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에게 다가가기
아빠가 돌아가신 지 1년 정도 되었다.
혼자되신 팔순 엄마와 추억 쌓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려고 한다.
프로젝트? 이름만 거창하고 그냥 엄마와 놀기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생각해 보니 내가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님과 함께 한 시간이 거의 없었다. 추억이 거의 없다는 얘기다. 그저 명절에 찾아뵙고, 생신이면 아빠 집 근처 맛있는 집 찾아 가족끼리 밥 먹고 케이크 자르기, 이게 다였다.
아빠의 임종도 못 보았고 그 전날 전화도 드리지 못했다. 후회스러웠다.
이게 엄마와 놀기를 작정한 이유이다.
엄마를 위한 것 같지만 솔직히 나를 위함이다.
그러지 않으면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를 할 게 뻔하니까.
팔순 엄마의 죽음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는 불안감도 한몫을 했다.
그 흔한 '돌아가시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살아계실 때 잘해라'라는 말이 이제야 내 마음속에 들어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2~3년은 엄마가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아빠는 싫어하셨다. 몸이 쇠약해지니 엄마가 옆에 있기를 원하셨다. 엄마는 시장을 가거나 아파트 내에서 어울리는 동네 분들을 잠시 만나는 일 외엔 외출을 하지 않으셨다.
아빠는 기운이 없긴 하셨지만 유명을 달리할 정도는 아니었다. 집에서 느리지만 일상생활은 스스로 하셨다. 그러나 코로나 시기를 넘기지는 못하셨다. 코로나19 백신, 독감 주사... 나라에서 맞으라고 하는 것은 빼놓지 않고 맞으셨다. 삶의 끈을 놓지 않으셨다.
그러나 약해진 아빠 몸에는 그 많은 주사들이 무리였을 것 같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코로나에 걸리진 않았지만 독감 주사를 맞고 며칠 기운을 차리셨다가 갑작스럽게 새벽에 돌아가셨다.
나는 아빠의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에게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겉으로 보기엔 효도하는, 엄마를 위하는 딸이 되기로 했다.
아빠 때와 같은 후회를 하기는 싫었다. 살아계시는 동안 엄마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살아계시는 동안 함께 사는 남동생네 가족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2021년 2월 엄마와 함께 간 곳은 가까운 남산타워였다. 나에게 친숙한 곳이라 가는 길을 알았고 마침내 생일 즈음이라 남산타워 할인쿠폰이 생겨서였다.
시내가 복잡하고 주차난이 심한 곳이라 남산 산책길을 걸어서는 가봤지만 차를 가지고 간 것은 처음이었다. 엄마와 다니기 위해서는 차를 꼭 가지고 가야 한다. 주차가 가능한 곳인지가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남산 올라가는 길에 줄지어 서 있는 유명한 돈가스집에 들어가서 먹고 올라가고 싶었지만 주차를 할 수 있는 자리가 없었다. 먹지 않고 바로 케이블카를 타러 가기로 했다. 케이블카 탑승장과 가까운 공용주차장은 자리가 없었다. 안내하시는 분이 저 위쪽을 가르쳐 주셨다.
엄마는 다리에 힘이 없다. 걷다 보면 점점 허리가 구부러진다. 쉬지 않고 걸음을 걸으실 수가 없다는 얘기다. 집에서는 잘 몰랐는데 나와보니 걷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일단 엄마를 케이블카 탑승장과 가까운 길에 내려드리고 위쪽 주차장에 주차를 간신히 했다.
아이를 데리고 갔다면 혼자 길에 내려놓고 가지 못했을 텐데 엄마는 돌발행동을 하지 않으니까 탑승장 가까운 길에 내려드리고 나 혼자 차를 주차하러 가는 것이 불안하지는 않았다.
혼자 길에 계신 엄마를 만나 함께 케이블카 매표소까지 갔다. 50m 정도 걸어가다 쉬고 걸어가다 쉬고 하면서.
가능하면 걷는 코스를 줄이면서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갔다. 아직 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들을 발아래로 보면서 남산에 올랐다.
엄마는 난간을 잡고 서울 시내를 내려다봤다.
엄마는 ‘에구, 시원하고 좋구나’
‘엄마랑 같이 올라온 건 처음이네, 좋다. 다리는 괜찮아?’
‘응, 이 정도는 괜찮아. 아직 날씨가 춥네. 너는 안 춥냐?’
‘응, 나두 괜찮아. 엄마, 저기 벤치에 가서 앉자.’ 나는 엄마 다리가 걱정되어 빨리 앉을자리를 찾았다.
엄마는 벤치에 앉으셨고 나는 점심거리를 찾으러 갔다. 점심은 수제햄버거로 정했다. 기다리는 사람이 적었기 때문이다. 수제햄버거 가게에서 엄마랑 햄버거를 먹고 남산타워에 올라갔다.
남산타워에서 설명해 주는 오디오기기를 빌렸다. 끼고 들으니 서울 시내의 위치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가 나보다 더 귀 기울여 들으신다. 우리 엄마가 공부를 했다면 우등생이 되었을 것 같다.
내려와 팔각정 근처 벤치에 앉았다. 간식으로 초코 추로스와 음료수를 사 왔다.
엄마는 “이거 맛있네” 하면서 한 개를 다 드셨다.
“엄마, 이거 더 사 올까?”
“그래, 포장해서 집에 가지고 가자. 애들 주게.”
엄마랑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주차장으로 갔다. 물론 엄마는 탑승장 근처 길에서 화단 바위에 앉아 나를 기다리셨다. 차에 올라 엄마집으로 향했다.
겨울이라 초록잎은 없었기에 나는 “엄마, 봄이 되면 다시 오자”라고 얘기했다.
엄마는 “오긴 뭘 또 와, 이렇게 봤으면 됐지.”
“그래? 그럼 다른 곳 가자. 하하”
“네가 운전을 하니까 좋구나. 아까 먹은 거는 얼마냐?”
“왜 돈 주게?”
“줘야지”
엄마는 오만 원을 가방에서 꺼내어 내게 주셨다.
나는 ‘안 줘도 돼’ 하면서 받았다.
엄마 손에는 추로스 봉지가 놓여 있었다. 맛있는 것을 가족들에게 줄 수 있다는 엄마의 행복이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