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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맹 Dec 03. 2024

오늘, 지금도 흔들리는 중입니다

00. 갑자기 이 주제로 연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 화를 냈다. 병원에서 보인 남편의 태도가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실 원장님에게도 화가 났다. 어느덧 병원을 다닌 지도 4개월이 지났는데 그분은 여전히 남편을 파악하지 못했다. 애당초 비뇨기과도 난임병원도 아닌 이 병원을 택한 이유는 신체 문제 외 심인성 요인까지도 분석하고 있는 꽤 유명한 병원이었기 때문이다. 600만 원이 넘는 거금의 돈도 지불했다. 보험처리도 되지 않는 항목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남편을 설득해 치료를 시작했지만 모든 게 꼬여버렸다. 이러다 아무 문제없던 부부사이도 나빠질 지경이었다. 환불도 필요 없으니 더는 병원에 방문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남편은 당뇨합병증으로 온몸에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야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직 젊은 나이였고 5년간의 노력 끝에 어느 정도 건강이 회복되었다. 해결되지 못한 하나가 성기능 문제였다. 여성불임에 대한 치료후기는 주변에서도 들을 수 있을 만큼 흔했지만 남성불임에 대한 정보는 얻기가 어려웠다. 분명 우리나라의 난임가구 중 남성불임이 원인인 경우가 30%가 넘는다고 들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그 적디적은 정보 속에 선택해서 간 병원이 이곳이었다. 원장님은 처음부터 매우 자신만만했다. 남편 정도면 심한 편도 아니라며 자신만 믿고 따라오라고 했다. 상담만 받으러 간 자리에서 전액을 결제했다. 그렇게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초반에도 불안한 기운은 있었다. 갑작스러운 병원 이전으로 전에 검사했던 자료가 날아가서 재검사를 받기도 했고, 이미 꽤 많은 돈을 결제했음에도 추가 검사, 접종 등으로 비용이 계속해서 발생했다. 특수한 병원이다 보니 하루에 받는 환자의 수가 정해져 있었고 그로 인해 다음 진료를 예약하는 게 몹시 힘들었다. 상담받을 때 이런 요소들을 미리 알려주었다면 각오라도 했을 텐데 먼 길을 오가는 환자 입장에서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아쉬운 우리가 참아야지.


힘든 신체검사도 거뜬히 해낸 남편이 심리상담을 받을 때부터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과거에 내가 심리치료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때도 남편은 정신과에 대해 매우 보수적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남편의 상태는 당뇨 전후로 달라진 건데 상담의 주제가 부모님, 유년시절 같은 이야기다 보니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은 검사결과 호르몬, 전립선 등 불임에 영향을 미치는 건강상의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서는 심인성 요인에 대해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병원과 남편 사이가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각자 하고 싶은 걸 하되 1시간 함께 있기' 이런 과제를 수행하고 나서 느낀 점은 우리부부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준비한 게 아니란 생각이었다. 우리는 대화도 많고 친밀도도 매우 높은 절친 같은 사이에 가까웠다. 매번 갈 때마다 쌓여있는 종이더미에서 과제 안내문을 한 장씩 꺼내주었다. 똑같은 안내문이 몇 십장은 쌓여있었던 거 같다.

 

그래도 믿어보자. 다른 방법이 없잖아.


원장님은 매번 과제를 내줄 때마다 남편에게 내용을 읽어보라고 시켰다. 첫 상담 때도 뭘 읽어보라고 하셨는데 남편의 눈이 아직 다 회복되지 않아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충분히 시력의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다음, 그다음도 작은 종이에 쓰인 글씨를 읽어보라고 말했다. 남편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 매번 설명하는 걸 포기했다. 그리고 점점 침묵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원장님은 그런 남편의 태도를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아마 간절하지 않다고 느꼈던 게 아닐까?


모든 게 엉망이 된 그날도 퇴근하고 1시간 반을 달려 병원까지 갔다. 각자 와서 병원 앞에서 만났는데 남편의 안색이 몹시 안 좋아 보였다. 저혈당이 의심되었고 단백질바를 사서 한 입 먹은 후 진료실로 들어갔다. 원장님은 어김없이 질문을 하고, 글자를 읽어보라 시키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우리를 대했다. 남편은 여느 때보다 더 말을 하지 못했다. 방금 말한 내용을 복기해 보라고 는데 그것 또한 더듬거리며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양측의 눈치를 살피며 남편의 상황에 대해 요목조목 설명했다. 이미 5번 정도 말했던 '눈이 잘 안 보여서 못 읽어요'라는 말도 또 꺼냈다.


여기 오는 부부 중에 가장 부진해요.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시면 치료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돈도 더 쓰셔야 해요.


내 마음을  터트린 마지막 한 마디는 "진짜 이해할 수가 없네."라는 말이었다. 남편의 동공은 이미 풀려있었다. 저혈당이 와서 그렇다고 했는데, 그런 환자 앞에서 완치가 어려운 건 비협조적인 우리 때문이라는 말을 해야만 했을까? 하물며 진짜 비협조적인 환자가 있다 해도 저렇게 말하는 게 의사의 태도가 맞는 걸까? 뭘 먹다 얹힌 것처럼 속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원장님의 실력에 대해 의심하진 않았다. 완치된 환자들의 기록이 담긴 수많은 차트가 책상 한편에 빼곡히 쌓여있었다. 병원도 환자와 궁합이 있다는데 우리랑 잘 안 맞는 곳이겠지, 그렇게 생각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남편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픈 거 숨겨가면서 사회생활은 잘만 하더니 병원에선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 지금 내가 아파서 온 거야? 나만 아등바등하고 있잖아. 이거 보면 미안하지도 않아?


길거리에서 남편에게 모진 말을 쏟아내고 둘 다 빈속으로 다시 지하철에 올랐다. 남편의 상태가 걱정되었지만 그걸 포용할 수 없을 만큼 내 마음이 너덜거렸다. 남편이 환승하는 구간에서 내 어깨를 살포시 안았다. 이게 바로 내가 남편을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나에게 한없이 너그럽고 착한 사람. 눈물을 삼키느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화가 나서 말이 없는 줄 아는 남편은 내 눈치만 보고 있고, 집까지 그렇게 마음을 비우고 또 비웠다.


오빠, 고생했어. 이제 이거 하지 말자.


진료를 2회 차 남겨두고 병원과의 이별을 선택했다. 어차피 연장할 돈도 없었다. 남편이 병원에 전화를 했다. 원장님과 맞지 않는 거 같다고, 문제가 없던 아내와의 관계도 흔들리기 시작하니 더는 병원을 다니지 않겠다고. 그렇게 통보하고 끊었다고 말했다. 솔직한 마음으로 나는 사과를 받고 싶었다. 밤새 계속 생각해 봤지만 우리가 잘못한 건 아픈 죄밖에 없었다. 긴장하고 떨기 시작하면 조리 있게 말을 못 하는 스타일이라 병원에 쌓인 불만을 10가지 정도 작성했다. 남편에게 사과를 받기 위해 다시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어차피 사과 못 받아.


내가 상처받을까 봐 남편이 숨기려 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원장님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왔단다. 아직 한창 치료 중인데 이렇게 그만두면 어떡하냐, 환자분이 치료에 집중하지 못한 건 사실 아니냐, 나도 자존심이 상했다. 이런류의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사실이었다.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을 오랜만에 느꼈다. 끓어오르는 분노 때문에 순간 두통, 요통 몸 곳곳이 아파왔다. 남편이 점점 입을 닫았다는 건 그래, 인정한다. 하지만 그 원인이 환자에게 있다고 말하는 의사가 과연 올바른 의사인가? 적어도 심리치료를 병행하는 병원에서 환자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일을 크게 키워서라도 사과를 받아내고 싶었다. 내가 남편을 어떻게 설득했고,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이 병원에  용기를 낸 건데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때 남편의 한 마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내 분노를 누그러뜨렸다.


사과를 받는 과정까지도 네게 상처가 될 거야. 이제 잊자. 내가 더 열심히 할게.


남편은 나를 너무 잘 안다. 아마 나는 철두철미하게 준비해서 어떻게든 사과, 혹은 그 비슷한 무언가의 말이라도 받아낼 사람이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내 마음은 닳고 또 닳겠지. 요즘 일을 쉬면서 공부를 다시 하고 있다. 멍하니 온라인 강의를 한 귀로 듣고 흘리다 이내 컴퓨터를 껐다. 패딩조끼 하나에 의지해서 안양천으로 나갔다. 곧이어 뛰기 시작했다. 오늘의 선곡은 요즘 수능 위로곡이라는 <나는 반딧불>. 나와 다른 상황이지만 그래도 위로가 될까 싶어 처음 재생해 보는 노래였다. 가사보다 잔잔한 음색에 점점 빠져들었다. 한곡반복을 누르고 달렸다.


비록 3km였지만 달리다 보니 잡념이 사라졌다. 미세먼지 가득한 하늘이었지만 태양만은 또렷이 보였다. 나는 태양처럼 빛나진 못하지만 그 앞에서 결코 주눅들지 않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갓 겪은 나의 분노를 글 하나에 날려버릴 수 있는 어른이 되기도 했다. 오늘 늦더라도 꼭 글을 쓰고 자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켜냈다. 언젠가 나는 소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느 순간 불가능을 깨닫고 나서는 적어도 오뚝이 같은 사람이라도 되길 바랐다. 결혼을 하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을 계속 마주하면서 나는 오뚝이도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주 길게 넘어져 있을 때도 있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일어날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혼자 일어나는 방법을 찾아갔다. 아직도 자주, 꾸준히 흔들리지만 말이다. 이번 브런치북은 그간 노력해 온 스스로에게 보내는 박수 정도로 기록에 남기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는 어떤 시간보다 평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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