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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아오라 Mar 17. 2024

다름을 인정하는 거야.

달라 달라.

뉴질랜드에서는 주말을 어떻게 보낼까? 오클랜드는 잘 모르겠다. 타우랑가에 사는 나의 가족은 주말은 보통날이다. 특별할 것도 없고, 유난스러운 것도 없고, 시끌시끌 왁자지껄 하지도 않다. 그저 평범하고 조용한 날의 연속이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맞이한 첫 주말이 떠오른다. 한국과는 다른 추위에 놀란 나의 남편과 나는 패딩을 장만했었다. 첫 주말엔 학교와 동네 탐방에 나섰었다. 학교 운동장은 한국의 분위기와 다르다. 잔디가 깔려 있고, 차량은 학교 안으로 들어 올 수없다. 타우랑가의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작년에 겪었던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의 나의 딸이 다니던 학교는 황폐한 흙바람에 눈이 매서웠고, 1학년 겨울부터 공사판이 시작되어 놀이터를 포함한 운동장사용이 불가능했다.

게다가 하교 시간에 외부 급식차가 컨테이너 교실 정문을 떡 막고 서있었다. 문신을 한 모습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몇몇 분들의 흡연하는 모습, 한쪽 팔을 다 덮고 있는 문신들, 욕설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진상 학부모 소리를 들을까 봐 몇 번은 그냥 넘어갔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아이들이 침착하게 걸어 나오면서


"아? 또 앞에 급식차가 급식 실어가려고 트럭 뒷문을 활짝 열어 놓고 있네. 내가 지금 와다닥 계단을 뛰어내려가다 넘어지면 내 신체부위 어딘가 다칠 수 있으니 계단 옆에 마련되어 있는 휠체어는 다닐 수 없는 폭이지만 어쨌든 구색이 맞춰진 저 쪽으로 돌아서 내려가야지?"


이렇게 생각하는 아이가 도대체 몇이나 있을까? 나는 한동안 하교 시간보다 30~40분 일찍 학교에서 기다렸다. 그날도 변함없는 급식차의 주차 행태를 보고 기분이 상한 채로 나의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어떤 아이가 와다다 계단을 뛰어내려오다 넘어졌다. 하마터면 그 트럭의 문에 머리를 쳐박을 뻔했지 뭔가. 순간 화가 났다. 가끔 교장 선생님이나 교감 선생님이 정문에서 아이들의 등교를 봐주시긴 했는데, 정작 하교할 때 아이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관리는 왜 소홀하신가?

컨테이너 모듈 교실로 들어가는 출입문은 하나다. 앞, 뒤로 있으나 뒷문에는 폐자제와 건설자재 등이 있어 위험하다. 뒷문을 왜 열어 놨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암묵적으로 앞문으로만 다니게 되어 있는데 그 하나뿐인 앞문을 트럭이 미리 뒷문을 열고 계단에 바짝 붙어 열어 놓고 아저씨는 휴대폰 삼매경이면 학교 관계자는 차를 다른 곳에 대라고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나는 원래 잘 나서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날은 학교를 관리하시는 분에게 이야기를 했다.


"차가 너무 바짝 붙어 있어요. 차를 옆으로 좀 다시 주차해달라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나의 물음에 경비 아저씨는


"아니, 지금 공사 중이라 외부에서 급식을 받거든요. 그거 수거하러 오신 분들이에요."

 

 라고 대답을 하셨다. 그걸 누가 모르나. 내가 말한 것은 그 내용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순간 화가 났다.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에 저렇게  트럭이 문을 열고 정문 입구를 막다시피 해서 주차를 하면 어떻게 해요. 급식 수거 지금 당장 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급식 수거는 조금 더 있다가 하는데 지금 저 트럭은 하교 시간 30분 전부터 있어요. 제가 지금 저 트럭이 언제까지 저렇게 있나 보려고 매일 30분씩 일찍 와서 보고 있어요. 급식 수거가 중요하신 건 알겠는데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고, 당장 수거 하시는 것도 아니잖아요. 게다가 저기 어린 남자애가 넘어졌었다고요. 차를 멀리 대라는 게 아니라 입구를 막고 있으니 그 옆을 비켜서 대면 대잖아요. 지금 공사판이라 아이들 걸어 다니라고 학교 정문에서 저기 컨테이너 앞까지 운동장 바닥에 등산로 매트 같은 거 깔아 놓으신 거 아니에요? 근데 지금 저 차는 어디 위에 있는 거예요? 모듈 정문도 막고, 아이들 걸어 다니라고 운동장에 깔아 놓은 매트 위에다 차를 대고 있잖아요."


경비아저씨는 쓰윽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른 학부모들이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 셨는지 갑자기 자기가 이야기를 해보겠다고 하셨다. 주위에 다른 학부모들도 한 마디씩 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나오는 시간에 욕설이 난무했다. 초등학교에서 저런 볼썽사나운 일도 생기는구나. 아이들이 하교하며 들었을 저 욕설들은 어떻게 기억에 남게 될까?

불쾌한 기억과는 달리 타우랑가의 학교는 평화로웠다. 그날의 기억에 대해 남편과 아쉬운 생각을 이야기했다.


나는 남편에게


"우리나라 학교에도 이렇게 잔디 좀 깔고 커다란 텃밭을 만들어서 아이들이 밭을 가꾸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했더니 갑자기 남편이 깔깔 웃었다.


남편이 하는 말이


" 우리나라에 있는 학교 운동장을 누가 얼마나 쓴다고? 기껏해야 쉬는 시간에나 쓰지. 솔직히 체육시간에 애들이 운동해? 날이 더우면 덥다고 엄마들이 실내 강당에서 하면 안 되냐 하고, 추우면 춥다고 실내 강당 이야기 하는데. 또 학년이 더 올라가 봐. 체육시간을 자습시간으로 바꿔서 아이들이 한 줄이라도 더 외우고 더 읽게 해 주면 안 되냐고 할 건데. 운동장에 다가 왜 생돈을 써."


오우. 나의 남편이 그냥 뼈를 때려 버린다. 뼈를 맞은 나는 더 이상 한국 학교와 비교하는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와는 다른 교육 시스템이니까 다름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지금은 뉴질랜드에 있으니 뉴질랜드 교육을 최대한 즐기며 생활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한국 교육 시스템에 맞게 생활하면 될 것이다.


<그래. 뉴질랜드 학교에서 즐겁게 생활하자!>

주말에도 학교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우리는 준비해 간 연을 날렸다. 사실은 연 날리기를 하자는 나의 말에 딸은 금세 시무룩해져서 하기 싫다고 했다. 연 날렸다가 속상해지기 싫다는 것이다. 겨우 설득해서 연을 들고 나왔는데 유난히 바람이 안부네? 나의 딸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연을 들고 뛰기를 몇 번 반복했다. 한 번만 더 해보고 놀이터 가자 했는데 바람이 분다? 그때부터 신나게 연을 들고 새파란 하늘 높이 연을 날렸다. 나의 딸이


"엄마. 누가 드론이냐 오해하면 어쩌지? 그만할까?"


남편이


"괜찮아. 드론이냐 묻는 사람은 없어. 걱정하지 마."라고 대답해 줬다.


한국에서 아파트 단지 안의 공원에서 연을 날린 적이 있다. 그때 어떤 아주머니가 드론이냐고 드론을 아파트에서 날리는 건 범죄라는 말을 하셨다.


<아주머니. 연이에요. 보세요. 저희 가족은 드론도 없어요.>


아주머니는 지지 않고 대답하셨다.


<연에 카메라 단거 아니죠?>


어이없는 상황이었으나 어린 딸이 듣고 있어서 화를 낼 수 없었다. 하늘에 신나게 연을 날리던 나의 딸은 금세 시무룩해졌고, 그날의 연날리기는 아주머니에게 카메라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으로 끝이 났다. 신나게 돌아갔다가 기분이 개같이..................................................


나의 딸은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어려서 기억 못 할 줄 알았는데.


<아이들의 기억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몇 번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단 것을 느끼고는 그때부터는 신나게 연을 날렸다. 새파란 하늘을 쳐다보는 나의 딸은 행복했다. 신나게 잔디 깔린 운동장을 맨발로 뛰어다니며 연을 날렸다. 나도 신발을 벗고 발바닥으로 물기 머금은 잔디를 느낄 수 있었다. 촉촉하고 찹찹한 느낌. 싱그러웠다.

연을 날리고 나의 딸이 친구들과 먹는 꽃이 있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 돌아다니며 꽃을 뜯어먹는다고 했다. 학교에서 키우는 식물들이 있는 곳으로 가니 주황색 빛의 꽃이 있었다.

"친구들이 이거 먹어? 먹어도 된데?"라고 내가 묻자 딸은 "응. 다 먹어." 별일 아니라는 듯 대답하며 꽃을 뜯어먹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키위 엄마들도 꽃의 식용에 관해서는 모르는 눈치였다.


"애들이 탈은 안나던데. 알레르기만 없으면 뭐 어때. 괜찮아."


키위 엄마들은 대수롭지 않다며 대답했다. 맞다. 내가 있는 곳은 뉴질랜드다.

뉴질랜드의 학교는 경쟁보다는 자유로운 토론과 사고를 중점으로 협동, 배려를 배우는 학교이다. 탐구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정답을 찾아가는 교육. 지난번 버스에서 만난 아이들처럼 개념 없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순하고 순진한 편이다.

뉴질랜드에서 경쟁이 아닌 교육을 받고 있는 나의 딸은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엄마. 내가 영어를 잘 못하잖아. 그래도 놀거나 학교에서 공부를 할 때 이곳이 마음이 편해. 그런데 한국어처럼 솰라솰라 이야기를 못하니까 한국이 그립긴 해. 하지만 학교와 친구는 여기가 더 좋아. 내가 영어를 못해도 친구들은 내 말을 들어줘. 한국에서는 내가 한국어로 이야기해도 친구들은 자기들 얘기만 하지 내 말은 안 듣거든."


나의 딸은 뉴질랜드 학교를 다니며 몸과 마음, 정신이 건강해졌다. 나의 가족은 그것만으로도 대 만족이다. 살다 보면 속상한 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상한 놈, 좋은 놈, 미친놈 다 섞여 사니까. 한국이라고 좋은 놈만 있는 게 아니고, 뉴질랜드라 해서 아시아 혐오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좋지 않은 일을 겪었을 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넘기는가가 중요하다. 지금 나의 딸은 안 좋은 일, 기분 나쁜 일을 겪어도 예전보다 감정의 소모가 덜 하다. 나의 딸은 한국의 학업 중시 학교 시스템과 선행학습 학원에서 벗어나, 뉴질랜드의 자유롭게 탐구하고 토론하는 교육 과정으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나의 딸이 언제나 행복하기를. 나의 딸은 한국으로 돌아가도 뉴질랜드에서 느꼈던 경험들은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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