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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Jun 06. 2024

마지막 회-인간의 진화

  벚꽃이 폈다고 학생들과 선생들이 사진을 찍던 늙은 벚나무에는 어느새 버찌가 까맣게 익어가고, 연한 잎새는 점점이 허공을 채우며 짙어진다. 꽃이 떨어진 자리에 사람의 발걸음이 끊기자 무성히 풀이 자란다. 이런 조용한 변화가 무릇 가슴 저미는 오후, 한줄기 돌개바람이 지나가고, 교정으로 경찰차 한 대가 들어온다. 수업을 받던 아이들이 창문으로 다닥다닥 붙어서 불구경을 하듯 밖을 바라본다.


  쌤, 우리 학교에 무슨 일 생겼나 봐요.


  수업 중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려가 경찰차를 바라본다.


  다들 자리에 앉아. 괜히 소란 피우지 말고, 수업하자.


  학교로 들어온 경찰차가 아이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수업이 끝나고 나오니 경찰차는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자율시간에 연구부장 선생에게 시험지 원안을 제출하기 위해 교무실을 찾았다. 교무실이 평소답지 않게 휑하다. 교무 부장 혼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교무 부장 선생님, 무슨 일 있어요? 선생님들 다 어디 가시고.


  큰일 났습니다. 체육 선생님, 경찰서로 가고, 교감 선생님 지금 대책 회의 중이세요.


  무슨 일인데요?


  민철이 그놈이 체육 선생님을 신고했대요. 민철이가 학교 주변에서 담배 피우다가 걸려서 실랑이 벌이다가 체육 선생님께서 애를 한 대 친 모양이에요. 자세한 건 아직 모르겠고요. 좀 전에 교감 선생님 통해서 들었어요. 민철이는 행실이 좀 안 좋은 학생이잖아요. 담배 걸린 것도 그게 어디 한두 번인가요.


  아! 큰일이네요, 정말.


  민철이 그놈은 평소에도 문제가 많은 학생인데, 참! 수업 시간에 제대로 앉아 있는 적이 없고, 선생님들이 걔 때문에 얼마나 곤욕을 치르는 데요. 체육 선생님이 재수 없게 걸려든 것 같아요. 젊은 혈기에 참지 못하고 그만…….


  민철이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에요?


  할머니랑 살잖아요. 이혼 가정이에요. 아버지가 타지에서 일하시고, 집에는 통 안 와보는 모양이에요.


  체육 선생과 민철이 사이에 발생한 폭행 사건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교실에 있는 학생들에게까지 닿은 모양이었다. 당장 문제는 어떤 조치가 있을 때까지 체육 선생과 민철이 수업 시간에 마주쳐야 한다는 사실이다. 학생 부장을 맡고 있는 체육 선생은 평소 학생 계도에 열심이었다. 나이에 비해 다소 엄한 모습을 보여서 보수적인 인상을 주기도 했다. 체육과 선생은 의례 그런가 보다 생각했는데, 막상 일이 터지고 보니 아이들이 평소 체육 선생님이 무섭다고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더위와 함께 불어닥친 소요가 교정을 술렁이게 한다.


  월요일 오전 교무 회의 시간 다시 체육 선생과 민철의 사건이 거론된다. 교감이 회의에 앞서 선생들에게 당부의 말씀이 있다며 입을 연다.


  선생님들, 제발 아이들 대할 때 두 손은 뒤로 꽁꽁 묶은 상태로 대하시길 바랍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요즘 교내에서 교사 폭행 사건에 휘말리면 빼도 박도 못합니다. 아무리 학생들이 잘못한다고 하더라도 손을 대면 안 된다는 거 다시 한번 주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체육 선생은 경찰에서 조사를 받고 나온 후 특별 휴가에 연가를 몰아서 신청하고 자리를 비웠다. 어떤 조치가 있기까지 체육 선생도 민철과 대면하며 수업하기는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교감은 체육 선생의 등을 두드리며 위로했지만, 그의 과오를 맨 처음 도마 위로 올려놓는다. 회의가 끝나고 선생들도 할 말이 많은 것 같다.


  민철이 이놈 교실에서 애들이랑 장난치고 소리 지르고 완전 제정신이 아닌 놈 같아요. 저 때문에 선생이 곤란해졌으면 자중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완전 또라이에요.


  회의실을 나와 복도를 걸으며 수학 선생이 말한다.


  그 정도 생각 있는 놈이면 애초에 신고를 안 했겠죠. 학교 주변에서 담배도 안 피우고요.


  교무 부장이 말한다.


  페이스북에 시내로 놀러 가서 찍은 사진이랑 노래방 사진 올리고 그래요. 저 때문에 선생이 저 지경이 됐는데도, 양심도 없는 놈입니다.


  3학년 부장 선생이다.


  민철이가 어떤 학생인지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교사들이 이런 문제아 때문에 얼마나 애를 먹고 있는지 탄원서를 써서 알려야 해요. 제가 메신저로 탄원서 독려 메시지 올릴게요.


  교무 부장이 서둘러 교무실로 들어간다. 잠시 후 메신저에 전체 공지 하나가 올라온다.


  지금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체육 선생님을 위해 탄원서를 작성해서 힘을 보태주었으면 합니다. 이번 주 금요일까지 탄원서를 작성하여 교무실로 가져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탄원서는 꼭 자필로 써 주세요.


  글 쓰는 거 자신 없는데, 국어 선생님께서 먼저 써서 좀 보여주시면 안 될까요?


  메신저를 확인한 1학년 부장 선생이 말한다.


  저도 탄원서를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어서…….


  너는 탄원서를 쓸지 말지도 아직 결정하지 않은 상태다. 부장 선생이 말을 꺼내는 바람에 1학년 실에 있는 선생들이 이구동성으로 재촉하기 시작한다. 뭔가를 쓸 일이 생기면 괜히 국어 선생을 괴롭게 한다.


  뭘, 빼고 그래요. 국어 선생님이야 그냥 끄적여도 우리랑은 다르겠죠. 시원하게 메신저에 예시로 올려줘 봐요.


  처음엔 그저 농담처럼 시작한 말인 줄 알았는데, 여러 입이 보태지면서 안 쓰면 안 될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다.


  제가, 수업이 있어서…….


  너는 수업 종이 울리지도 않았는데 서둘러 자리를 뜬다. 1학년 4반 은솔이 있는 반 국어 시간이다.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4반 수업을 들어갈 때면 은연중에 은솔이가 있는 반이란 걸 떠올리게 된다.


  지난 시간에 예고했듯이 오늘은 수행평가하는 날이니까 조별로 앉아 볼까.


  아이들은 익숙한 친구들끼리 조를 만들고 앉는다. 게 중엔 조에 끼지 못하고 혼자 남는 아이들도 있다.


  지금 친한 친구들끼리 앉은 거야?


  네!


  조에 앉은 아이들이 대답한다.


  이것도 평가인데, 이렇게 앉으면 너무 편향적이야. 조별 구성원이 비슷한 수준으로 구성되어야 공정한 평가가 되지 않겠니! 이번엔 선생님이 조를 짜 줘도 될까?


  네, 좋아요. 차라리 선생님께서 짜주세요.


  의외로 아이들은 스스로 조를 형성하는 것에 피로감을 느낀다. 말이 자율이지, 선생이 따돌림과 편 가르기를 방임하는 교실이 되어버리기 마련이다. 조별 수행 평가는 과목마다 있기 때문에 이런 식의 조 짜기는 학생들에게 적지 않은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너는 평소 수업 참여도와 태도, 성비 등을 고려해 조를 편성해 준다.


  자, 자기가 속한 조가 불만인 학생 없어?


  좋아요, 선생님. 이대로 진행해요.


  그럼, 무임승차하는 학생 없도록 모두 역할을 맡아서 진행하도록 해. 지금부터 30분 동안 역할 정해서 과제 작성하고, 10분 동안 발표할 거야. 참여자들 태도는 선생님이 돌면서 평가할 테니까 가만히 있으면 안 돼!


  적어도 너의 수업에서만큼은 소외되는 아이들을 보호해 주려고 한다. 은솔도 네가 지정해 준 조에서 수행 평가에 참여하고 있다. 누군가를 선택하고 제외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수업에선 은솔 같은 아이들도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방과 후 수업까지 마치고 늦게 집으로 돌아와 보니 먼저 온 남편이 저녁을 차려 놓았다.


  음, 찌개 냄새 좋다. 잘 먹을게.


  양아는 남편이 서너 번 부른 후 제 방에서 나와 밥을 먹는다. 식사 후 남편과 둘이 남은 식탁에서 루이보스 차를 마신다.


  여보, 우리 학교에 일이 좀 생겼는데.


  무슨 일?


  선생이 학생을 때려서, 학생이 경찰에 신고한 거야. 선생은 경찰에서 조사받고 지금은 휴가 쓰고 학교엔 안 나와.


  큰일이구나.


  그런데 선생들이 탄원서를 쓰자고 그래. 이번 주 금요일까지 작성해서 제출하기로 했어.


  폭행 사건은 소용없어.


  안 그래도 교감이 나 불러서 자기한테 좀 물어보라고 그러더라. 법률 자문 공단에서 일하는 거 알고 계시거든.


  신고한 학생은 선생한테 뭐 잘못한 거 없어?


  욕설이 나간 모양이더라. 뭐라고 한 건지 정확히는 모르겠어.


  그러면 폭행한 선생 책임이야. 정직을 피하기 어려울 거야. 감봉도 각오해야 하고. 정당방위도 아니고. 이런 경우 탄원서는 의미 없어. 당신은 탄원서 작성한 거야?


  아니, 쓰지 않을 생각이야. 처음엔 너도나도 쓴다고 하니까, 써야 하나보다 했는데, 이건 선생이 잘못한 거니까.


  어떤 학생인데?


  행실에 문제가 있는 학생이긴 한데, 그렇다고 때려도 되는 건 아니잖아.


  그건 당연하지. 부모들이 가만히 안 있을 텐데. 그쪽 부모는 뭐래?


  모르겠어. 애한테 관심이 없나 봐. 할머니랑만 산데.


  불쌍한 아이구나!


  그러니까. 선생들이 십시일반으로 탄원서 쓴다고 그러는데, 그때부터 애가 불쌍하더라. 마치 일대 다수의 싸움이 된 것 같았어. 선생이니까 올바른 방식으로 가르쳐야지. 이번 건은 그냥 깨끗이 잘못을 인정했으면 좋겠어.      


  탄원서를 제출하기로 한 금요일, 교무 부장이 돌면서 탄원서를 걷는다. 선생들이 모두 냈는지는 모르겠지만, 1학년 실에는 너를 제외한 선생들이 모두 탄원서를 제출한다.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다. 선생들이 자필로 작성한 탄원서를 내밀 때 너만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게 쉽지만은 않다. 교무 부장이 아무 말 없이 탄원서만 가지고 나간다. 선생들도 너의 눈치를 보는지 아무 말이 없다. 너는 민망한 마음에 커피 한 잔을 타서 운동장으로 나간다. 체육 시간인지 아이들끼리 축구를 하고 있다. 본관 뒤쪽에 있는 신관에서 진행되는 공사 소음이 운동장을 가득 메운다. 작년부터 교과교실제를 시범으로 운영하는 혁신학교가 되면서 수억 원의 사업금을 받고 시작된 공사는 해가 바뀌어도 끝나지 않는다. 학생들의 선택 폭을 넓혀주기 위해 시행된 교과교실제는 수학능력 평가라는 입시가 존재하는 한 실효성을 거두기는 힘들어 보인다. 결국, 새로운 변화의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건 학생들이다.


  위이잉! 드륵드르륵 탁탁 탁탁…….


  아이들이 뛰고 있는 운동장에 소음이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교실에서 수업할 때도 들리는 소음이다. 작년에 입학한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공사 소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잔뜩 받아둔 사업금이 모두 소진될 때까지 학교는 끊임없이 떼어 내고 갈아엎을 것이기 때문이다.


  커피를 모두 마시고 학년 실로 들어서자 기사 아저씨가 벽면에 붙은 싱크대 떼어 내고 있다.


  뭐예요? 멀쩡한 싱크대는 왜 떼는 거예요?


  새 걸로 간다고 그러네요. 예산은 넘쳐나고 쓸 데는 없고, 미친 짓이죠. 아무리 그래도 저 멀쩡한걸. 쯧쯧.


  학년 부장이 혀를 찬다.


  이 학교는 과연 무엇을 혁신하려는 걸까. 교사에게 욕설한 학생. 그런 학생을 폭행한 교사. 아무도 사과하지 않는다. 수억 원어치의 공사까지, 학교가 몸살을 앓고 있다.


  양아는 학교 공부 대신 정말 그림에 주력하고 있다. 자신이 가고 싶은 대학도 이미 정한 것 같다. 웹툰과가 있는 학교 중 레진코믹스와 네이버 웹툰 같은 유명 웹툰 시장에 작가를 많이 배출한 학교 몇 군데를 골랐다. 그리고 매년 대학에서 시행하는 공모전에 작품을 내기 위해 열심히 만화를 그린다.


  양아, 그림은 잘되고 있니?


  남편이 묻는다.


  뭐, 그냥 그리고 있어. 주제 그리기라서 아이디어 짜는데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바람에 좀 서둘러야 할 것 같아.


  주제가 뭔데?


   ‘AI를 활용하는 미래 사회’야.


  최신 경향을 반영한 주제구나. 마감은 언제까지야?


  7월 말까지.


  얼마 안 남았네. 방학 전에 보내야겠구나. 가는 데 걸리는 시간도 있으니.


  네가 식탁에 밥과 국을 놓으며 말한다.


  이미 색칠까지 들어가서 그 안에 끝날 것 같아.


  그래, 다 그리면 엄마한테 말하렴. 택배는 엄마가 부쳐 줄 테니.


  양아는 마감 일주일 전에 완성한 그림을 내민다. 밤잠을 설쳐가며 그린 그림이라는 걸 안다.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보면 양아 방의 문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너는 조용히 문을 열고 불을 끄고, 이불을 여며주었다. 지칠 법도 한데, 그림을 그리는 동안에는 힘든 내색이 없다.


  엄마, 그림 구겨지지 않도록 조심해 줘!


  아침에 그림을 건네주면서 신신당부를 하고도 마음에 걸리는지 문자를 남겼다. 아이의 그림을 부치기 전에 사진으로 찍어 둔다. 네 컷 만화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제목 'AI의 쓸모-다윈의 조언'

  1컷 인류의 가장 진화한 모습은 순하고 무해한 인간이란다. 안타까운 건 미개한 인간들에게 시달린 수많은 순둥이들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거야.

  2컷 사실 순둥이들은 수많은 배려와 사랑 속에 탄생하기 때문에 이미 가장 진화된 종으로 태어난 거야. 상상해 봐. 순한 사람들로 구성된 평화롭고 안전한 세상을 말이야.

  3컷 감성 AI의 발달로 공격형 인간을 미리 감지하는 세상이 올 거야. 무례한 인간을 감지하도록 입력된 AI가 세상의 순둥이들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거야.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도 있겠지.

  4컷 공격과 간섭에서 벗어나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순둥이들이 모인 곳에서 찬란한 문명이 발달하는 거지. 그런데 지금은 공격형 인간의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어. 자연의 선택만 기다리면 안 돼. 서둘러야 해! 순둥이들이 사라지는 만큼 인류는 퇴보하는 거야.


  네 컷 만화 속에는 수많은 양아들이 감성 AI의 보호를 받고 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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