 집안에서 함께 생활을 하니 나의 딸은 얼마나 행복할까?
같은 날 같아 보이겠지만 다른 날 찍은 고양이의 사진이다. 가끔은 일어나 창가에 앉아 창밖을 쳐다보기도 한다.
어제 누가 문을 쾅쾅 두드렸다. 집에 찾아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지? 살짝 놀랐다. 나가서 문을 열어 보니 고양이 주인이더라. 내가 살고 있는 집주인과 안부 전화를 하다 자기 집 고양이가 자기가 렌트 준 집에 한국인과 함께 지낸다고 들었다고 찾으러 왔다고 했다. 며칠간 안 보이니까 찾으러 온 거겠지? 어쨌든 그 주인이 이름과 나이와 성별을 알려 주었다. 주인이 아무리 가자해도 꿈쩍을 안 한다. 주인이 츄르를 가져왔으나 반응이 없다. 주인이 억지로 안으려 하자 주인을 무네?
성깔이 보통이 아니다.
"저기 미안한데 내가 너희 집에 있는 머피 사진 좀 찍어도 될까? 사진 찍고 나는 가볼게. 머피가 여기를 사랑해. 혹시 머피가 계속 있는 게 싫으면 물을 부어. 그러면 놀라서 나갈 거라고 믿어."
그러더니 사진 몇 컷을 찍고 돌아가 버렸다. 주인이 와도 자고, 주인이 가도 잔다. 가끔 일어나 물과 밥을 먹고 자세를 바꾸기도 하고 집안 곳곳을 천천히 움직이며 돌아다닌다.
딸과 산책을 다녀왔다. 고양이가 다시 자기 집으로 갔겠지 생각했는데 나의 딸이 다급히 불렀다. 얼른 가보니 이 고양이가 이렇게 편안하게 누워 있다.
이쯤 되면 반은 나의 집에 함께 생활하는 식구다. 반쯤은 나의 고양이다. 하교 후에는 나의 딸은 고양이와 논다. 자는 고양이를 지켜보거나, 사진을 찍거나, 정수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러다 고양이에게 긁히면 연고를 바르고 다시 등을 쓰다듬어 준다. 나의 딸은 그저 고양이가 함께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가 보다. 그런 딸을 보고 있자니 행복이 별거 있어? 집주인도 괜찮다고 하니 일단 고양이가 자유롭게 다니게 캣 도어를 그냥 계속 열어 두지 뭐. 이런 생각이 슬그머니 든다.
오늘 아침 일어나 보니 고양이가 안보였다. 집안을 둘러봐도 보이질 않았다. 캣도어로 나갔나 보다 생각하고 부엌 커튼을 여니 집 밖에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