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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맹 Dec 04. 2024

회피하고 싶은 순간

01. 직면하기

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더는 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남편을 통해 충분히 전달했는데 이번 전화는 나에게 왔다. 이른 점심을 먹으려고 앉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도 받지 않고 밥도 먹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던 그날이 떠오르면서 이대로 밥을 먹으면 체할 거 같았다. 전날 먹고 남은 회가 있어서 그걸로 회덮밥을 만들었는데···. 와중에 그게 또 아까워서 회만 쏙쏙 골라먹었다. 양치하러 들어간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는데 스스로가 너무 한심해 보였다. 그깟 전화가 뭐라고, 심지어 나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식어가는 음식이 놓인 식탁에 앉아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뭐라고 말할지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꽉 막힌 명치가 '힘든데 그냥 전화하지 마. 안 되면 남편한테 말해'라며 나를 설득하고 있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라는 말이 가장 두려웠던 두부멘탈인 내가, 강제로 넘어지고 일어나면서 변해가는 이야기. 이번 나의 브런치북 소개내용을 기만하고 싶지 않았다. 신호가 울리고 간호사가 전화를 받았다. 이미 남편과 통화를 했지만 원장님이 나랑도 이야기하길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4시쯤 전화를 도 되겠냐는 물음. 한 판 싸울 기세로 시뮬레이션을 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친절한 간호사의 목소리에 날 선 말이 나오지 않았다.


후, 이미 남편과 대화를 끝낸 걸로 알고 있어서요. 더는 연락 안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얼마나 많은 경우의 수를 상상했는데 내가 온전히 뱉은 말은 저 한 마디뿐이었다. 간호사가 몇 번 더 나를 설득했다. 주치료자인 남편도 아닌 나를 설득하고 있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원장님과 통화를 해봤자 서로 좋은 소리를 나누는 자리는 아닐 거 같았다. 남편에게 했던 것처럼 비협조적인 우리 탓을 하시려나. 아니면 남편을 설득해서 치료는 마저 받으라고 하시려나. 뭐가 되었든 이미 기차는 떠나버렸다. 간호사도 더는 나를 설득하길 포기하고 '일단 알았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 '일단'이란 단어가 주는 불편함 때문에 오후 내내 휴대폰만 울리면 움찔거렸다. 회피하지 않고 부딪쳤지만 남은 건 긴장감, 불편한 마음뿐이었다.


평소였으면 잘 울릴 리 없는 휴대폰인데, 오늘따라 연락이 계속 왔다. 부동산에서 집을 보러 오겠다고 하고 1년 만에 영상편집 외주 문의가 들어왔다. 집을 내놓은 지가 꽤 되어서 어떻게든 팔고 싶었고 영상편집 일도 오랜만에 해보고 싶었다. 팽글팽글, 뇌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 와중에 진동만 울려도 심장이 떨렸다. 결국 두부멘탈이 터져버리고 말았다. 두통약을 찾아 먹고 난방을 최대로 올렸다. 이럴 때마다 나약한 스스로에게 끝도 없이 실망을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결국 병원에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이후 써나갈 브런치글들이 '내가 변해가는 이야기'인데 과연 내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을까? 오랜만에 한없이 작아지는 스스로를 마주해 본다. 최근에 일어난 병원과의 트러블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위해 별별 행동을 다 했다. 안양천 러닝은 물론 반신욕, 글쓰기, 명상하기, 음악감상 등등. 그럼에도 이번 일이 나에게 꽤 충격이었는지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인건지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주치료자인 남편은 파워 긍정인 성격 덕에 하루 만에 훌훌 털고 일어났다. 이럴 땐 배우자가 나와 정반대 성향이라는 사실이 감사하다.


오늘 그 전화를 회피했다면 두고두고 그 순간을 후회하며 지냈겠지. 아마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상상하며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내일의 나는 또 성장한 내가 되어있음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간 다져온 두부멘탈 내공으로 우뚝 일어설 스스로를 상상하며, 오늘도 어김없이 러닝을 하러 나가야겠다.


수고했어, 오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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