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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약사, 마을로 향하다

마을약사 호두 이야기 #2

안녕하세요. [마을약사 호두 이야기]를 쓰고 있는 늘픔가치 대표, 약사 호두입니다.

지난 이야기에서 약대생시절에서부터 공동체 약국, 늘픔약국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풀었습니다.


그럼 오늘은 늘픔약국을 운영하면서 마을약사가 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합니다.


사실 [마을약사]라는 말 처음 들어보실 겁니다. 사실 제가 만든 말이에요. 영어로 써보자면 Community Care Pharmacist라고 하면 적합할 것 같아요. 지역 약국 안에서 일하는 약사와 달리 약국 밖, 지역사회 속에서 활동하는 약사를 구분 지어 말하고 싶었습니다. 마을약사의 활동의 예를 들자면 가정방문 약료활동이나 교육활동 정도가 될 수 있을 겁니다.


2012년도에 관악구 신림동에 늘픔약국을 오픈한 뒤로 저는 매일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하루 12시간씩 약국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생활하기를 2년이 넘어가자 몸과 마음에 적신호가 들어오더군요. 약국의 환자가 늘어나고, 단골 고객층도 두터워져서 경영적으로는 안정적이었지만, 반복되는 일상에서 지친다는 느낌이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정방문 활동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서울케어의 일환으로 취약계층의 집에 찾아가는 약사 서비스가 시범적으로 열린다는 것입니다. [생활밀착형 약물교육]이라는 이름의 시범사업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저는 한 어머님의 집에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가정 방문 약물 상담(방문약료) 중인 호두약사


정 00님은 52년생의 혼자 사는 여성입니다. 이미 오래된 약국 단골이셨고, 2차 병원에서 심장약, 혈압약, 당뇨약을 처방받아 드시는 분이었습니다. 조용조용하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신데, 약을 잘 챙겨 먹는데도 혈당 조절이 안되고 숨이 차다는 얘기를 하셔서 가정방문을 해서 상담을 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집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 되었습니다. 지도 어플에 주소를 찍어보니 걸어서 15분 거리 나오길래 30분 정도 여유 있게 출발했습니다. 정 00님의 집은 아주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습니다. 땀을 흘리며 겨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하여 대문을 열고서 한번 더 크게 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3층 계단을 더 올라야 하는 옥탑에 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땀범벅이 된 저를 보고 정 00님은 굉장히 미안해하시면서도 밝은 얼굴로 반겨주셨습니다. 물 한잔을 받아 마시고 자리를 잡고 앉아 복용 약을 확인하였습니다. 다니는 약국이 많지 않으셨던 터라 보관 중이 약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늘픔약국에서 조제해 준 약 한 봉지와 보관 중이던 위장약 몇 통이 있었습니다. 복약 이행도를 확인하기 위해 조제한 날짜와 대조하여 약의 개수를 세보았습니다. 모범생 같이 약을 착실하게 잘 챙겨드시고 계시더군요. 왜 약을 먹는데도 혈당조절이 안되고 숨이 찰까? 대화를 나눠보았습니다. 

약국에서와 달리 집에서 상담을 하니 보다 다양한 요인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숨이 차다는 이야기는 그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예전에 숨이 차다가 쓰러진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오는 걱정이었고, 지금 사는 집이 가파른 오르막길과 옥탑에 위치하다 보니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미 지난겨울에는 계단에서 여러 번 넘어져서 다칠 뻔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습니다. 

혈당 조절 문제를 위해서는 평소에 드시는 음식을 살펴보았습니다. 대화 속에 알게 된 것은 혼자서 장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특히 근육 손실을 줄이려면 단백질을 잘 챙겨 먹어야 한다는 말을 하자 고기는 무거워서 잘 못 사고,  계란은 깨질까 봐 못 산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무거운 쌀은 가끔 1층 주인집에서 장 볼 때 주문을 부탁해서 해결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한 시간이 넘게 많은 대화를 나누고 집에 오는 길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정 00님은 현재 주관적으로도, 객관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한데 약사로서 제가 더 이상 해드릴 게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방문약료 시범사업으로는 처방내역에는 중복이나 약물 상호작용의 문제가 없으며 스스로 약복용을 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라는 것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마지막 방문 상담을 앞두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주민센터의 의료수급자 사례관리 담당자와 통화를 해보았습니다. 주민센터 담당자는 알려주셔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본인이 방문하여서 의료비 지원 외에도 지원해 줄 수 있는 자원이 있는지 찾아보겠다는 답변을 주었습니다. 며칠 뒤 무료 반찬 지원을 시작하였고, 1층으로 이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고, 다음 해 정 00님은 평지대의 1층에 있는 집으로 이사를 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이사를 하고 나니 장보기도 쉬워지고 무엇보다도 외출이 편해지니까 복지관에서 하는 건강교실에도 열심히 나가서 친구들도 여럿 사귀었다고 수줍은 미소를 띠며 말해주셨습니다. 


제 안에서 어렴풋하게 [마을약사]의 꿈이 자라나기 시작한 건 바로 이 어머님 덕분이었습니다.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약사의 전문성을 살려 약물 상담과 교육을 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복지, 의료자원을 연결해 주는 그런 약사가 바로 제가 꿈꾸는 [마을 약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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