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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니 Dec 02. 2024

영화 《빌리 엘리어트》 리뷰

꿈이 선사하는 기쁨


    예전에 영어 전공 수업을 들으면서 자세히 다뤘던 영화인 《빌리 엘리어트》. 중간고사 준비할 때 공부하느라 같은 장면을 몇 번이나 돌려봐서 또 보면 재미없지 않을까 조금 걱정했는데 이게 웬걸, 처음 볼 때보다 더 재밌는 거다! 여러 번 보면 재미가 떨어지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여러 번 봐도 재미가 반감되지 않는 영화도 있다. 빌리 엘리어트는 후자의 영화가 아닐까.

  빌리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복싱을 했었고, 터프하고 가부장적인 성격임을 쉬이 눈치챌 수 있다. 반면 피아노가 어머니 것이었다는 점, 그리고 할머니가 계속해서 하는 말인 "I could have been a professional dancer."을 미루어 보아, 할머니와 돌아가신 어머니는 소위 섬세한 예술가적 기질을 가졌던 것 같다. 그리고 빌리는 친가 쪽을 닮은 형과는 다르게 외가 쪽 피를 받아 예술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발레에 재능이 있다.

  사회적인 시선과 편견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몸과 심장이 이끄는 대로 발레를 하고 싶어 하는 빌리 엘리어트의 모습은 가슴속에 찡한 울림을 가져다준다. 빌리는 1984년 영국 북동부의 시골 동네, 그중에서도 터프한 광부들이 모여있는 탄광 지역인 더럼에 살고 있다. 남자가 발레를 한다는 것을 쉬이 이해받지 못할 시공간적 배경임에도, 빌리는 이에 굴복하지 않고 발레의 길을 간다. 그리고 빌리의 친구 마이클도 당시에는 더 곱지 않을 시선으로 보았을 트랜스젠더 혹은 게이이다. 그래서일까, 학교 체육 시간에 학교를 나와서 달리기를 하는데, 빌리와 마이클만 다른 아이들이 가는 길로 가지 않고 터널 밑으로 난 다른 길로 가는 씬이 꼭 그 둘의 일반적이지 않은 정체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이 느껴졌다면 오버일까?

  빌리가 정말 순수하게 발레를 사랑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특히 화장실에서 발레 연습하는 씬은 너무 유쾌하고도 사랑스럽다. 시종일관 잘 웃지 않던 빌리가 피루에트라는 동작을 성공한 뒤 정말이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나까지 흐뭇해진다. 누구나 열정을 가지고 하는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이 있을 거다. 요리든 축구든 뭐든. 그 사실을 떠올려보면 인간이 조금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걸 못한다고 해도 그 사람을 다른 걸 잘할 수도 있는 것이다. 마치 복싱은 잼병이지만 발레에는 소질이 있는 빌리처럼.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특별하다. 그리고 이렇게나 발레를 사랑하는 빌리지만 발레를 하며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거다. 연습의 고단함, 파업으로 인한 긴장감, 어머니의 부재, 사춘기 등등이 합쳐져서 빌리는 많은 외적 내적 갈등들을 겪는다. 하지만 이런 갈등들이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반짝이는 빌리의 열정이 더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주인공인 빌리뿐만 아니라 발레 선생님과 가족들의 시선에서 보면 또 다르게 영화가 다가온다는 점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발레 선생님이 빌리에게 들려주는 백조의 호수의 줄거리가 묘하게 그녀의 인생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권태로운 일상을 보내던 중 빌리라는 재능 있는 소년을 만났을 때 얼마나 기뻤을지, 그리고 미래를 위해 빌리를 떠나보낸 후 남겨졌을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허했을지. 가족들 또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다. 실은 제일 고생해야 하는 게 뒷바라지해 주는 가족들일 수도 있다. 예술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나머지 가족들의 희생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빌리가 로열 발레 스쿨에 들어가고 난 뒤 형과 아버지는 생활비와 교육비를 위해 계속해서 탄광에서 일한다. 탄광 작업하러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는 아버지와 형의 모습과 마지막 장면인 도약하는 빌리의 모습이 수직적 대비를 이루어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영국 북동부 시골이 공간적 배경이라 등장인물들이 모두 영국 사투리를 쓰는데, 이것도 이 영화의 묘미이다. 평소에 알던 영국식 발음에 묘한 억양까지 더해져 대사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춤이나 발레를 영화 내용에 맞게 적절하게 섞어서 보여주는 것도 이 영화의 재미 중 하나. (복싱 수업 후 남아서 샌드백 치기 연습을 더 해야 하는 빌리가 옆의 발레 수업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의 박자에 맞춰서 마치 춤을 추듯 샌드백을 치는 장면, 발레 끝나고 신나서 춤추면서 집에 가는 장면, I love to boogie라는 음악에 맞춰 발레 연습을 하는 빌리와 마치 함께 춤을 추는 듯한 형과 할머니, 아버지의 모습을 교차편집하여 보여주는 장면, 형과 발레 선생님이 언쟁을 벌일 때 느끼는 혼돈스러운 감정을 표현하는 댄스, 등등)

 이상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운 열정, 재능, 소수자, 스승, 가족에 관한 가슴 따뜻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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