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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피치 큐레이터 Mar 04. 2024

정치연설 연사에게 중요한
상호작용 관리

정치연설에서 연사-청중 상호작용의 특징

지난 발행에서 시상식의 연사-청중 상호작용을 예로 들며 청중의 박수가 적시에 나오게 하는 기본 기술, 호명하기와 포즈(pause)를 소개했다. 오늘은 정치연설에서 연사-청중 상호작용의 특징을 알아보자. 




정치연설의 연사-청중 상호작용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연사 한 사람 대 많은 청중과의 소통이다. 일상의 대화에서는 대화자 간에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자유로운 턴테이킹(turn-taking, 주고받기)이나 끼어들기가 일어난다. 반면 연설은 연사-청중 간의 소통이라 보통 연사는 말하고, 청중은 듣는다. 하지만 연설도 쌍방향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단지 청중의 응답과 끼어들기가 일상대화에 비해서 제한이 있다. 


둘째, 연설에서 연사는 말로, 청중은 박수, 환호, 웃음 같은 비언어적 표현으로 소통한다. 이러한 청중의 반응은 연설에서 중요한 요소다. 청중의 반응과 청중이 반응한 연사의 메시지를 분석해서 (1) 청중이 연사의 말에 얼마나 집중하고 동의하는지 알 수 있고, (2) 연사의 연설 스타일과 연설 능력을 파악할 수 있으며, (3) 연설에 참석한 그 전체 그룹의 사회적 정치적 성향과 정체성을 알 수 있다.  


셋째, 정치연설은 공공 연설이다. 연설 현장에 있는 청중뿐만 아니라 미디어를 통해 집이나 직장에 있는 청중에게까지 전달된다. 언론과 미디어에서는 이런 연설을 해석하고 분석한다. 따라서 정치연설은 정치인이 자신의 연설 스타일, 정치적 정체성, 리더십을 보여주며 공적으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무대다. 


정치인은 이런 무대에서 청중의 반응을 적시에 끌어내며 카리스마 있는 연사로 인식되기도 한다 (Atkinson, 1984). 또한 연설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만들어 간다. 예를 들면, 영국의 전 총리, 토니 블레어(Tony Blair)는 노동당 당대표 선거부터 총리가 되었을 때까지 공공 연설과 담화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적 비언어적 소통 방식과 레토릭 스타일로 '보통 사람, 새로운 유형의 정치인, 신선함과 변화에 대한 센스, 자신감과 자기 확신'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었다 (Fairclough, 2002).



토니 블레어, 노동당 전당대회 - 사진 출처, The Guardian

참고: 토니 블레어는 1994년 영국 노동당 당대표로 선출. 1997년 총선에서 약 18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하여 43세에 총리로 당선. 1997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총리로 재직.






넷째, 연설은 정치인이 연설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줄 수 있는 무대다. 이와 관련된 중요한 사례를 다음의 토니 블레어 연설을 통해 볼 수 있다.   




블레어의 2004년 노동당 전당대회 연설 중에 시위가 발생했다. 전쟁과 동물 사냥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몰래 이 연설의 청중으로 들어와 연설 중에 자리에서 일어나 두 번이나 블레어를 비난하는 일이 발생했다.


첫 번째 시위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블레어를 비난했을 때, 블레어는 "알겠습니다, 반대할 수도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사회니까요"라고 대응했다. 청중은 즉각 박수를 치며 블레어를 지지했다. 경비원들이 와서 시위자들을 밖으로 내보냈다. 


그 후 연설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리고 숨어있던 두 번째 시위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블레어를 비난했다. 이번에 블레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경비원들이 시위자들을 밖으로 데려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봤다. 장내에는 고요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블레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얼굴에 미소를 띠며 연설할 때와는 사뭇 다른 대화체의 조용한 어투로, 


 "실례합니다만, 혹시... 더 숨어계신 분 있으면 지금 일어나 주시겠어요?"


그의 이런 재치 있는 말이 끝나자마자 장내에서 일제히 웃음이 터져 나왔고 폭발적인 박수로 이어졌다.  


영국의 연례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의 연설은 중요하다. 대통령제에서는 대선 과정을 통해 후보수락연설, 유세연설, 취임사 등의 연설 과정을 거쳐 한 나라의 리더가 된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에서는 이런 무대가 없다.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의 연설이 정치 이슈와 정당의 현재 상황을 논의하고 비전을 제시하는 기회다. 이 때문에 당원뿐만이 아니라 모든 미디어가 이 연설을 주목하고 학계에서도 이 연설을 분석한다.   


따라서 이렇게 중요한 연례 전당대회 연설에서의 이런 시위 사건은 연사의 체면과 리더십에 손상을 줄 수 있는 위기 상황이다. 연사의 침착하고 재치 있는 말, 이에 호응하는 청중들의 웃음과 박수, 즉 연사-청중 상호작용으로 이 위기 상황을 관리하고 더 나아가 장내 분위기까지 완전히 바꾼 사례다. 




위의 사례는 청중이 당원이나 지지자들이기에 연사와 청중이 협동하여 돌발 상황에 대처할 수 있었지만, 청중의 구성원이 다른 곳에서 연설할 때는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블레어가 영국 여성협회에서 연설했을 때, 청중들은 그의 연설에 보통의 박수 템포보다 느리게 박수를 치며 야유했다. 장소에 맞지 않게 그의 연설 내용이 너무 정치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블레어에 대한 나쁜 평판이 신문에 실렸다. 이런 경우에 정치인은 자신들의 체면과 리더십, 심지어 자신이 속한 정당의 체면까지 깎일 수 있다 (Bull & Feldman, 2011).


연사의 이미지를 만들어갈 수도 있고, 연사의 카리스마, 리더십, 소통 능력,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줄 수도 있는 연사-청중 상호작용.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상호작용 관리는 정치연설 연사가 갖추어야 할 중요한 연설 기술이다.   




Atkinson, J. M. (1984). Our masters’ voices: The language and body language of politics. London: Routledge.


Bull, P., & Feldman, O. (2011). Invitations to affiliative audience responses in Japanese political speeches. Journal of Language and Social Psychology, 30(2), 158-176.


Fairclough, N. (2002). New labour, new language?. 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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