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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맹 Dec 05. 2024

무대공포증을 가진 이상한 관종

02. 솔직해지기

7살쯤부터 14살까지 피아노를 쳤다. 한때 내 꿈은 피아니스트였다. 음악을 좋아했냐 묻는다면 사실 그것보다 무대 위에 올라간 스스로의 모습을 동경했다. 또 무대체질이냐 묻는다면 사실 무대울렁증이라 부를 만큼 심각하게 떠는 스타일이었다. 그럼에도 항상 기회가 있으면 망설이지 않고 무대 위로 올랐다. 피아노 콩쿨 대회, 급수 시험, 학원 발표회까지 꾸준히 참여했다. 그만큼 했으면 고쳐질 만도 한데 무대울렁증은 고질병처럼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내가 무대를 포기하느냐 VS 무대공포증이 고쳐지느냐'놓고 끊임없이 싸웠다.


10살->22살, 사진을 개별로 첨부하고 싶은데 원본을 찾지 못했다


중, 고등학교 때도 짬짬이 무대 위로 올랐다. 성악부 활동도 했고 학교축제 때 연극무대 내레이션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한 번도 맡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해 낸 적이 없었다. 항상 떨었고 실수를 했다. 어느 순간부턴 나도 나 스스로에게 외쳤다.


제발 그만해, 멍청아!


하지만 대학생이 되고 자유를 만나면서 다시 무대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이쯤 되면 내 머리가 원하는 건지 몸이 원하는 건지 혹 내 영혼이 원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덜컥 학과축제 때 기타연주를 하면서 노래를 부르겠다고 선언했다. 할 사람이 없다며 부탁하는 선배의 말에 혹해버렸다. 내 입이 방정이다. 그때 내 기타연주 실력은 겨우 하이코드를 배운 직후였다. 한 마디로 왕초보였다. 그때 부른 노래는 박기영의 <시작>.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


그날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무대에 오르기 직전 기타코드가 뒤죽박죽 되어버린 그 순간을. 결국 엉터리 코드에 맞춰 노래만 열심히 부르다 내려왔다. 모두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박수를 쳐주던,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하지만 문예창작과의 특성답게 글을 발표하는 기회는 너무, 너무너무 많았다. 어느 날에는 내가 쓴 글이 뽑혀서 나가서 읽게 되었는데 단상 위에 올라가니 그 글이 내 글이 아닌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교수님, 이거 제 글이 아닌 거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다행인 건 나 같은 성향의 학생이 많이 모여있는 학과라 그런지 교수님이 패닉상태인 나를 발견하고 순간대처를 잘해주셨다. 내 글이 맞았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내려가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그 기억 또한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 되었다.


놀라운 건 그런 내가 소극장 뮤지컬 무대에도 섰다는 사실이다. 그맘때 휴학을 하고 뭘 할지 생각해 봤는데 스펙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무대공포증을 고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상태로 어떻게 사회생활을 해내지? 그런 걱정이 들었다. 덜컥 오디션을 보러 갔다. 준비해 간 건 노래밖에 없었는데 거기서 요구한 건 춤이었다. 나는 못하겠다고 말하는 대신에 손발을 떨면서 게다리춤을 췄다. 훗날 알게 된 극단 선생님이 나를 뽑은 이유는 '그럼에도 도전해서'였다. 마침 그날의 기억을 기록해 놓은 과거글을 발견했다.


...
공연이 끝나고, 그저 수고했다며 나를 안아주던 부모님의 품에서 나는 다시 아기가 되었다. 그동안 잘 참았던 눈물이 새어 나왔다. 이 공연에 참여했던 아이들 중 나만큼 뮤지컬과 안 맞는 사람은 없었을 거다. 그만큼 나에게 이번 도전은 큰 용기였다. 대인기피증을 앓던 시절이 있었고, 사람을 좋아한 만큼 큰 상처를 받기도 했고, 무대에 서고 싶은데 무대울렁증이 심해 교내 심리상담을 받기도 했었다. 이 모든 걸 아는 부모님께서는 마음 편히 공연을 보지 못했을 거고.. 그걸 아는 나는 그저 죄송했다. 그리고 감사했다. 아직 정확한 꿈을 찾지 못했다. 여전히 나는 방황 중이고, 시간은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초조하지 않다. 나는 나를 믿는다.

2014년 어느 날, 블로그 포스팅 일부 발췌



뮤지컬을 끝내고 무대울렁증이 완치되었냐 묻는다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해나가면서 자주 발표를 하다 보니 어느덧 노하우가 생겼다. 발표를 하기 전 "굉장히 떨리네요!!"라고 외친 후 시작하는 방법이었다. 한 마디로 무대울렁증 정공법이었다. 물론 연차가 쌓이면서 외치는 것 대신 점잖게 얘기하는 방법으로 바꾸긴 했다. 그러면 아이스브레이킹도 되고 한결 분위기가 편안해진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정말 서서히 나아지고 있었다.


현재 1인회사를 운영한 지 4년이 넘었다. 첫 프로젝트를 따내던 순간이 아직 생생하다. 발표자료를 만들어서 어느 비영리단체를 찾아갔다. 의지할 곳도, 예전처럼 '떨립니다!'를 외칠 수도 없었다. 3명 남짓한 좁은 회의실에서 자료와 명함을 돌리고 자리에 앉았다. 모두가 내 말 하나하나에 집중을 했다. 말을 버벅거리기도 하고 헛기침도 여러 번 했지만 무사히 발표를 끝냈다. 그곳에서 가장 높은 직위를 가진 분이 말했다. "꼼꼼하게 준비해 오셨네요. 이번 프로젝트 잘 부탁드립니다." 그분이 다른 팀에도 나를 개해주면서 그곳과 3년 정도 함께 일을 했다.


어릴 적 꿈꿔왔던 무대 위에서 멋진 내 모습, 이 정도면 이제 만족해도 되지 않을까. 다음에는 또 어떤 무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원본을 찾지 못한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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