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과 후 삼성동 백화점 앞을 지나갔다. 화려한 트리 장식이 많은 행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족히 10미터는 넘을 것만 같은 트리와 눈이 많이 내린 깊은 산속의 모습을 그린 외벽, 밤을 밝혀주는 전등장식은 크리스마스 느낌을 물씬 풍겼다. 특히 거대한 트리는 위압감을 주기보다는 되려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따뜻하게 감싸주는 신의 은총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 안락함 때문인지 행인들은 너도나도 스마트폰을 꺼내 서로를 찍어주며 크리스마스 기분을 만끽했다. 모두가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그때 어느 외국인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머뭇거리며 물았다. “저기 사진 좀 찍어줄 수 있어요?”라고. 까무잡잡한 피부에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씩 웃는 그의 미소에 나는 기꺼이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 그가 건넨 스마트폰을 받아 쥐었다. 스마트폰 액정은 세로로 긴 금이 나 있었다. 카메라 어플을 통해 그와 그의 일행을 화면에 담았을 때 그 기다란 금이 다소 거슬렸지만 나는 나 나름대로 세계에서 제일 사진을 잘 찍어주기로 유명한 한국인의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뒤로 한 걸음 가 주세요 step back”
굳이 영어를 쓰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내 말을 이해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도 혹시나 이해하지 못할까 봐 나는 사진을 여러 장 찍으며 이렇게 서 주세요 저렇게 서 주세요 웃으세요 라는 말 끝에 내가 아는 영어표현, 여의치 않으면 제스처를 곁들어 대열과 표정을 하나하나 지휘했다. 그저 한 장의 사진만 필요했을지 모르지만 나의 열의가 그들에게 전달이 된 것 같았다. 내가 스마트폰을 다시 돌려줄 때까지 그들은 내 까다로운(?) 지시를 잘 따랐다. 나는 스마트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여기 있어요 here you are”
그들은 받아 든 스마트폰에 찍힌 사진을 보고 서로 낄낄대며 좋아했다. 정확하진 않지만 동남아의 어느 국가라고 생각되는, 그들의 모국어로 서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다행히 마음에 들어 하는 모습이었다. 이제 내 할 일은 다 했다 싶어 돌아가려는 그때, 그들 중 한 명이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나는 물론 그 일행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나에게 처음 스마트폰을 건넨 남자는 당황한 표정과 함께 나에게 얼른 가시라는 손짓을 했다. 나도 조금 민망한지라 눈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내 등 뒤로는 그 울고 있는 남자가 '엄마 엄마'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지하도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곰곰이 생각했다. 왜 그는 엄마라고 외쳤을까? 집에 와서 찾아보니 스리랑카에서 쓰이는 타밀어로 엄마를 '암마'라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 아마 '암마 암마'라고 했겠지.
어떤 사정이 있었을까? 조금 궁금하기도 했다. 엄마가 그 엄마가 아닌 다른 의미였을 수도 있고 내가 내 멋대로 '엄마'라고 들었을 수도 있다. 내 편견일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집에서 조금만 떨어져도 금세 집이 그립고 밥이 그립고 엄마가 그리워진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사실 외국인 노동자를 생각하면 온갖 상반적인 이미지가 한꺼번에 떠오르기에 누군가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면 나는 대개 입을 다물곤 한다. '궂은일을 하는', '문화적으로 동화되지 못해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선진 인프라에 무임승차하는'등의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수식어가 있기도 따라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물론 그러한 숭고한 목적 때문에 온 것은 아니겠지만).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담론을 논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복잡하다. 50점 언저리에서 왔다 갔다 하며 평균 50점이 된 것을 평가하라는 것과는 달리 10점과 90점을 오가며 50을 겨우 맞춘 것을 평가하라는 것과 비슷하다.
만약 그날 만난 그들이 외국인 노동자가 맞다면 나는 어떤 외국인 노동자의 인간적인 모습을 본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집이 그립고 엄마를 보고 싶고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싶었을 것이다. 백화점 앞 거대한 트리가 신의 은총이 현현한 모습이 맞다면,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세상을 다르게 보도록 만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