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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소망 May 01. 2024

어버이날  카네이션

카네이션이 주는 의미

5월 어버이날이 다가오면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어김없이 카네이션 조화꽃을 팔았다. 빨간색 꽃잎 수십여 장이 옹기종기 가운데 모여있고 그것을 받쳐주는 푸른 잎과 그 뒤에서 양갈래로 나눠진 리본에는 '어버이은혜 감사합니다'라고 적혀있었다. 지금은 얼마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어린 내가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금액이었던 것 같다. 내가 어릴 적에는 학교에서 충효교육을 중요시했던 때라 어버이날에는 당연히 카네이션꽃을 달아 드리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효도했다는 보람도 생겼고 기분도 좋았다. 물론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그런데 중·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카네이션을 사서 가슴에 달아 드리는 것이 의무감처럼 여겨지고 형식적인 행위로 변해갔다. 그렇게 된 데에는  어버이날에 나이 많으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나 가슴에 카네이션을 차고 다녔던 사회적 분위기도 하나의 이유였. 부모님도 집에서만 꽃을 달고 있었고  밖에 나갈 때는 떼어놓았다. 형들은 카네이션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기에, 어버이날 카네이션 사는 것은 나의 몫이 되었고 언제부턴가는 가슴에 달아드리지 않고 그냥 드리기만 했다. 그러다 대학을 다니고 군생활을 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기에 자연스럽게 카네이션은 사지 않게 되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 전까지 부모님과 함께 생활하던 중 어버이날을 맞이했다. 어버이날인지는 알았지만 한동안 꽃을 사서 달아드리지 않았기에  그냥  준비하지 않고 넘어가려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서운한 표정으로 왜 어버이날인데 카네이션을 안 사주냐고 물었다. 그 순간 많이 당황했다. '부모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만 있으면 되지 꼭 카네이션을 사드려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왜 가슴에 차지도 않을 거면서 사 달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버이날이니 그 정도는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문방구에 갔다. 조화, 생화 두 종류의 카네이션이 있었다. 잠깐 고민했지만 값이 더 싼 조화를 사서 갖다 드렸다. 주는 나도 받는 아버지도 덤덤했다. 옆구리 찔러 절 받는 식으로 카네이션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아서인지 아버지는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리본 속에  글로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흔적만을 남긴 아버지와 나의 어버이날은 지나갔다. 며칠 후  아버지는 3박 4일 일정으로 출타를 하셨다. 그런데 출타하신 지 이틀째 되는 날  아버지가 쓰러져 병원 중환자실에  있다는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가족들이 그곳에 갔지만 아버지는 의식이 없었고 이틀 후 하늘나라로 가셔 버렸다. 57세의 나이에 이별의 말도 없이 갑자기 가셨기에  큰 충격이었고 너무나 슬퍼서 장례식 동안에도 그 이후에도 정말 많이 울었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마지막 어버이날이 생각났다. 카네이션을 먼저 사드리지 못한 것과 생화를 사지 않고 값싼 조화를 성의없이 산 것이 가슴 아프고 후회가 됐다. 아버지는 본인의 운명을 알고 계셨는지 강요를 해서라도 카네이션을 통해  마지막으로 아들의 사랑을 받아보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그 마음을 알지 못했으니  많이  서운하셨을 것이다


조선시대 시인 박인로의 '조홍시가'라는 작품이 있다. " 반중(盤中) 조홍(早紅) 감이 고와도 보이 나다. 유자(柚子) 아니라도 품음직 하다마는 품어가 반길 이 없을새 글로 설워하나이다"  어머니가 좋아했던 홍시를 어머니에게 드리고 싶지만 돌아가셔서 그럴 수 없는 슬픔 그리움을 노래하는 시조이다.  5월이 되면 나도 시인과 같은 마음이 느껴진다. 예쁜 카네이션을  사고 싶어도  카네이션을  기쁘게 받아줄 아버지가 없으니  슬퍼진다. 그리고  아버지의 환히 웃는 모습이 그리워진다.


P.S  아버지가 천국 가신 이후로 어머니에게는 카네이션 꽃바구니나 화분을 사다 드렸는데, 그때마다  돈이 아깝다며 한사코 사 오지 마라고 하신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고 어머니의 맘을 더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이 카네이션을 사드리는 것보다 더 효도인 것 같아 어머니에게는 사드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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