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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Mar 27. 2024

모든 게 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였다.

지나고 돌아봐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


남한테 싫은 소리 듣는 걸 참 싫어한다. 다시 말하면 내가 부족해서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처음부터 내가 생각한 기준보다 훨씬 더 열심히 배로 한다. 그렇게 해서 완벽하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애초에 그 기준은 내가 정한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는 언제든 변수가 생길 수 있다. 내가 정한 기준 이상으로 얼마나 더? 헷갈렸다. 어차피 직장에서도 나는 최종 결정권자가 아니고, 상사의 말을 따라야 한다. 이래저래 혼자 마음이 심란해도 결국에는 따라간다. 최선을 다해서 일한 만큼 마음속에 대미지가 남는다. 

결국 내가 정한 그 기준이 문제였다.




10년 이상을 다닌 직장, 20대부터 자취를 시작하며 30대가 되고 난 현실. 분명 20대의 직장생활과는 마음가짐이 조금 달랐다. 더 열심히 해야지만 내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한 편으로는 마음이 더 힘들었다. 어느 날 나는 지금보다 더 나은 무언가를 바라는 욕심이 들어갔기 때문에, 결과에 연연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걸 알았다.

회사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모습이 된 건 파고들어 보니 현재에 만족하지 못해서였다. 스스로 만족될 만큼 성과를 내면 마음이 풍족해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냥 지금보다  나은 생활을 하고 싶었다. 지금도 참 좋고 충분히 성취감을 가질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데 말이다.


본래 가지고 있는 기질적인 면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세트로 생각해 보는 사람이 있다.

바로 4살 터울의 친언니다. 언니는 내가 채우고 싶은 종류의 깊은 대화가 가능하다.

내가 바라본 언니는 목표가 있으면 흐지부지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섣부르게 행동하지 않고 계획대로 진행시켰다. 자세하게 늘어놓을 수는 없지언니가 현실과 꿈 사이에 서있을 때가 기억난다. 언니는 꿈을 선택했고 대수롭지 않게 단계를 밟아나갔다. 그리고 그 길에서 계속 나아가고 있다.


나는 고민이 많은 편이다. 뭔가를 시작할 때 머릿속으로는 끝까지 진행시키고 결과까지 예상해 버린다. 변수가 많으면 시작도 전에 그만둔다. 이렇게 된 데에는 그동안 무작정 시작했다가 포기하고 결국 합리화하는 경우가 있었다.  언니는 안 그랬다. 물론 고민을 많이 하고 오래 생각하고 용기 내 결정한 것이겠지만, 내 시선에서  언니는 그 조용히 결정하고 묵묵히 실행했다. 나는 그 결정과 실행력과 차분함이 너무 부러웠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 맏이라 그렇고 둘째라 그런 걸까? 열정이 많다는 결이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르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항상 다른 무언가 관심이 많았다. 여유로워서라기보다는.. 뭔가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다. 시간을 쪼개서라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박처럼 왔다. 능력이 아주 많은 사람이고 싶었나 보다. 이건 좀 생뚱맞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는 가수를 하겠다고 오디션을 보러 다녔다.  

이십 대가 되고 한 곳에서는 뭔가 가능성을 제안받았는데 나는 회사를 다녀야 한다고 그래버렸다.

오디션을 왜 봤을까? 그냥 심심풀이였나? 그냥 막연한 회피도구였던 걸까.


결국 실적으로 사실 생계가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만큼 간절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확신을 가지고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무서웠다. 력을 안 했으니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어린시절에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왔다. 그렇다고 해서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지만 '안정'에 대한 집착이 생긴 것 같다. 결과적으로 다른 길을 선택해서 성과를 낼 자신이 없었고 지금 생활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그 후로 쓸데없이 오디션 보러 다니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그렇게 회사를 계속 다니고, 스멀스멀 다른 마음이 올라올 때는 이것저것 취미생활을 많이 했다. 스물여섯에는 요가를 시작했는데 너무 좋았다. 이곳저곳 아픈 데가 많은 나인데 순환도 잘되고 마음이 편해져서 좋았다. 사람마다 맞는 운동이 있다고 하는데 나한테는 요가가 가장 좋은 운동이자 명상이라고 생각했다. 요가를 정적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요가도 종류가 많아서  하타요가는 부동자세를 포함하지만, 매 호흡마다 움직임을 이어가는 빈야사 요가도 있다. 그렇게 나는 기쁘게 요가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간 요가원을 다니다가 어느 날 '요가지도자 자격증을 따야지!' 결심이 들었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저녁시간과 주말을 활용해서 교육받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결국엔 끝까지 해내지 못했다.

나는 직장생활과 요가지도자의 과정 둘 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었다. 무언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싶다면 자신감이 생길 만큼 충분한 연습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코로나 시기와 겹쳐서 정식과정을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3개월을 예비과정반에서 수련하다가 본 3개월 기간 중, 결국 1개월을 남기고 중도 포기했다. 그때 좌절감, 자책감은 1년이 넘게 갔다.


또 뭐가 있었더라,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을 땄다. 나는 지금 3년 차 고양이 집사다. 반려동물관리사 자격증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면서 관심이 생겼다. 이왕 공부하는 거 잠시 반려동물 케어 쪽으로 이직을 상상해보기도 했다. 이것도 역시 상상만 하다가 끝났다.  발만 담그고 지나간 일들이 많다.  나는 항상 섣부르게 시작을 하고, 중간에 아닌다 싶으면 그만두었다. 누구나 이런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의 문이 드는 부분은 나는 왜 이런 일을 너무 온 마음을 다해서 시작하고, 그러면 그렇게 열심히 해봐야지 왜 시작하고 포기하고 좌절할까. 가벼운 마음으로 꾸준히 하는 게 더 좋을 텐데 나는 왜 그게 안 되는 걸까. 가벼운 마음이 잘 안 된다.



 

이 글을 쓰고 읽고 반복하다 보니까 느껴지는 게 있다. 나에 대해 잘 아는 가까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한다.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을 찾아서 해내고, 나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거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고 정말 잘할 수 있는 걸 열심히 찾는다.

나는 생계를 위한 본업과 자아실현, 똑똑하게 모두 다 잘 해내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일과 진짜 나, 꼭 분리해야 하나?'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분명  주어진 상황에서 오래 해온 일과 지금에 내가 나의 적성과 흥미, 잘하는 걸 찾아서 도전하고 꾸준히 '나'와 일치시키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게 어떤 변화에 대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마음속에 이런 세세한 변화들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거라고. 마음이 가는 대로 지속해 보자, 다시 한번 자신감을 주었다. 먼저  이야기를 먼저 써보기로 했으니 꾸준히 쓰면 된다. 이제 그러기만 하면 된다.


그냥 하는 것만으로도 내면의 힘이 생기고  발전할 수 있는 것. 나와 계속 대화하는 것. 더 나아가 소통도 할 수 있는 것. 몰입할 수 있고 그 자체만으로 좋아하는 것. 글쓰기가 그렇다.


누군가의 인정보다 먼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잘하고 있든 못하고 있든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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