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의 차이는 뭘까.
사실 예전의 나는 연애의 연장선이 결혼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4계절은 같이 보내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온갖 고난과 역경을 이겨낸 후에 비로소 연애의 결실을 맺는 게 결혼이겠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어떤 때는 1년을 훌쩍 넘게 연애를 해도 '글쎄 이 사람과 결혼은 잘 모르겠네'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지금의 와이프는 반년도 채 안 만났을 때 '아 이 사람과 왠지 결혼할 것 같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하고 싶다는 소망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운 강력한 느낌이 들었다.
참고로 말하면 한눈에 반한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소개팅이 태어나서 처음이었던 와이프와의 첫 만남은 나름 소개팅 내공(?)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소개팅이었기 때문이다. (묻는 질문에 해맑게 '네' '아니요' 대답만 해서 질문을 나 혼자 거의 50개는 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었나.
연애하고 싶은 사람, 결혼하고 싶은 사람 Chatgpt도 아는 차이
연애하고 싶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은 사람의 가장 큰 차이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는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같이 있을 때 얼마나 재밌고, 나에게 돈과 시간을 어느 정도 쓸 수 있는지, 지금 당장 나를 위해 어떤 것들을 해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그래서일까 어느 하나가 특출 나면 다른 모든 게 용서되기도 한다.(강동원 형님의 외모정도라면..)
그런데 결혼을 생각하는 순간 질문이 달라진다. 이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을지, 앞으로도 변치 않고 날 사랑해 줄 수 있을지, 이 사람의 단점을 내가 수용할 수 있을지처럼 지금 이 순간보다 함께할 미래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결국 돌아보면 다른 사람들과 지금의 와이프의 가장 큰 차이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는 것. 이런 확신은 또 어떤 이유에서 들었을까 궁금해졌다.
Chatgpt는 모든 정답을 알고 있을지도.
01.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사람.
배울게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그 자체로 미래를 꿈꾸게 한다.
매슬로우 인간의 욕구 5단계의 최상단은 '자아실현의 욕구'다. 자아실현이라니 무슨 성인군자가 되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어서 처음에는 그 의미를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근데 와이프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이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느낌' 또한 자아실현의 한 종류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지지 못하는 부분을 와이프가 가지고 있다거나 나의 부족한 점을 채워줄 수 있을 때 더 그런 생각은 더욱 강력해진다.
예를 들어 나 같은 경우는 쓸데없는 걱정, 후회가 많고 집에 와서도 회사일로 끙끙거리는 성격을 지녔다. 그에 반해 와이프는 본인이 원할 때 스위치를 꺼버리고 본인 손을 떠난 건 뒤도 안 돌아본다. 나에게는 아무리 노력해도 지독히 고쳐지지 않는 습관이었는데 와이프에게 사랑의 잔소리와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다 보니 자연스레 고쳐졌다.
사소한 일부터 나의 큰 단점까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변화가 생기고 그로 인해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느낌을 느끼게 되니 자연스럽게 그 사람과의 미래도 생각하게 됐다. 이 부분이 와이프가 남들과 달랐던 첫 번째 이유다.
02. 사랑은 위기의 순간에 확인하는 것
문제가 없는 사람보다 문제 해결 과정이 나와 잘 맞는 사람.
인생은 생과 죽음사이 선택이라는 말 누가했는지 몰라도 참 명언이다.
결혼 생활은 수많은 선택의 과정이다. 특히 나 혼자서 의사결정 할 수 있는 일 자체가 없고 그 범위가 매번 확장되기 때문에 항상 크고 작은 갈등은 불가피하다.
이때 그 과정 속에 중심을 잡기 위해서는 빈번한 충돌과 위기의 순간에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나와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 서로가 충돌할 때 문제를 조율하고 헤쳐나가는 과정이 와이프와 다른 사람이 가장 남달랐던 부분 중 하나다.
한 예로 와이프로부터 '역지사지 보고서'라는 걸 받아봤다. 7 페이지 남짓한 이 보고서에는 우리가 어떤 문제 때문에 싸우게 됐고, 본인이 서운한 포인트는 이런 부분이며 역지사지해봤을 때 본인이 나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부분은 미안하다는 내용의 리포트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도 가장 호불호가 분명한 사람이 나와의 차이, 특히 가족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답답함을 많이 느꼈을 텐데도 감정을 쏟아내기보다 나의 감정을 분석해서 무려 리포트를 작성해 보내왔다. 뭐 때문에 투닥거렸는지 조차 잊어버린 채 이 사람과는 앞으로 어떠한 시련이 찾아와도 이겨낼 수 있겠구나 싶었다. 아마도 이때가 결혼을 결심했던 순간이었다.
결혼 준비를 하며 가족 문제로 논쟁 후 다음날 아침 와이프가 보내온 역지사지 리포트의 일부분 발췌.
글을 마치며.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크 콘서트 강연가 김창옥 씨는 결혼 상대는 '그래서'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고 얘기한다. 예뻐서, 돈이 많아서, 능력이 좋아서와 같은 조건으로 상대를 보기 보다 내가 생각하는 배우자상과 다르고 부족한 부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 이어야 하는 그런 의지나 감정이 드는 사람. 그런 사람과 결혼하라는 인생 선배의 조언이다.
집안일로 구박받고 가끔 의견 차이로 종종 투닥거리기도 하지만 결국 '그래도 나에게는 이 사람밖에 없다'며 치킨 닭다리로 화해를 청하는 내 모습을 보면 백번 맞는 말인 것 같다.
오늘 연인의 두 눈을 지그시 쳐다보며 이 사람과 어떻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다른 건 한참 모자라도 '이것만큼은 나에게 대체불가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든다면 아마도 남들이 얘기하는 결혼을 결심한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