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25일 만을 바라보며 산다. 매달 25일만 지나면 옷도 살 수 있고 맛있는 것도 먹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도 갈 수 있다. 몇 시간 지나면 카드사가 들어온 월급을 그대로 가져가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그저 그날만큼은 뭐든 해도 좋을 것 같은 한껏 충진 된 느낌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느낄 것이다. 항상 들어오고 나가는 게 뻔하지만 연말이라 그런지 들썩이는 기분도 들고 작년까진 들리지도 않았던 캐럴이 이곳저곳에서 잘 들리는 느낌이라 나도 카드를 꺼내 또 쓱쓱 긁어대기 바빴다. 조만간 내년을 맞이할, 지금보다 한 살 많은 형님이 될 내가 열심히 일해 갚아나가겠지만 말이다.
통장의 숫자는 그대로 있더라도 카드앱을 열어 결제예정금액을 확인하는 순간 가슴이 벌렁벌렁 해진다. 기억력이 좋아야 부자가 된다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부자는 언제 어떤 이유로 얼마나 썼고,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얼마인지 엑셀에 넣은 것처럼 단번에 계산이 되어 머리 한편에 저장되어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그들은 매번 카드를 꺼낼 때마다 머릿속 엑셀에서 산출된 잔고에 따라 카드를 긁을지 말지를 직관적으로 결정할 것만 같다. 마치 이차함수 판별식에 넣고 근이 몇 개인지 확인하듯 말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닌 게 퍽 아쉽기만 하다.
오늘도 카드를 열심히 긁었다. 내 월급은 즐거움과 행복이 된다. 그런데 그 기분이 얼마 가지는 못한다. 탁자 위에 덩그러니 모셔놓은, 내 월급이 만들어 낸 물건을 보며 이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도저히 내가 품을만한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이걸 어떻게 환불할까? 당근마켓에 내놓으면 얼마에 받을 수 있을까? 등등을 생각한다. 즐거움과 행복은 한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남는 것은 고민과 후회뿐이다.
다행인지 불행이지 기억력 좋지 않기에 그러한 고민과 후회의 경험도 금방 잊는다. 또 열심히 카드를 긁고 즐거움을 얻고 따라오는 후회와 망각을 반복한다. 그래서 내가 부자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든 올해의 마지막 25일도 이렇게 지나가나 보다. 내년은 조금 더 25일이 의미 있게 다가오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