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2021년 가을이 되었다. 엄마와 단풍놀이를 가고 싶었다.
걷기를 힘들어하는 엄마와 등산은 갈 수 없다.
TV에서 춘천에 있는 삼악산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호수케이블카가 개장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호수를 가르고 산을 넘고 정상으로 올라가는 영상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그래, 저거야.’ 엄마랑 산에 오르는 방법으로는 케이블카가 제격이다.
폭풍 검색에 들어갔다. 집에서의 거리는 얼마나 되는지,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당일치기가 가능한 곳인지 등등. 가는 날짜를 정해야 하는데 한주가 더 지나면 단풍의 고운 색이 바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고 마침 개장 할인 이벤트도 10월 말까지였다. 그래서 날짜를 미룰 수 없었다. 그 주가 10월 마지막 주였다.
케이블카 승강장 개장 시간은 아침 9시였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당일치기도 가능하겠지만 처음으로 엄마와 단둘이 1박 2일을 가보기로 작심했다. 호수케이블카가 있는 삼악산으로.
동선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숙소를 예약했다. 전혀 모르는 곳이어서 인터넷에 의존했다. 엄마집은 서울 강동구다. 춘천까지 기껏 갔는데 춘천의 가을을 더 느끼고 싶었다. 남이섬에 배를 타고 섬 주변을 도는 크루즈투어 상품이 있었다. 일요일 점심시간 이후로 예약을 했다.
10월 30일 토요일 점심을 먹고 엄마와 함께 출발했다. 엄마 가방이 묵직했다.
가는 길에 가평휴게소가 나왔다.
“엄마, 휴게소에서 쉬었다 갈까?”
“그래, 너 힘든데 쉬었다 가자.”
“나 안 힘들어. 처음 길이지만 생각보다 운전할 만하네. 엄마랑 가니까 신나기만 해. 단풍 볼 생각에 두근거리기도 하고. 호호”
“나오니까 엄마도 좋다. 네가 운전할 줄 알아서 좋구나.”
가평휴게소에서 먹어야만 한다는 잣라테를 마시고 다시 출발했다.
강원도 숙소까지 가는 길은 막히지 않았다. 오후 3시쯤 도착했다.
삼악산 호수를 앞에 두고 두 채의 2층 건물이 있었다. 호텔급은 아니고 민박집 정도였다. 방에 들어가니 삼악산 케이블카가 보였고 엄마와 나는 만족했다.
테라스에서 둘이 셀카를 찍고, 엄마가 싸 온 삶은 달걀을 까먹으며 수다를 떨었다. 삼악산 케이블카들이 줄을 타고 매달려 호수를 건너 산으로 오르고 있었다.
“엄마, 아빠가 예전에 샀다가 팔았던 그 집 보러 갈까? 난 한 번도 안 가봤었거든.”
“넌 한 번도 안 가봤냐? 다 같이 왔었는데. 넌 안 왔었나 보구나. 어떻게 변했나 궁금하긴 하네.”
엄마는 딸이 운전하고 가면 힘들까 봐 선뜻 가자고 말씀은 못 하신다.
나는 가자고 부추기며 엄마와 밖으로 나왔다.
네비를 찍고 강원도 길을 따라 무사히 그 집에 도착했다.
아빠가 풍수지리를 배우러 다니며 좋은 자리라고 샀던 집이었다. 강이 앞에 있었고 강가에는 캠핑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엄마, 팔길 잘한 거 같은데. 우리가 여기 와서 한 철 장사를 할 것도 아니고”
“그렇지? 그때 비싸게 주고 샀어. 여기서 장사하는 사람이 아빠한테 넘긴 거 같아.”
“아빠도 귀가 얇나 봐. 하하”
엄마는 가까이서 그 집을 바라보며 우리한테 산 사람이 아직 여기 사는지, 저기 집을 왜 하나 더 지었는지 그냥 그들의 일상을 궁금해하셨다.
엄마와 나는 그 집을 판 것이 아깝지 않다는 결론을 내리며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주인집에서 닭백숙집을 같이 운영했다. 저녁으로 주문하려 했더니 시간이 오래 걸려서 안 된다고 했다. 미리 예약을 해 놨어야 했는데 알지 못했다.
우리는 하는 수 없이 마트로 가서 장을 봐 왔다. 내가 혹시 몰라 차에 실은 그리들에 고기와 채소를 구웠고 엄마의 가방에 들어 있던 김, 물김치, 과일, 요플레 등을 꺼내어 같이 맛있게 먹었다. 엄마는 만족해하셨다. 엄마는 밖에서 사 먹는 것을 돈 아까워하신다.
먹고 치우니 저녁 8시가 넘었다. 강원도에서 유명한 감자빵을 사고 싶었다. 엄마가 한밤중에 어딜 가나며 안 가면 어때하셨다. 나는 "지금 다녀와야 해. 별로 안 멀어." 하며 엄마와 함께 깜깜해서 무서운 도로를 운전대를 꽉 잡고 달려갔다.
저녁 8시 40분쯤 어둠을 뚫고 카페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그 시간에도 줄 서 있었다. 품절 직전 감자빵을 간신히 샀다. 엄마도 남동생 식구들을 먹어보게 하기 위해 감자빵을 따로 구입하셨다. 어딜 가든 집에 있는 식구들을 꼭 챙기신다.
카페 뒤쪽에 있는 넓은 정원에 자리를 잡고 엄마와 잠시 감자빵을 샀다는 성공의 미소를 지으며 숨을 돌렸다. 정원은 넓었고 잘 꾸며져 있었다. 낮에 왔다면 참 예뻤겠다 싶었다. 다시 올 수 없을 것 같아 아쉬움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 삼악산 케이블카 표를 사기 위해 나 혼자 삼악산으로 서둘러 갔다. 이른 시간이기도 하고 얼마나 걸어야 할지 모르기에 엄마와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9시 매표 시작인데 8시 20분에도 줄이 뱀처럼 길게 늘어서 있었다. 내 눈엔 탑승권이 할인되는 마지막을 놓치지 않으려는 나 같은 사람들로 보였다.
같이 간 동행이 있다면 ‘여기 서 있어. 동태를 살피고 올게’ 등등 상의를 하며 마음 편하게 기다렸을 텐데 혼자여서 줄 서 있는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주위를 살피면서 ‘언제쯤 표를 살 수 있을까? 날씨가 흐리고 안개가 끼었는데 몇 시 표를 사야 하나? 산에 올라가서 단풍은 잘 볼 수 있을까? 제대로 줄은 서 있는 걸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간간히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드디어 11시 표를 사고 숙소로 돌아와 엄마와 아침을 먹고 체크아웃을 했다.
케이블카 탑승장에 도착, 밑이 유리로 된 일명 ‘크리스털 케이블카’를 타고 잔뜩 기대하며 호수를 가로지르며 올라갔다.
예전에 내장산에서 보았던 울긋불긋 빨간 단풍산을 기대했지만 케이블카에 앉아서 보는 산 색깔은 노랑, 주황, 초록이었다. 탄성을 지를 만큼 감동을 받진 못했다. 하지만 나는 연신 엄마한테 호들갑을 떨었다.
“엄마, 아래 봐, 빠질 것 같아. 안 무서워?”
“뭐가 무서워. 튼튼한 유리가 있는데”
“엄마, 단풍이 울긋불긋하지는 않네. 그래도 산을 넘어 올라가니까 좋다.”
“그래, 나오니까 좋다. 한참을 올라가네”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케이블카레. 15분 정도 올라간대”
“잘 만들어 놨네. 어디 사진 좀 찍어 볼까.”
엄마는 아빠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사준 스마트폰으로 밖에 보이는 풍경을 찍었다. 스마트폰 카메라 사용이 서툴지만 셔터 버튼을 누를 때 ‘찰칵’ 소리가 나면 사진을 찍었다며 기뻐하신다. 그 모습을 보는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산꼭대기에 케이블카가 도착했다. 우리는 전망대로 천천히 갔다. 사람들이 여기도 저기도 많았다.
안개가 끼고 날씨가 약간 꾸물했다. 쨍한 햇빛이 비치지 않아 나뭇잎들이 제 색을 내지 못했다. 하지만 탁 트인 산아래를 보면서 엄마와 나는 셀카도 찍고 구름과 산과 강을 보면서 함께 하는 시간을 즐겼다. 짧은 산책길이 마련되어 있었지만 거긴 가지 않았다. 엄마가 걸음을 잘 걸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나는 ‘치즈, 김치, 웃자’를 큰 소리로 외친다. 엄마는 못내 웃으신다. 엄마의 미소가 예쁘다. 나는 자연스러운 엄마의 웃는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연신 버튼을 누른다. 우리는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와 삼악산을 뒤로하고 남이섬으로 향했다.
아뿔싸... 조금 가다 보니 도로가 나들이 차들로 꽉 찼다. 사람들이 다 남이섬으로 가나보다. 배를 타고 선상에서 남이섬 단풍을 우아하게 감상하는 엄마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예약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너무 속이 상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예약한 것을 환불받았다는 것이다.
남편이랑 왔으면 이 상황에서 투덜대는 소리를 들었을 텐데 엄마는 전혀 싫어하지 않으셨다. 차 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을 즐기면서 “어머, 저기 예쁘다” “저기 도토리 많겠네” 하며 아빠와 산에서 나물과 열매를 땄던 기억을 떠올리셨다. 배가 고팠다. 엄마는 엄마 가방에 챙겨 온 주전부리를 옆에서 꺼내주셨다. 엄마의 묵직한 가방이 딸을 살렸다. 역시 엄마는 엄마 했다.
주차가 가능한 닭갈비집을 찾아 3시가 다 되어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닭갈비 중에 소금구이가 맛있었다. 배를 채우고 나오는 길에 엄마는 소금구이와 양념 닭갈비를 포장하셨다. 엄마 입으로 들어간 맛있는 걸 식구들에게도 먹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아빠 닮았다.
남이섬은 못 갔지만 엄마와 둘이 차 안에서의 시간도 좋았다. 엄마와 드라이브를 하며 강원도의 색색 단풍을 눈에 많이 담았다. 엄마가 걷지 않아도 돼서 편안했다. 엄마와의 첫 여행, 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