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변 : 조리가 있고 막힘이 없이 당당하게 말함
당당하게……
나는 웅변을 꽤 오래 했다. 첫 시작은 유치원에 다닐 때, 내가 하도 말을 안 해서 엄마가 웅변학원에 보내신 거였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했으니 12년은 되는 시간이네.
아주 어릴 때부터 말을 잘 안 해서 부모님이 꽤 답답해하셨다. 뭐든지 단답형, 그마저도 고개로 대답했다고 한다. 끄덕이거나 가로젓거나. 혼을 내도 절대 소리 내서 울지 않았다고 한다. 눈물만 흘리고 있었단다. 말을 너무 안 해서 답답하니 엄마에게 맞은 적도 여러 번, 내가 집에 있는데 불러도 대답이 없으니 내가 없어진 줄 알고 부모님께서 온 동네 헤매며 찾으러 다니신 적도 있었다. 친구와 놀면 말을 더 할까 싶어 친구집에 데려가면 친구의 장난감 한두 개로 나 혼자 놀았다.
말문을 트이겠다고, 발표력과 자신감이 늘면 말을 할 거라는 기대로 유치원을 그만두고 웅변학원으로 보내신 부모님. 발표력엔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학원에서 시키는 건 모두 거부 없이 잘했으니까. 그런데 말을 안 하는 건 여전했다.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은 정말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싶다.
어른이 돼서야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정신과적 증상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나만의 판단으로) 내가 선택적 함구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강압적인 육아방식, 늘 요란한 부부싸움. 어린 마음에 날 보호한 방식이 아니었을까.
어쨌든 웅변을 한 덕에 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는 꽤 유명했다. 대회에 나가서 온갖 상을 휩쓸었고, 조회시간마다 나가서 그 상을 또 받았다. 전국대회에서 상을 받아 지역 신문에도 나고, 지방 국회의원에게 불려가 선물을 받기도 했다. 몇 번인가는 조회시간에 앞에 나가 웅변을 하기도 했다. 3천 명이 넘는 인원 앞에서 운동장 조회대에서……. 그래서 '웅변하는 애'라고 하면 모르는 아이들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늘 조용했다. 몇 년을 같은 반이 되었던 한 남자아이는, 내가 말을 못 하는 사람인 줄 알았단다. 짝꿍이 됐는데 며칠이 지나도 말을 한 마디도 안 했다고. 그러다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자 "네" 하고 대답을 해서 깜짝 놀랐었다고 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였다. 내 마음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게……. 그러니 나는 나대로 또 답답했겠지.
나와는 다르게, 내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또렷이 말할 수 있는 아이들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사춘기가 되었지만 다행히도 아직 친구들과 있었던 일, 선생님들 이야기, 언니 동생 간의 서로의 억울함 등등 많은 이야기를 나에게 해준다. 나도 지금은 조금씩 더 내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고, 평생을 거쳐 쏟아낼 '수다 총량의 법칙'이라도 있는 건지 꽤 수다스러운 아줌마가 되었다. 이 주제 없는 글들도 그것들의 연장선일테고…….
더욱 나를 표현하는 자신감이 생겼으면 좋겠다. 그냥 수다 말고 표현. 내 아이들도 꼭 그랬으면 좋겠다. 나를 사랑하자. 나를 존중하자. 그러다 보면 시나브로 자존감이 생기겠지. 아이들도 보고 배우겠지. 화이팅, 매콤쌉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