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아주 잘 지내고 있다. 퇴근 후엔 반갑게 인사하고, 집안일은 같이 하고 같이 쉬며(휴일엔 내가 더 쉬며), 휴일도 함께 보내고 대화도 많이 한다. 많이 웃고 아이들 얘기도 많이 하고 밖에서 있었던 일들도 이야기 나눈다.
그러다 남편이 방심할 때쯤 예상치 못한 훅을 날린다. 딱 한 마디의 말이나 인터넷 뉴스 캡처, 인스타 영상 등으로 짧게. 예를 들면, "남편은 정말 나빠.", "내 남편은 범죄자야." 라거나, 방송이나 기사로 접한 외도 이야기들, 인스타에 나오는 '사과 제대로 하는 법',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법', 오은영 선생님의 부부코칭 등을 공유하거나...
그리고는 나도 길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으니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다른 주제를 꺼낸다. 그의 마음 한구석에 무언가 가서 콕 찔렀다면 되었다는 마음이다. (가끔 그의 대꾸가 마음에 안 차면 미안하다 말하라고 직접 시킬 때도 있다.)
어느 순간엔 이게 오히려 남편에게 내성을 만들어주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도 하다가, 나를 배신한 데 대한 괘씸죄, 나에게 쏘리와 땡큐를 직접적으로 표하지 않는 데 대한 서운함으로 그를 그냥 마음 편히 두기 싫은불순한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때때로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싶다. 나는 이제 내 마음을 그렇게 풀고 있는 듯하다.
아니, 그래도 그런 일에 이 정도면 나 너무 착한 거 아닌가? 착하다못해 미련하도록 물러빠진 와이프지. 그런 짓을 하고도 어디 가서 이렇게 매일 웃으며 살겠어?
내 너의 죄를 사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내가 나를 계속 괴롭히고 아이들에게 안 좋은 모습 보여가며 나까지 벌을 받고 싶지는 않다. 너는 이렇게라도, 너의 과오를 평생 잊을 수 없는 벌을 받아라. 난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상기시킬 듯하다. 거기에 대해 또 그 얘기냐고 묻거나 짜증 한 번이라도 낸다면 난, 바로 돌아설 수 있다. 고작 이것도 못참겠다면. 그러니 그저 다 감수해라. 난 미리 말했으니.
불쑥불쑥 올라오는 화와 배신감을 난 요즘 이렇게 해소하고 있다. 내가 살려면, 아이들이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하려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 이 방법인 것 같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더 좋은 방법이 떠올랐으면 좋겠고.