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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Dec 09. 2024

쉬어가기: 단편 리뷰 모음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외 4편의 단편 리뷰들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에이프릴과 소설 나의 미카엘의 한나가 겹쳐 보였다. 둘 다 환상, 꿈, 그리고 이상을 놓지 못하고 무기력함과 공허함, 지루한 일상에 메몰 되고 혼란스러워한다. 이해되지 않는 듯 이해되는 이들을 보며 일상의 권태로움이 얼마나 사람을 미치게 만들 수 있는가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삶에는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와 자극이 필요하다.


영화 불한당


    영화 《불한당의 처음과 끝은 빨간 스포츠카에 탄 재호와 현수가 수미상관을 이룬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재호는 처음에 밝은 화면에서 등장하고, 현수는 어두운 화면으로 마무리된다는 점. 현수의 영향으로 처음으로 믿지 못할 상황에서 사람을 믿는 선택을 한, 구원받은 재호의 화면은 밝게. 그리고 재호의 영향으로 지독한 배신감을 맛본 현수의 화면은 어둡게 대비가 된다. 그 숨 막히는 어둠 속에서 여명의 기운을 느끼며 현수는 과연 무슨 생각을 하며 아침을 맞이했을까. 영화 초반에 총은 죄책감을 덜어주는 살인 도구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하지만 현수는 옅어져 가는 숨결까지 오롯이 느끼며, 저항하지 않고 자신에게 몸을 맡긴 재호를 죽인다. 그렇기 때문에 현수는 죽을 때까지 재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영원토록.


영화 추락의 해부


    2023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추락의 해부.

추락사뿐 아니라 추락한 관계에 대해서도 낱낱이 해부하는 작품. 아들 다니엘의 말처럼 "어떻게"(결과)보다 "왜"(원인)가 중요해 보였다.


영화 싱글맨


    디자이너 톰 포드 감독의 영화 싱글맨. 그래서일까, 영화도 명품 같다. 절제되고 우아한 배우들의 몸짓과 미장센 모두 귀족스럽다. 거기다 슈트핏의 콜린 퍼스도, 댄디한 차림의 니콜라스 홀트도, 마트에서 잠깐 조지(콜린 퍼스)와 마주친 스페인 남자도, 그 외 조연인 여자들과 여자아이 모두 패션모델 느낌이 난다. 시각적인 미학을 한가득 즐길 수 있는 영화.

 줄거리는 간단하다. 애인을 사고로 잃고 자살을 결심한 중년의 동성애자 교수마지막 하루 이야기. 애인을 사고로 잃은 후 삶의 빛을 잃고 단조로운 감정만을 느끼며 사는 조지. 그래서인지 화면의 채도가 낮지만, 잠깐씩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들을 만날 때마다 화면의 톤이 살아나는 것을 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죽음과 늙어감에 관한 통찰이 담겨있으면서 젊음과 새로움에 대한 욕망이 담긴 영화.


영화 아가씨


    항상 봐야지 봐야지 생각만 하다가 드디어 보게 된 영화, 아가씨》.

박찬욱의 대표작들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 씨》, 박쥐, 헤어질 결심등 모두 보고 나면 감정적 잔여물이 한동안 끈질기게 남기 때문에 항상 보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 아가씨는 끝맛이 정말 깔끔하다. 깔끔하다 못해 개운할 정도다. 게다가 내용도 비교적 단순하고, 주제도 명확하고, 권성징악으로 끝나기에 헤어질 결심이 아니라 이 영화야말로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워낙에 수위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서 각오를 하고 봤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니 야한 장면들보다는 통쾌한 장면들이 더 뇌리에 남았다. 남성 권력의 상징인 뱀을 부수고 허세와 일방적인 욕망으로 가득한 책을 파괴한 후 겹겹이 닫힌 문을 하나씩 하나씩 열고 마침내 달빛이 내리쬐는 드넓은 들판으로 달려 나가는 장면이 너무 좋았다. 달빛 가득한 가을밤의 서늘하면서도 상쾌한 내음이 순간 스치는 듯하며 해방감이 한껏 느껴진다. 코르셋을 조이던 장면과 대비해 보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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