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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Dec 16. 2024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리뷰

성장통을 묵묵히 관조하는 한여름의 열기


    표면적인 상황들만 봐서는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길 수 없다. 인물에 스며들어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본인이 느끼게 되면 비로소 그 어떤 영화보다 섬세하고 생생한, 풋풋한 첫사랑의 간접 체험을 할 수 있다. 게다가 이 영화는 첫사랑의 달콤한 정점만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그 처음과 끝을 다 담고 있다. 설렘과 고뇌, 이별까지 모두.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동성애애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어도 영화를 온전히 즐기기 어려울 거다. 조금 안타깝다. 사회적 잣대와 표면적 껍데기 때문에 이 영화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는 건. 동성애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사랑의 감정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처음 올리버가 등장할 때부터 엘리오가 그를 의식하고 눈여겨보는 느낌이 확 와닿는다. 벌써부터 막 좋아하지는 않지만 관심이 가고 눈길이 가는 그런 호감의 감정.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감정을 직접적인 대사 없이도 전달할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 여름이 조금 더 특별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과 설렘이 나까지도 느껴지는 것이다. 주체가 감독이든 배우든, 셔레이드를 굉장히 잘 활용한 영화인 것 같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나가서 야외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하는 씬에서, 둘은 서로 유대인이라는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둘 사이에 유대감이 생기고, 선글라스를 벗는 엘리오. 마치 마음의 문을 열었다는 무의식적 표시처럼 보인다. 하지만 올리버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고 나중에 보자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일어나는 엘리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한가득. 배구하다가 올리버가 엘리오의 등을 만졌을 때도 앞에선 싫은 척 빼지만 올리버가 가고 나서 들뜬 마음에 폴짝 뛰어가는 모습이 귀엽고 사랑스럽다. 어떤 마음일지 상상해 보면 마찬가지로 나까지 설렌다.

  "그 사람, '나중에 봐'라는 말을 할 때 무례하지 않아요? 거만해 보이고."라는 말을 하는 엘리오. 자기는 올리버한테 관심이 많은데 올리버는 곧잘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다른 친구들도 많고,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자신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생각에 어쩐지 샘이 나서 하는 말이라는 게 느껴져서 마냥 풋풋하다. 어쩐지 김유정 소설 동백꽃에 나오는 점순이가 생각난다. 하지만 올리버가 자신에게 관심이 없으며 심지어는 자신을 싫어한다는 생각은 오해였고, 올리버가 같이 수영하러 가자고 제안하자(역시나 무심한 척 하지만 혼자 있을 때) 너무나도 기뻐하는 엘리오. 욕실에 걸린 수영복의 색깔이 바뀌는 것을 보여주며 그렇게 몇 번의 수영을 통해 둘이 가까워졌음을 알 수 있다.

  댄스파티씬도 압권이다. 올리버랑 키아라랑 바짝 붙어 춤을 추니까 엘리오가 담배를 피우며 지켜보는데, 질투심과 착잡함, 실망감 모든 감정이 레이어드 되어 느껴진다. "Love my way" 노래까지 감성 제대로. 진짜 80년대 한여름 저녁의 이탈리아 소동네 댄스파티에 온 듯한 감성이다. 선곡까지 낭만 한가득.. 한여름 저녁 특유의 공기 내음이 코끝을 지나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엘리오가 올리버에게 혼자 있고 싶을 때 가는 자신만 아는 안식처를 알려주는 행위는 올리버가 엘리오에게 한 아주 중요한 대사, "Call me by your name, and I'll call you by mine."와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이전에는 의도적으로라도 하고 다니지 않았지만, 올리버가 유대인 상징인 다윗의 별 문양 목걸이를 계속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따라서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상대를 자신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상대를 닮아가고 싶어 하는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말과 행동. 둘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렇듯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는 씬들을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영화 내내 거의 반나체로 나오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탄탄하고 굴곡진 몸, 싱그러운 여름날의 풍경, 영화 중간중간 등장하는 미학적이고 관능적인 동상,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서 영화의 주제인 첫사랑을 더욱 부각한다. 풋풋한 첫사랑을 모든 감각을 통해 그려내며, 그야말로 젊음과 청춘을 찬양하는 것 같은 영화였다.


 얼마 전에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새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것도 윌리엄 s. 버로우즈의 소설 퀴어》를 영화화했다지 않나. 학생 때 비트 제너레이션에 관심을 가지며 소설 퀴어를 읽었던 기억과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재밌게 보았던 기억이 뇌리를 스치며 기대감을 한껏 자아냈다. 아직 국내에도 개봉할지는 미지수지만,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신작을 꼭 한국에서 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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