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나는 도서관을 자주 가는 독서광이었다. 도서관은 나에게 잠시의 쉼을 허락하였다.
중학생 때, 같이 다니던 친구들과 다투게 되어 혼자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다른 아이들은 저마다의 무리가 지어있었고, 여자들의 문화가 있어서 어디 들어가기도 싫고 그냥 혼자가 편했다. 그냥 동급생 아이들과 결이 달랐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건 아니다.
나는 중학교를 다닐 때, 점심 시간이 너무 싫었다. 다른 아이들은 친한 친구와 함께 밥을 먹는데, 나는 마치 외톨이가 된 것처럼 쭈뼛쭈뼛 어디에서 밥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는 시간이 길었다. 그 당시에 선도부 임원을 하지 않았더라면, 핑계를 댈 거리도 없었을 것 같다. 어색하고 무거운 느낌의 분위기가 싫어서 차라리 점심을 먹지 말아야지 하며, 점심 시간만 되면 종 치기 무섭게 도서관으로 기어 들어갔다. 점심 시간에는 담임 선생님과의 숨바꼭질이 이어졌다. 나를 찾기 위해 선생님은 학교 구석구석 찾아 다니셨고, 나는 잽싸게 그런 선생님을 피해 안 보이는 곳에 숨었다. 밥 먹다가 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 때까지 계속 혼자 지낸 건 아니다. 중간에 친해진 애들도 있지만, 어디 무리에 속하지 않는 그런 상태였다. 학교를 다니면서 좀 많이 외로웠던 적도 있다. 한 사람만 있었어도 숨 쉴 구멍이 있었을텐데, 야속하게도 그런 친구들은 금방 전학을 갔다.
중학교 1학년 시절, 교우 관계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다고 담임 선생님께 말씀 드렸다. 그때 당시 담임이셨던 분은 나에게 잘못이 있는 게 아니냐며, 다른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잘 노는데 내가 못 어울리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셨다. 나에게 그 말은 꽤 충격을 주었다. 학교 선생님이 살펴봐야 하는 학생에게 그런 막말을? 그냥 돈 벌려고 학교 선생님 하시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들었다.
중학교 2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학교 폭력 위원회를 열고 싶어하는 나와 엄마를 열심히 설득하셨다. 학교 폭력 위원회는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일까? 가해자 학생들이 처벌 받지 않기를 원하시는 건가? 피해자의 삶을 처절히 무너져 내려가는데? 그 당시에는 참 학교 꼴 잘 돌아간다 싶었다. 그래도 그 당시의 선생님은 내 얘기를 잘 들어주셨다. 그거로 끝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의 선생님은 누구 하나 떨어져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없을 정도셨던 것 같다. 왜 점심 시간에 밥 안 먹고 돌아다니냐는 질문에, 같이 밥 먹을 친구가 없어서, 밥 먹다가 체할 것 같아서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일부러 반끼리 밥 먹고, 번호 순대로 밥 먹고, 여러 가지 방법을 활용해서 밥 먹는 자리에 참여하게끔 하셨다.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다는 생각에 또 목이 막히는 것 같아서, 또 다시 도서관으로 향했다. 나는 그렇게 도서관과 친한 친구가 되었다.
도서관에 가면 추리 소설, 청소년 소설을 주로 읽었다. 책을 읽을 때, '책 속에는 많은 좋은 선생님들이 있어.'라는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책으로 위로와 응원을 받았다. 정말 서러운 날이면, 남 몰래 도서관 구석에서 훌쩍이고는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청소년 시절은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발판이라고 생각한다. 참 많이 울기도 울었고, 외로운 시절이었다. 그래서 '혼자', '스스로'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 혼자서 무언가를 하는 게 이상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메마른 땅에서도 따스한 손길을 느낄 수도 있었다.
나는 중학생 때 또래 친구들을 별로 안 좋아했다. 그냥 다들 하나 같이 생각이 어려 보였다. 육두문자가 난무했고, 19금 패설은 공기처럼 돌아다녔다. 마치 내 귀가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재빨리 비누와 물로 빡빡 씻고 싶었다. 무리 지어 다니면서 마치 패거리처럼 하는 행동도 정말 싫었다. 그래서 그럴 때 더욱 책과 가까워졌나보다. 책은 순수하니까. 건전하고 깨끗하고 긍정적인 부분이 많은 친구니까. 내가 도서관 죽순이가 된 이유다. 도서관을 가면 갈수록 책을 더 많이 읽게 되었고, 아픔과 동반하여 지금은 책을 집필하는 작가가 될 수 있게 되었나보다. 아픈 만큼 성장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