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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ul 여진 May 23. 2024

사랑, 그게 뭐라고.

사랑, 그게 뭐라고 이리 어렵니, 그리 생각했던 때가 있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그런 생각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금 바뀌었다.

남들이 정의 한 '사랑' 안 해본 지 10년이 넘어서

이런 말을 하기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단순히 '사랑'이라는 키워드에 초점을 맞춰서 보면

나는 열심히 '사랑' 중이다.


일단 나부터 사랑해 보자 시작한 게 어느새 7년쯤 되어 간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부산으로 내려오는 거였고

부산을 내려오면 드라마처럼 촤락~ 하고 변화가 일어날 줄 알았다.


당연하게도 그런 변화가 일어나기도 전에 적응조차 못 했다.

부산에 살았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부산이 낯설었다.

공격적인 말투, 체계화되어 있지 않은 서비스 마인드.


그러고 보니 부산에 살 때도 딱히 느껴 본 적 없던 '정'이나 '사랑'을

왜 나는 당연한 듯 기대하고 내려왔을까.


부산에 다시 내려오기 전까진 혼술 하는 사람들이 이해 가질 않았다.

그런데 내가 혼술에 미쳐 지냈다.

혼자 소주 반 병도 겨우 먹었는데 석 달쯤 지나니 혼자 소주 2병을 마신다.

안주 종류별로 먹고 모아둔 돈을 그렇게 일을 구하러 다니는 동안

몇 달간 혼술 하며 식대로 다 날렸다.


하루 식대가 최소 10만 원, 그 이상 넘어갈 때도 많았다.

아침 점심 저녁을 배달 음식으로 채우고

그러다 밤이 되면 야식으로 술을 시켜 안주를 몇 번이고 시키고

그렇게 나는 나를 사랑하겠다고 내려와 놓곤 나를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망치고 있었다.


대인 기피증 때문에 사람도 잘 못 만나는 데다

애초에 사람에게 다가가는 것도 잘 못하는 내가 부산에 다시 내려와 할 수 있는 거라곤

홀로 집구석에 박혀서 술을 퍼마시는 것 말곤 없는 듯했다.

그렇게 2년쯤 지나서 용기 내서 밴드에 가입을 하고 소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반갑게 맞이해 주고 어느 모임이든 꼭 내가 참석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무리하게 모임에 참여하면서 몸에 병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언니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안달 난 강아지처럼

계속 모임에 나가면서 내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고 병을 얻었다.

몇 달이 지나니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는 소리가 여기저기 나오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물어뜯기 좋아하는 그 단어 '여적여' 나 역시 겪어야 했다.


그곳에서 잠깐 만난 한 살 어린 남자는 지나칠 정도로 거짓말을 일삼았고

당뇨에 여러 합병증까지 있음에도 술 담배를 끊지 못했는데

어리석은 나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날 위해 바뀔 거라 생각했다.

나조차 나를 바꾸지 못하는 주제에 감히 그런 생각을 했다.

당연한 결과로 사귄 것도 아니고 사귀지 않은 것도 아닌 몇 달간의 만남으로 끝이 났고

그 사람과 끝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마녀 사냥이 시작됐다.


너무 억울해서 울며 불며 이 상황을 3자 대면으로 풀게 해 달라 방장에게 요청했으나

내가 탈퇴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결론이 나면서 억울함을 안고 나와야 했다.

나를 사랑하겠노라 마음먹고 부산 와서 술 독에나 빠지고 술 독에 빠진 사람들을 믿고

그런 사람들에게 애정을 갈구했으니 나 자신을 더욱이 경멸하기 좋은 상황이었다.


다시금 마음의 문을 닫고 나를 증오하며 내 인생을 한탄하며

모든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끌어당김의 법칙이고 나발이고 역시 나는 글러 먹었다 생각하면서.

언제나 그랬듯 타인에게 보다 나 자신에게 가혹한 나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우연히 유튜브를 하게 되면서 나를 마주 하게 되었다.

내 목소리가 어떻고, 말투가 어떤 지, 톤이 어떻고 표현을 어떻게 하는지.

악플을 받으면서 낙담했으나 그 덕에 성장했고.

무리한 스케줄로 인해 성대 결절이 생기면서 목소리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지만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목소리가 되었고.

악플로 지적받았던 것 덕분에 발음에 신경 쓰고 억양에 신경 쓰면서

점차 딕션이 좋다, 아나운서 같다는 평을 받으며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2년 반 정도 되었을 때 내 얼굴을 보이며 리딩하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얼굴 보이게 방향을 바꾸느라 구독자가 제법 많이 빠졌지만

물갈이가 된 건지 오히려 바뀐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들로 채워져서

나 역시 말할 때의 표정과 입 모양 등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나를 더 '사랑'하게 된 덕분인지

용기 내서 러닝크루에 들어가게 되면서 난생처음 마라톤 대회도 나가보게 되고

지금은 자원봉사 모임에 나가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같다는 것을 보고 느끼며 지내고 있다.


'사랑' 그게 뭐라고, 40년이 되어서야 나를 좀 사랑하게 되었고

비로소 인간은 누구나 악하지만 그 속에 선함을 채워가며

서로에게 맞는 대화 법으로 소통할 사람들과 교류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랑' 그게 뭐라고 40년이나 걸려서야 하는 법도 주는 법도 얼추 알게 됐는가.

그럼에도 100은 모르겠고, 이제 좀 알 것 같아서 죽기 전엔 100을 알 수나 있을까 싶지만

'사랑' 이거 참 좋은 거더라.


'사랑'이란 거, 나 혼자 해도 좋고

소통이 가능한 사람과 하면 더 좋고, 나누면 배가 되는 거더라.

그래서 앞으론 더 나답게 사랑하고,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사랑을 받아보기도 하면서 제대로 사랑에 빠져 보려 한다.




'사랑' 그게 뭐라고, 이리도 나를 더 멋지게 살아보고 싶게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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